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 동생 키우는 세 언니…바닷마을이 전한 가족의 의미
"같이 살지 않을래, 우리 집에서?"
기차에 몸을 실은 맏언니 사치는 스즈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혈혈단신이 된 어린 이복동생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다. 스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니들이 탄 기차가 작은 점이 돼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한 달 뒤 스즈는 언니들이 살고 있는 가마쿠라를 찾아간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국내에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연극으로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는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가 이복 여동생 스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았다.
연극은 가족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혼자 남겨진 스즈에게 손을 내민 건 이복 언니 사치. 이모할머니는 "너희 가정을 망가뜨린 여자의 딸"을 어떻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냐며 사치를 나무라지만 사치는 "그 애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동생을 감싼다. 사치의 친모와 이모할머니가 집에 올 때마다 움츠러드는 스즈. 속 깊은 언니들은 스즈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매실을 따고, 매실주를 담그고, 바닷가를 산책하고, 국수를 함께 삶았던 일상이 쌓여 슬픈 기억을 밀어내고 이들은 비로소 가족이 된다.
소극장 공연인 만큼 무대 전환은 많지 않다. 승강 장치를 따라 무대 위로 솟았다가 아래로 사라지는 미닫이문과 마루, 마당의 매실나무가 무대 장치의 전부다. 연극의 배경은 '바닷마을'이지만 바다는 무대 장치가 아닌 소리로 표현된다. 장소가 바다로 바뀌면 조명이 환해지며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식이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보여줬던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나 오래된 일본 가옥 특유의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다.
작품은 원작처럼 잔잔하다. 아버지의 죽음과 불륜을 다루지만 등장인물 간 갈등보다는 네 자매가 마음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책임감 있는 맏이 사치는 한혜진과 박하선, 자유분방하고 유머러스한 둘째 요시노는 임수향과 서예화, 엉뚱하고 개성 있는 셋째 치카는 강해진과 류이재가 맡았다. 각기 다른 매력의 세 자매가 막내 스즈를 받아들이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스즈 역은 2009년생 설가은과 2011년생 유나가 맡았다.
배우 이정미와 이강욱은 순식간에 말투와 복장을 바꿔가며 일인 다역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치와 대화를 나누던 남자 친구가 돌연 안경을 쓰고 목소리를 바꿔 스즈의 축구 코치로 변해 '학부모' 사치에게 진로 상담을 요청하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소극장 연출의 묘미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13일 연극 관람을 위해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연극이 끝난 후 고레에다 감독은 무대에 올라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 요시다 아키미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라며 "이번에는 작품이 국경을 뛰어넘어 연극이라는 형태로 무대에 오를 수 있어 좋았다. 네 자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무대화한 것에 대해 감동했고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남겼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일본 만화 원작 실사 영화 중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고레에다 감독은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가족의 의미를 성찰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연극은 다음달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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