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 기록한 힌츠페터...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이영광 기자]
5.18기념재단과 한국영상기자협회가 진행하는 제3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이 오는 11월 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2021년 시작한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영화 <택시 운전사>로 잘 알려진 독일 ARD 방송의 영상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취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의 제정 취지와 올해 수상자들은 누구인지 궁금해 지난 18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을 만났다. 다음은 나 협회장과의 일문일답.
▲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 |
ⓒ 이영광 |
-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모르는 분도 많을 것 같은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독일 ARD 방송의 영상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는 1980년에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5월에 한국의 군부가 광주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왔어요. 그는 목숨 걸고 광주로 들어와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취재했고, 그 필름을 쿠키 통에 몰래 숨겨 도쿄로 갖고 가서 독일로 보내 방송했어요. 그리고, 다시 광주로 돌아와 5.18을 취재했고, 그해 9월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보도 다큐멘터리 제작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렸어요. 이 다큐멘터리가 역으로 한국 사회에 들어와 알려졌죠.
(이런 영상이) 문제의 원인이 된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민주주의, 인권, 평화, 언론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만들자는 운동에 영향을 줘서, 민주적 사회가 만들어지고 언론자유 등이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힌츠페터 기자처럼 직접 현장 안에 들어가 취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취재한 영상과 이야기들을 세상에 알리는 기자들 찾아서 상을 주자는 게 이 시상식의 시발점입니다."
- 처음 힌츠페터 기자에 대해 알았을 때 어땠나요?
"저는 입사해서 5.18 당시를 기록하는 데 있어 외신 기자들의 역할이 컸다는 걸 알고 충격받았어요. 그리고 2003년 힌츠페터 기자가 송건호 언론상을 받던 즈음에 KBS의 장영주 PD가 제작한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5.18 당시 힌츠페터 기자의 활동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굉장히 감명받았습니다. 그때 당시 영상기자협회 대외협력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국 영상 기자들이 했어야 할 역할들을 대신했던 힌츠페터 기자의 활동과 업적에 우리 영상 기자들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 활동들에 대한 기록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가 '송건호 언론상' 시상식을 위해 방한하게 되었을 때, '송건호 언론재단'과 협의해서 직접 그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갔던 인연이 있어요."
- 그럼, 실제 힌츠페터 기자를 만난 거잖아요. 어땠나요?
"힌츠페터 기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해 세상에 그 진실을 알렸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 우리 협회는 힌츠페터 기자를 모셔 와 MBC 회의실에서 5.18 당시 취재 활동을 회상하고 한국의 영상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간담회를 진행했어요. 또, 감사패 전달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2005년 우리 협회는 그에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린 공로로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힌츠페터 기자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국의 영상 기자들이 그렇게 자신의 업적을 평가해 주고 거기에 대해서 함께 박수 쳐준다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했습니다."
- 힌츠페터 기자를 왜 기념해야 할까요?
"1980년 영상 기자를 비롯한 우리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걸 힌츠페터 기자가 대신했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힌츠페터의 기자 정신과 업적 기리면서, 언론과 언론인의 역할과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또, 이 상을 통해 이 시대에 우리가 힌츠페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언론과 언론인들이 경험했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열심히 자각하고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 1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들 |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사무국 제공 |
-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 뉴스부문, 특집부문, 공로상인 '오월광주상'으로 나눠져 있는데요. 이렇게 한 이유가 있을까요?
"경쟁 부문과 비경쟁 부문에 상을 수여하고 있는데요. 국제공모로 이뤄지는 경쟁부문엔 민주주의, 인권, 평화, 언론자유의 문제를 취재, 보도한 영상 기자들이 자신들의 보도를 출품하고 있습니다. 출품된 작품들을 심사해서 '기로에 선 세계상', '뉴스상', '특집상'을 확정합니다.
'뉴스상'은 전 세계적 이슈가 된 특종, TV 뉴스나 온라인을 통해 보도되었던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합니다. '특집상'은 특정 이슈를 깊이 있게 탐사기획한 보도나 뉴스 다큐멘터리로서 취재, 보도한 작품과 기자들에게 상을 줍니다. 그리고 이들 뉴스부문과 특집부문의 작품 중 올해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고 힌츠페터의 기자 정신을 잘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작품과 그것을 취재, 보도한 영상 기자에게 대상인 '기로에 선 세계상'을 수여합니다.
대상의 이름을 '기로에 선 세계상'으로 명명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80년 5월, 힌츠페터 기자는 광주에서 취재한 영상들을 ARD뉴스를 통해 독일에 알렸고, 그의 영상은 곧 전 세계 방송사들이 받아 방송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직후, '한국의 군부에 의해 은폐된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취재한 영상들을 재편집해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뉴스 다큐멘터리로 방송했습니다. 그게 1980년대 초반 한국에 역수입되어 '광주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국에 퍼졌습니다. 이런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다큐멘터리 제목에서 착안해 '기로에선 세계'라고 상 이름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비경쟁 부문 공로상인 '오월광주상'은 영상 보도의 역사에 있어서 민주주의, 인권, 평화, 언론자유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보도와 영상기자, 언론인들을 선정해 상을 주는 상입니다. 1980년 5월, 힌츠페터가 활동했던 극한의 상황 속에서 광주의 시민들이 보여 주었던 '오월 정신'과 그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발전시켜 가자는 의미에서 오월광주상이라고 지었습니다."
- 올해 '기로에 선 세계상' 수상작으로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을 선정했습니다. 사유가 궁금합니다.
"작년 발생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초기, 세계는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피해와 강대국에 위협받는 국가 존립의 위기 상황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우, 전쟁을 전후로 해서 강력한 '가짜뉴스 처벌법'이 등장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억압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언론의 자유에 강력한 압박이 이뤄지다 보니, 외신과 특파원들이 떠나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라 오디노바(Aleksandra Odynova) 등의 기자들은 구속과 감금의 위험을 감수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러시아 당국이 공개하지 않는 전쟁의 피해와 관련한 자료들을 찾아 보도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점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습니다. 또 심사위원들은 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결국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이 보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서 있는 상황들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있다는 의견들도 국내외 심사위원들에게 나왔습니다."
▲ 2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들 |
ⓒ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사무국 제공 |
- 뉴스 부문과 특집 부분은 어떤 게 있죠?
"뉴스 부문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인 '바흐무트'라는 지역에 들어가서 취재한 내용의 보도가 선정되었습니다. 국제연합군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왜 활동하는지, 주민의 90%가 피난을 갔는데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시설과 현장을 지키고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어떤지, 불안한 삶의 터전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내용입니다. 벤자민 솔로몬 등의 기자들이 수상했습니다. 전쟁의 안쪽으로 들어가서 취재했다는 것, 또 전쟁의 고통과 사람들의 고민, 그리고 희망을 보여줬다는 게 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집 부문의 경우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왜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고 좌절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오랜 기간 취재한 기자들이 선정되었습니다. 그전에 이 문제 취재하던 다른 기자 두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내서 이 문제를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다짐한 겁니다.
보통 아프리카 국가들이 잘 살지 못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독재가 지속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데요. 이들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는 이런 나라들을 식민지 삼았던 서구 국가들의 입김과 욕망, 새로운 열강 러시아의 등장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보도를 통해 이런 상황을 보여준 게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시상을 통해, 앞으로도 우리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언론 자유를 쟁취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만족하고, 이걸 자랑하기 위해 상을 준다면 이 상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는 쟁취한 대로 계속 이어지지 않기에,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단순히 시상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상자들이 보도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던지고, 그들의 메시지를 함께 공감하고 고민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민주주의 문제, 언론자유의 문제도 고민하고 또 그 힘을 바탕으로 한국의 방송과 언론, 시민들이 연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상만 주는 게 아니라 수상자들과 국내외 언론인들이 교류하는 교육과 연수를 진행합니다. 또 한국 시민들과 다양한 전문가들이 국제보도상의 수상작과 출품작들이 던지는 메시지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참여 행사들 만들어 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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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국영상기자협회신문 <영상기자> 146호에 중복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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