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완벽한 부활, 토트넘의 대반전
[이준목 기자]
손흥민과 토트넘 홋스퍼가 나란히 '역대 최고의 시즌'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10월 24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9라운드에서 토트넘은 1골-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의 맹활약을 힘입어 2대0으로 완승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7승2무, 승점 23점을 기록하며 맨시티, 아스널(이상 승점 21), 리버풀(승점 20)을 따돌리고 EPL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개막 후 9경기 연속 무패행진은 EPL 출범 이전, 토트넘이 마지막으로 잉글랜드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한 1960~1961시즌 이후 63년 만에 최고의 출발이다.
또한 손흥민은 전반 36분 이날의 선제 결승골이자 리그 7호골을 터뜨렸다. 선두 엘링 홀란(맨시티, 9골)에 이어 모하메드 살라(리버풀, 7골)와 함께 EPL 득점 공동 2위에 올라섰다. 후반 9분에는 제임스 메디슨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올시즌 첫 도움까지 기록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손흥민은 홀란-살라 등과 함께 유력한 득점왕 후보로 부상했다. 손흥민의 한 시즌 최다득점은 생애 첫 EPL 득점왕에 올랐던 2021-22시즌 기록한 23골이다. 당시 손흥민은 2021년 12월 20일 18라운드 리버풀 전에서 7호골을 터뜨린 바 있다. 이번에는 정확히 그 절반 밖에 안 되는 경기수만에 벌써 동일한 숫자의 골을 뽑아냈다. 득점왕 재탈환을 넘어 개인 커리어하이 신기록까지 기대할 만한 페이스다.
손흥민과 토트넘 모두 올시즌 이렇게까지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사령탑 교체만 두 번이나 겪은 혼란에 휩싸이며 리그 8위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유럽클럽대항전 출전 티켓도 모두 놓쳤다. 손흥민은 탈장과 안면 부상 여파에 휘말리며 36경기 10골로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올시즌을 앞두고 토트넘은 큰 변화에 휩싸였다. 유럽 빅리그 경험이 없는 호주 출신 엔조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오랫동안 에이스로 활약한 해리 케인이 독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위고 요리스가 내려놓은 주장 완장은 손흥민이 이어받아 토트넘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인 주장이 탄생했다. 많은 전문가와 팬들은 토트넘이 올시즌도 우승권은 고사하고 상당히 고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상황이 대반전됐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거스 히딩크 전 첼시 감독(2008-09시즌), 마이크 워커 전 노리치 시티 감독(이상992-93시즌, 이상 22점)을 제치고, EPL 데뷔 시즌 초반 9경기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올린 감독으로 등극하며 신기록을 수립했다. 알렉스 퍼거슨, 주제 무리뉴, 위르겐 클롭, 펩 과르디올라 등 세계적인 명장들로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호주대표팀과 스코틀랜드 셀틱 등 여러 클럽과 대표팀을 지도하며 성과를 낸 베테랑 감독이지만, EPL을 비롯한 유럽 5대리그에서 지휘봉을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10여년 간 토트넘을 거쳐간 감독들 중 이름값은 가장 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지난 몇 년간에 비하여 오히려 전력이 악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토트넘을 이끌고 돌풍을 이뤄내며 축구가 이름값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전임자들이 한동안 수비적인 실리축구에 치중한 것과 달리,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자신의 공격적인 '포스볼'이 EPL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고 있다.
손흥민의 주장 선임과 포지션 변경도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 이미 주장을 역임중이고 팀내 영향력이 높은 손흥민이지만, 세계 각국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모인 토트넘에서도 주장으로서 선수단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평가가 엇갈렸다. 하지만 손흥민은 특유의 친화력과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수단의 두터운 신뢰를 확인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토트넘의 팀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단단하다는 것이 경기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특히 올시즌 손흥민의 완벽한 부활을 이끌어낸 것은 스트라이커로의 변신이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까지 함께 '손케 듀오'를 구축하며 최고의 파트너십을 이뤘던 해리 케인의 이적으로 홀로서기에 나서야 했다.
시즌 초반에는 히샬리송이 원톱으로 나서며 손흥민은 익숙한 윙어 자리에 배치되어 팀플레이에 집중했지만, 히샬리송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손흥민과 포지션을 변경했다. 스트라이커로 자리를 이동하자마자 '손TOP'은 4라운드 번리전 헤트트릭을 시작으로 최근 리그 6경기에서 9골을 몰아치며 '득점왕 시즌의 부활'을 증명했다.
지난 시즌 리그 30골을 터뜨린 케인의 부재가 손흥민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손흥민은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파트너가 된 공격형 미드필더 제임스 매디슨과 또다른 황금듀오를 구축하며 공격포인트를 합작해 내고 있다. 왜 토트넘이 굳이 케인을 대체할 정통 스트라이커를 영입하지 않았는지 손흥민의 건재가 그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손흥민은 어느덧 PL 통산 득점을 110골까지 늘리며 라이언 긱스(109골)를 제치고 에밀 헤스키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 공동 26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시즌 부진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손흥민이지만, 최근에는 현지 매체에서도 손흥민의 활약과 리더십에 극찬 일색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케없산왕(케인이 없으며 손흥민이 왕)'임을 증명하고 있는 시즌이다.
여기에 이적시장에서의 효과적인 영입도 빼놓을 수 없다. 부주장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하여 센터백 미키 판더벤-골키퍼 굴리엘모 비카리오 등의 이적생들은 입단과 동시에 토트넘의 주전 자리를 꿰찬 것은 물론 뛰어난 활약으로 손흥민과 함께 토트넘의 돌풍을 견인하고 있다. 토트넘의 변수이자 약점으로 지적받던 요소들이 모두 장점으로 뒤바뀐 전화위복의 양상이다.
손흥민은 풀럼전 승리 이후 구단 미디어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이 클럽을 위해 뛰는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새로운 감독님이 많은 걸 불어넣었다"고 동료와 감독에게 영광을 돌렸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계속 겸손하게 나아가야 한다"며 혹시모를 자만을 경계했다. 무서운 기세를 이어가고 있는 토트넘이 올시즌 숙원이던 무관 탈출과 커리어 하이 시즌을 경신할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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