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와 ‘하마스 섬멸’ 사이 바이든 딜레마…지상전 늦추며 확전 대비

김형구 2023. 10. 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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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경제정책 ‘바이드노믹스’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을 대하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방어권과 ‘하마스 섬멸’이라는 목표를 존중하면서도 하마스에 잡힌 인질 석방 및 민간인 피해 최소화라는 인도주의적 대원칙도 역시 놓칠 수 없다는 점에서다. 미국의 고민을 키우는 사이 이스라엘의 지상전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이란과 그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전쟁 개입 가능성까지 커지면서 미국은 확전 대비 태세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인질 석방을 위한 임시 휴전 가능성과 관련된 취재진 질문에 “인질들이 풀려나야 한다. 그런 다음에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지난 20일 미국인 모녀 인질 2명을 풀어준 데 이어 23일 두 번째로 이스라엘 여성 인질 2명을 추가로 석방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방어와 전열 정비를 위한 하마스의 시간 벌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의 언론 브리핑에서는 인질 석방을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지상전 연기를 요청 내지 압박하고 있는지, 인질 협상으로 지상전이 한동안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커비 조정관은 이스라엘의 작전계획과 관련해 “이스라엘 방위군이 결정할 것”이라며 “이스라엘 군과 정치 지도부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우리는 전장에서 결정을 내릴 때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결과, 2차ㆍ3차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분쟁에 민간인이 끼친 인과관계는 ‘0’”이라며 “민간인 피해 발생을 원치 않고 이것이 우리가 이스라엘 측과 긴밀히 협력해 온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김영옥 기자

전날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인질 석방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구호물자 반입을 위해 이스라엘 정부에 지상군 투입을 연기하라는 압력을 넣었다는 보도(CNN)가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 “이스라엘에 지상군 투입 연기를 권하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상전 연기 권고설을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됐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캐나다 등 서방 6개국이 전날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 지지를 표하면서도 민간인 보호 등 인도주의 관련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낸 것 역시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8일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핵심 목적은 이스라엘에 전면적인 지상전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시간 문제로 예상됐던 이스라엘의 전면적 지상전은 점점 더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스라엘 군은 23일 새벽 가자지구 내에서 탱크와 보병부대를 동원한 ‘제한적인 기습작전’을 실행한 사실을 공개했다. 전면적인 지상군 투입의 전초전 단계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반복적인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에 이스라엘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허용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은 확전의 중대 기로에 선 형국이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관련 언론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은 인질 석방과 민간인 인명 피해 방지라는 인도주의적 대의명분 아래 이스라엘에 가급적 지상전에 신중할 것을 요청하는 모습이지만, 커지는 확전 가능성도 대비하고 있다. 커비 조정관은 이스라엘에 군사작전 조언 등을 위한 미군 장교 파견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제임스 글린 중장을 비롯한 해병대 장교가 이스라엘에 파견됐다’는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 보도와 관련된 취재진 물음에 “이스라엘의 작전에 적합한 경험을 가진 미군 장교 몇 명(a few military officers)이 그곳에 가서 관점을 공유하고 어려운 질문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어려운 질문’은 작전 수행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 수개월의 장기전이 예상되는 하마스 지하 세력 소탕 작전 대책 등과 관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 국방부는 지난 21일 중동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및 패트리엇 대대 추가 배치 등 대공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중동 급파 가능성에 대비한 대기 병력을 기존 2000명에서 추가로 더 늘렸다고 발표했다. 확전에 대비한 실질적 방어력 강화 조치로 분석된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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