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하려는 여섯 살 연하남편...세월이...
살 빼야 하는 자와 쩌야 하는 자의 전쟁...식탁은 폭탄 투하 장소
전성옥
1971년 전북 고창 출생. 현재는 전남 영광에서 9명의 자녀를 양육하는 '아동청소년 그룹홈' 가정의 엄마다. 여섯 살 연하 남편 김양근과 농사를 지으며 단란한 가정을 이끌고 있다. 김양근은 청소년기 부모를 잃고 세 여동생과 영광의 한 보육시설에서 성장했는데 그가 20대때 이 시설에 봉사자로 서울에서 자주 내려왔던 '회사원 누나' 전성옥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이들의 얘기는 2017년 KBS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성옥 부부는 대학생 아들 태찬(19), 고교 2년생 딸 태희(17) 등 1남 1녀를 두었다. 이 자녀들이 어렸을 때 부부는 서울에서 낙향을 결심했다. 전성옥은 "어려운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남편을 뜻에 동의해 영광에 내려와 그룹홈을 열었다. 이때 셋째 김태호(11)를 입양했다.
그 후 여섯 명의 딸 김초록(가명 · 19 · 대학생) 한가은(가명 · 이하 가명 · 18 · 특수학교 학생) 김현지(14 · 중학교 2년) 오소영(13 · 중학교 1년) 유민지(12 · 초교 6년) 장해지(9 · 초교 3년) 등과 함께 '다둥이 가정'을 꾸렸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전성옥은 귀농 후에도 문학반 수업을 들을 만큼 문학적 자질이 뛰어나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가장 즐겁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마'는 혈연 중심의 가족구성원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연재 칼럼이다.
잘 시간이 훨씬 지난 늦밤. 식탁을 서성이다 바나나를 발견한 남편, 갑자기 '마님' 눈치를 살핀다.
“한개만.”
“그러시든가.”
“내 살도 아닌데 왜 내 눈치를 보고 난린고.”
40대 중반의 남자.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근육을 자랑하고 다닐 때가 있었지. '마님'(남편 휴대폰에 저장된 애칭)보다 여섯 살이나 연하인 탓에 손해 아닌 손해를 보고 산다.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얼굴은 주름이 없는 동안형, 헌데 같이 사는 마님은 조금 어정쩡한 나이. 50대 같기도 하고 40대 같기도 하고 때때로 30대 후반(?)으로도 보인다는 또 다른 애매한 모습이다.
이런 외모이다 보니 사람들의 구설수는 간간히 둘 사이를 이상하게 몰아간다. 젊은 시절에는 원조교제니 불륜 소리도 들었던 터라 어지간한 설화는 그저 웃고 만다.
어느 지점부터 배가 나왔는지 알수 없었으나 지금은 최선을 다해 신경써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어디 배 뿐이랴. 티셔츠도 95면 충분하던 것이 100을 넘기다 이제는 105는 입어야 한다.
외모지상주의를 흠모하는 남편. 안되겠다 살을 빼자 결심. 아니 그런 일일랑 혼자서나 하시지 뭔 정성으로 온 가족에게 선포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군인이 되어가는 것인가(사실 그는 군 면제자).
아이들의 관심은 금세 다이어트로 옮겨갔다. 아빠의 작심이 몰고 온 풍경이다. 한참 먹어야 하는 큰 딸은 아빠와 한편이 되더니 급기야 식탁을 초토화시킨다. 골고루가 통하지 않는다.
칼로리를 살피고 그램을 재고 난리가 아니다. 엄마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곯아가며 아침마다 저녁마다 체중계에 오르며 몇 그램이 빠졌니, 쪘니 더 빼야하니, 먹어야 겠다, 안먹겠다 그야말로 생쑈다.
하지만 이런 싸움이 얼마나 갈까? 아빠의 도전은 며칠을 못 버티고 봄눈 언제 녹는지 모르듯 녹아내리고 만다.
가난한 시절 먹는 것이 사는 것이었던 남편은 먹는 집착이 심하다. 먹기 위해 산다고 농담 반 진담 반, 아니 진정 진담일지도 모를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 앞에서는 행복이 입안에 가득찬 걸 볼 수 있을 지경으로. 그런 그가 살을 뺀다고 하니 연상 마님은 믿을 수 없는 상황. 작심삼일이 불 보듯 뻔하다.
“먹는건 자유지.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라는 것이 따라오거든. 여보.”
“당신의 배는 당신이 책임지고 내 배는 내가 책임질테니 이제 더 이상 살을 빼니 들이니 하지 맙시다.”
조금은 자유로워진 연하남편. 당당히 과자 봉지를 집어 든다.
“아니. 그건 내려 놓으세요. 아이들 내일 소풍갈 때 싸주려고 사놓은 간식이거든.”
전성옥(수필가) jsok00@hanmail.net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與, ‘한동훈 댓글 의혹’ 허위사실 고발 예고…“추가 갈등 말아야”
- 여야, 예금보호 한도 1억원 상향 예고…‘6개 민생법안’ 합의
- 박성재 “檢 특활비 전액 삭감…이재명 수사 연관성 의심”
- 한미, ‘북한군 러시아 전투참여’ 공식화…정부, 무기지원 ‘신중론’
- “수능날 몇 시에 먹을까”…‘이 약’ 먹다간 되레 시험 망칠 수도
- 민주,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尹, 이념·편향 외교로 지평 축소”
- 9년 만의 정상 탈환…넷마블 ‘나혼렙’ 게임대상 수상 [쿠키 현장]
- 김승기 소노 감독 “강팀 잡을 뻔했는데, 잘해놓고 마지막에 졌다” [쿠키 현장]
- 이정현 부상 아쉬운 김승기 감독 “아팠을 때 빼야 했는데” [쿠키 현장]
- 북한강 '살해, 사체 훼손·유기' 피의자는 38세 양광준 육군 중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