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샤넬 박서준, 향기로운 그라스 男신 등극
뮬 가문(Mul Family)이 5대째 운영하는 그라스 페고마 농장에서 만난 박서준. 그라스 지역은 비옥한 토양과 이상적인 기후 덕에 오래전부터 향수 발상지로 알려져 왔다. 1921년, N°5를 탄생시킨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Ernest Beaux)는 향의 조합에 그라스 산(産) 쟈스민을 선택했고, 이로서 그라스 샤넬 필드는 N°5 역사가 뿌리내리는 근원의 땅으로 자리 잡았다.
농장주 죠세프 뮬(Joseph Mul)을 비롯해 현지 농부들은 이른 아침부터 쟈스민 수확에 여념 없다. N°5의 메인 원료인 쟈스민은 ‘별들의 꽃’으로 불릴 만큼 매일 밤 향을 가득 품어 태양이 대지를 달구기 전인 새벽이면 절정에 달한다. 쟈스민의 신선한 향을 보존하기 위해 꽃잎 하나하나를 손으로 따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현장에 박서준이 동참했다. 그의 양손에 놓인 쟈스민 꽃잎이 아기 피부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약 3~4시간에 걸쳐 이어지는 쟈스민 수확. 즉시 공장으로 운송된 쟈스민은 향을 고도로 응축한 향기 왁스인 ‘컨크리트’ 상태를 거쳐 N°5에 사용되는 농축 액체 ‘앱솔루트’가 되는데, 단 550g의 쟈스민 앱솔루트를 얻기 위해 필요한 쟈스민 꽃은 무려 350kg. 박서준의 손에 쥐어진 N°5 오 드 빠르펭이 더욱 찬란해 보이는 건, 이토록 정교하고 고귀한 과정 끝에 탄생한 향수이기 때문은 아닐까. N°5 오 드 빠르펭, 50ml 17만9천원, 100ml 25만5천원, Chanel.
샤넬 하우스와 뮬 가문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형성해 온 관계. 그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쟈스민 생산량 감소로 샤넬 향수 포뮬러에 사용될 충분한 원료를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한 당시 샤넬 조향사 쟈끄 뽈쥬(Jacques Polge)와 죠세프 뮬이 그라스 지역의 유산을 보호하고 샤넬 향수의 포뮬러를 수호하기 위해 뜻을 모은 것.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온 땅을 향한 존중과 경외심은 미래를 향한 약속과 비전이 돼 지금의 샤넬 필드에 살아 숨쉬고 있다.
샤넬 필드에선 쟈스민뿐 아니라 튜베로즈, 아이리스, 메이 로즈, 제라늄 등도 재배되고 있다. 그중 튜베로즈는 2017년 쟈끄 뽈쥬의 아들이자 현 샤넬 조향사인 올리비에 뽈쥬(Olivier Polge)가 탄생시킨 가브리엘 샤넬의 메인 원료다. 망중한을 즐기는 박서준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그라스의 햇무리처럼 튜베로즈를 포함한 네 가지 꽃향기가 어우러져 화사하게 빛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가브리엘 샤넬 오 드 빠르펭, 50ml 17만9천원, 100ml 25만5천원, Chanel.
“여성의 향기를 지닌 여성용 향수”를 만들어달라는 가브리엘 샤넬 여사의 요청에 따라 알데하이드를 사용한 전례없는 N°5가 탄생한 것이 1921년. 쟈끄 뽈쥬가 초창기 N°5를 재해석한 오 드 빠르펭을 선보인 것이 1986년. 그리고 샤넬 향수의 뿌리를 찾아 박서준이 프랑스 남부 그라스로 향한 2023년의 오늘. 과거부터 현재, 미래에도 변함없이 N°5 역사 한가운데 있을 원료가 바로 샤넬 필드에서 재배되는 쟈스민이리라. 그라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쟈스민의 90% 이상이 뮬 가문의 농장에서 재배되며, 풍부하고 섬세한 쟈스민 향은 관능적인 알데하이드의 존재감을 부각시켜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N°5 오 드 빠르펭, 50ml 17만9천원, 100ml 25만5천원, Chanel.
샤넬 향수에 담긴 헤리티지와 장인 정신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많은 이들의 땀과 헌신을 목도한 박서준. 쟈스민 꽃잎을 어루만지고, 하나하나 손으로 수확하며 그 짙은 향을 맡는 사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영감을 받았을까? 그의 시선이 머무는 끝에 어떤 풍광이 펼쳐질지, 당신도 샤넬 N°5 향을 맡으며 상상해 보길.
그라스의 태양이 고개를 내밀며 지평선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새벽 시간은 만개한 쟈스민 꽃향기가 절정에 다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람 소리만이 사위를 채우는 고요함 속에서 황홀한 쟈스민 향에 매료된 박서준의 모습이 꿈결같다.
약 3만 ha에 달하는 광활한 샤넬 필드를 배경으로 그라스 로드 트립의 한 챕터를 써 내려간 브랜드 앰배서더 박서준. 대지의 쟈스민에서 하나의 N°5가 탄생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본 그가 어떤 기억을 새겼을지 궁금하다.
1921년 에르네스트 보에 의해 탄생한 유서 깊은 샤넬의 아이콘. 당대 미술 사조를 반영한 네모반듯한 보틀에 화이트 라벨을 장식한 혁신적인 디자인과 함께 전례 없는 알데하이드 플로럴 부케 향을 지니고 있다. 그라스 쟈스민을 메인 원료로 삼아 여성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향수로 시간을 초월하는 레전더리 아이콘으로 등극한 N°5 오 드 빠르펭, 50ml 17만9천원, 100ml 25만5천원, Chanel.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