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비참한' 현실, 한국 공장식 축산 실태
[김성호 기자]
서울과 인천 사이, 78만 명의 시민이 살아가는 도시가 바로 부천이다. 대도시 두 곳에 끼인 평야지대로, 한 때는 특색 없는 소도시란 평가가 나오곤 했던 곳이다.
그마저도 이 도시는 가혹하고 모욕적인 편견과 오래 싸워야 했다. 인근 대도시들로 인해 베드타운으로만 기능할 뿐 자체적으로 문화를 꽃피우고 지탱할 자생력이 없다는 게 그중 하나였다. 한국프로축구 K리그 소속이던 부천SK 팀이 제주도로 연고를 이전해 큰 논란을 빚은 것도 이 같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뿐인가. 2018년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TV토론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정태옥이 '서울에서 살다 이혼을 하면 부천으로,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는 지역비하발언을 쏟아내 이른바 '이부망천'이란 표현이 유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 지역에 대해 이토록 모욕적인 발언이 퍼져나간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부천시의 명예에 큰 타격이 되었다.
그러나 부천시는 이러한 편견과 혐오 어린 시선에도 굴하지 않았다. 부천만의 특색, 부천만의 문화를 돌보고 길러 전국 어디에도 내세울 수 있는 멋을 이뤄나갔다. 그 선봉이 예술이며, 구체적으로는 영화와 만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3대 국제영화제로까지 꼽히는 행사다.
▲ 제25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포스터 |
ⓒ BIAF |
한국 애니메이션의 본산, 부천의 애니축제
부천은 어느덧 한국 애니메이션의 본산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로 바로 섰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도로 열리는 부천국제만화축제를 비롯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전국 만화와 애니 애호가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멋진 행사로 자리 잡았다.
특히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영화와 만화 모두에 특화된 부천만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축제로, 벌써 25회째를 맞았다. 할리우드와 일본 외의 애니메이션을 마주하기 힘든 현실 가운데 세계의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귀한 창구로 평가된다.
▲ 파도 스틸컷 |
ⓒ BIAF |
단편 애니가 발하는 드문 매력
단편애니에선 기법, 즉 표현양식이 단연 두드러진다. 메시지와 구성도 중요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에 비해 표현법이 확연히 엇갈리는 애니의 특성상 기존에 없던 새로움을 단편애니에선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색다른 작풍과 참신한 아이디어, 독보적인 분위기를 단편애니에선 종종 마주하게 된다. 세계 곳곳에서 출품된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발 단편 국제경쟁은 이에 관심 있는 이에게 흥미로운 선택일 밖에 없다.
올해 단편C 묶음으로 상영된 작품은 모두 8편이다. 체코 출신 파블라 바스타노바의 <카우 About a Cow>, 포르투갈 출신 마르타 몬테이루의 <콜드 수프 Cold Soup>, 대만 출신 장 쉬잔의 <열대의 눈 Compound Eyes of Tropical> 등이다.
▲ 카우 스틸컷 |
ⓒ BIAF |
공장식 축산 문제 일깨우는 짧은 애니
<카우>는 비단 소 하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테다. EU에 축산품과 낙농품을 주로 공급하는 국가 중 하나인 체코인으로서 감독은 소를 비롯한 가축과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인지한 듯 보인다.
가축을 생명이 아닌 자산으로만 이해하는 자본주의가 불러온 공장식 축산은 생명이 있는 짐승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환경파괴와 지속불가능한 산업의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이에 EU가 나서 동물복지 확대정책을 펴고 있으나 축산품 및 낙농품 수요와 가격경쟁력이란 벽에 막혀 전면적인 변환은 쉽지 않은 상태다.
▲ 나는 힙 스틸컷 |
ⓒ BIAF |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그린 놀줄 아는 고양이
이밖에도 함께 상영된 다양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한국 감독 정유미의 <파도>는 다분히 미술적이며 실험적인 작품이다. 잔잔한 파도가 치는 해변 모래사장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그린 9분가량의 짤막한 애니로,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이들을 등장시킨다. 파도가 일정하게 밀려오고 밀려가는 가운데 사람들이 제 삶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정적인 동작을 취하는 모습이 보는 이에게 특별한 감상을 일으킨다. 미술관에서 움직이는 그림을 대면하듯, 평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극장에서 때 아닌 쉼의 기회를 선사한다. 세밀한 연필화의 섬세한 표현은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매력이다.
존 머스커의 <나는 힙 I'm Hip>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을 바꿔내는 작품이다. 말 그대로 힙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재즈 음악에 맞춰 한껏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이 4분 여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담겼다. 표현이 낯설고 색다른 다른 작품과 달리 <나는 힙>은 다분히 어디선가 많이 마주한 분위기가 풍긴다. 이유야 분명하다.
▲ 돌로로사 스틸컷 |
ⓒ BIAF |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애니의 힘
레이첼 거트가츠의 <돌로로사 Via Dolorosa>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이 거듭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마약과 전쟁 등에 대한 강렬하고 전위적인 이미지를 빠르게 흘려보내는 작품으로, 팔레스타인의 시각이 빠져 있다는 비판이 가능할 수는 있겠으나 반폭력의 메시지가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돌로로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본시오 빌라도의 로마 총독부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른 슬픔의 언덕길을 말한다. 애니는 이 슬픔의 언덕과 오늘의 폭력 가득한 절망의 세상을 가져대 댐으로써 예술이 가진 은유의 힘을 발하려 시도한다. 메시지가 명징하지 않고 다소 산만하다 느껴지는 건 아쉬움일 수 있겠으나 생명력 넘치는 강렬한 이미지의 향연이 단편애니를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한다.
제25회 부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만난 세계의 단편애니는 그 표현방식과 착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극으로 넘쳐났다. 관객은 이를 통해 일상을 깨우는 참신함을 수혈 받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 통통 튀는 애니들의 향연이 내게 부천을 더 새롭고 멋진 도시로 여기게 한다. 도시가 문화와 함께 나아간다는 건 바로 이를 이르는 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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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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