[2023 여성포럼]임경선 작가 "나로 살아갈 용기의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기’…경험과 시행착오 끝에 '나다움' 알 수 있어
"내 선택은 틀릴 수도 있고, 내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선택하기로 한다는 서늘하고 단단한 태도, 자기 중심을 갖춘 태도가 중요하다."
임경선 작가는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여성리더스포럼에서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기’라는 주제의 특별강연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소개했다. 1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가게 된 임 작가는 작가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과 에피소드를 통해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을 얘기했다.
18년간 작가로 지낸 경험을 담담히 설명하던 임 작가는 에세이 ‘평범한 결혼생활’ 드라마 판권이 팔린 후 드라마작가로 ‘외도’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판권 판매의 조건으로 직접 각본 제작을 요청받았을 때 주위의 의견을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각본을 쓰게 됐다. 하지만 거듭되는 각본 수정 지시에 한계를 느껴, 결국 손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임 작가는 당시를 술회하며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이거 할까, 말까 물을 때는 내가 용기가 없었지만, 응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며 "타인의 ‘맞는 말’에 내가 불편하면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유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인 존재로 태어난 우리는 가급적 나 스스로와 불화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스스로의 삶을 각별하게 보살피고 조율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법과 관련해 임 작가는 "격변하는 환경은 아마도 계속 격변할 것이기 때문에 격변하는 환경은 ‘선택지가 많아졌다’로 간주해야지 ‘이거 안 하면 큰일 나’로 여기지 말라"며 "우리가 그 변화에 매번 맞춰가야 하는 건 아니다. 그 가운데 나와 맞는 것을 선택한 후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불안감이나 타인의 인정욕구, 트렌드 등에 휘둘리지 말도록 선택적 무심함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연에서 임 작가가 유독 강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었다. 고유함을 지켜주는 방법이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인데 우리가 어렵게 고민하고 선택을 내리는 이유는 사실 ‘행복해지기 위해서’인 것"이라며 "‘조금 손해 봐도 되니까’ ‘힘들어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으니까’라며 선택한 것에는 단순히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더 큰 가치가 숨겨져 있다. 거기에는 아마 누가 뭐래도 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모습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결정이라면 그 결정은 보다 최선을 다해서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임 작가는 ‘고유한 나‘라는 스스로를 알기 위한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세간에서 흔하게 거론되는 ‘나다움’은 결코 쉽지 않다"며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맞는 일과 사람’에 가 닿는다. ‘고유함’을 지키는 일은 거저 오지 않는다. 부딪혀봐야 자신의 모양을 아는 것 같다"고 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것을 조언한 임 작가는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경험이 쌓이면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알게 되며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어떤 것이 좋구나’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며 "내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내면의 얘기를 가져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그는 "나는 이런 것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삶의) 성취 경험 등이 누적되면서 내가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수많은 경험과 생각 속에서 스스로 냉철하게 자기를 바라볼 수 있을 때 한 광고 캠페인처럼 ‘나는 나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8년째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온 임 작가는 ‘롱런(long run)’의 비법도 공개했다. 그는 직장생활에서 체득한 ‘자기 통제력’이나 주변 사람과 함께 일할 때 대하는 ‘태도’, 강연 등을 하며 체득한 무심함에 대한 ‘훈련’과 함께 작가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로 "쓰고 싶은 것을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암 환자이기도 한 임 작가는 "(건강상 이유로) 5년, 10년 단위가 아닌 1년 단위로 산다"며 "1년 이후의 것은 계획 없이 지금 쓰고 싶은 것에 대해서만 써왔다"고 소개했다. '쓰고 싶은 것'을 한 해, 한 해 쓰다 보니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연이 마무리할 때 그는 "지나고 보면 어렵지 않던 시절이, 어지럽지 않던 시절이 언제 있었냐"며 "때로는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일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들이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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