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의 아이콘, ‘벤허’ 이재혁 [D:히든캐스트(145)]

박정선 2023. 10. 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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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에서 ‘약속’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개인의 역량도 필요하지만 출연 배우들 모두가 합을 맞춰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것이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목잡한 무대 설정이 더해지기 때문에 약속 안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이 안전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벤허’에 출연 중인 배우 이재혁도 ‘약속’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의 완성도와 안전 문제 외에도 그는 함께 하는 동료 배우, 연출진과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도 약속은 기본이 되는 가치라는 설명이다. 약속을 바탕으로 쌓아온 시간들 덕에 ‘벤허’ 팀은 그를 ‘성실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한다.

-뮤지컬 ’벤허‘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벤허’는 박은태 선배님의 ‘골고다’ 영상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이 너무 좋아 연습했었는데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다른 넘버까지 접하게 됐고요. 작품 전체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영상에 매료되어 프레스콜 등 한동안 즐겨봤습니다. 그영상으로 보는데도 음악이 주는 힘과 배우들에게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직접 관극하지 못한 게 아직도 한이 되네요(웃음).

-그 한을 이번에 풀게 됐네요? 직접 작품에 참여하게 된 소감을 들려주세요.

사실 저에게 ‘벤허’는 굉장한 모험이었어요. 주변에 ‘벤허’에 참여했던 동료 배우들이 정말 힘들 거라고 겁을 줬었거든요(웃음). 하지만 그런 걱정은 연습을 시작하며 싹 사라졌습니다. 이렇게나 좋은 음악과 멋있는 장면들에서 제가 한순간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에 감사했어요. 동료들과 깃발을 돌리고, 결의를 다지고,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고…. 남자라면 꼭 해보고 싶은, 심장을 뛰게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뿌듯하고 즐겁게,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노예 상인 역할을 맡고 있죠. 이 캐릭터를 어떤 인물로 설정하고, 준비했나요?

노예와 관련된 영화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굉장히 다양한 노예 상인들이 존재해왔고, 아주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이 노예 상인이었어요. 이런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한 후, ‘이 장면에서 전달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캐릭터 구축을 시작했어요. 다른 노예 상인과의 관계도 고민해보고, ‘어떻게 이 일을 시작했으며 우리는 어떤 노예 상인인가? 노예들을 평소에 어떻게 대했는가?’ 등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어요. 그런 질문 끝에 결국 많은 돈에 눈이 멀어 악랄한 행동에도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고 악행을 일삼는, 하지만 조금 덜떨어진 인물로 준비했습니다. 나쁜 놈들이지만 노예 상인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웃음).

-노예상인 외에 또 어떤 역할들을 맡고 있나요?

로마군, 벤허의 유대군, 메셀라의 부하, 빌라도의 하인 등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곳에서 연기하고 있어요. 내가 감정적으로 집중해서 그 인물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정확한 상황 인지와 사고의 유연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벤허’는 자신의 서사로 감정선을 이끌고 갈 수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내가 바로 전 장면에 특정 인물로 연기를 했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완전 반대 성향인 인물로 등장해야 한다면 그 순간에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연기해야 문제없이 극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앙상블 배우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를 꼽자면?

‘약속’과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배우가 배우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지닌 기질이나 특색이 다 다른 건 존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조금 더 돋보이려고, 혹은 다른 해석을 통해 약속과 다른 행동을 한다면 분명 그 장면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해요. 약속과 다른 박자에 노래나 동작을 하고, 다른 포인트에 힘을 줬다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객석에서 다르게 보일 게 분명하죠. 당연히 무대에서 살아있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지만, 작품 서사 안에서 존재하는 인물로서의 책임감 없이 혼자만 다른 행동을 한다면 그 장면은 산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히 돋보이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오긴 하겠지만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장면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MK뮤지컬컴퍼니

-배우들과의 호흡도 궁금해요.

우선 데뷔하는 친구들이 많은데도 다들 굉장히 잘 견디고 따라와줘서 너무나 고마워요. 다들 너무 잘해줘서 오히려 제가 함께하는 호흡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솔직히 남자들만 너무 많아서 재미도 없고 서로 사이도 틀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일 년 내내 함께 하고 싶은 식구들이 되었습니다.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주시고, 주조연 선배님들도 정말 친구처럼 대해 주셔서 또 다른 가족이 생긴 느낌입니다.

기억에 남는 일화는 정말 많은데 남자들이 많아서 구기 종목을 이것저것 정말 다양하게 한 것과 무술 감독님이 주최한 추석 운동회가 생각나네요. 추석맞이 공기놀이와 제기차기 대회가 있었는데 스태프 팀, 오케스트라 팀, 배우 팀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잊지 못할 추억이었어요.

-작품에 참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그리운 땅’이라는 넘버를 제가 연습 때부터 정말 좋아해서 열심히 코러스 연습을 했는데, 저는 코러스를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해당 넘버가 진행되는 동안 노예들 끌고 나오고, 채찍을 치고 하는 것이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이 장면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내가 더 악랄하게 해줘야 이 장면이 살아난다’라는 괴리감이 가장 힘들었어요.

-‘벤허’에서 가장 애정하는 넘버(혹은 장면)이 있다면?

정말 단 하나만 꼽기 너무 힘들지만 아무래도 ‘운명’이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벤허’가 한순간에 행복했던 일상을 잃고 계속된 고뇌와 모험 끝에 자신의 동지들을 위해, 악을 심판하기 위해 칼을 뽑아 드는 이 장면은 매일매일 하면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네요. ‘벤허’의 마음으로 함께 서 있는 그 순간,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해내야만 한다’는 그 모습이 가장 가슴 아프면서 마음에 남아요.

-‘벤허’에 출연하면서 얻은 것들이 있다면?

건강한 생활과 사람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건강한 신체를 위한 운동을 동료들로부터 배우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고, 그로 인한 행복이 뭔지 알게 되었어요. 조금은 찌들어 있던 삶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문제없이 건강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이런 생각을 하게끔 이끌어준 형들 동생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공연을 마친 후에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동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다음 시즌 ‘벤허’와 다시 함께 하게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언젠가는 꼭 메셀라 역에 도전 해보고 싶어요. ‘벤허’에겐 치가 떨리는 인물이지만 메셀라도 마음 한편에 벤허 가족에 대한 연민이 있을 거 같거든요. 또 홀로 외로운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꼭 메셀라를 연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쉼 없이 무대에 오르며 대중을 만나고 있어요. 본인의 어떤 부분이 제작자들로부터 이재혁 배우를 찾게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끄럽지만(웃음) 캐릭터성이 있는 배우여서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벤허’ 오디션을 볼 때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캐릭터성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극중 노예 상인이라는 캐릭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저를 찾아주신 게 아닐까요? 아! 그리고 제가 의외로 체력이 굉장해서, 그것도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혹시 다음 작품도 예정되어 있는 것이 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뮤지컬 관계자분들 이건 기회예요! 하하. 이재혁 배우 많이 찾아주세요. 사랑합니다.

-올해가 햇수로 데뷔 6년차인데요. 데뷔 당시와 지금 가장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연기 폭이 넓어진 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하고, 좋아하는 연기 외에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도전을 하게 되고, 쓰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의 폭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역할,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재혁 배우의 방향성도 궁금해요.

앞으로도 저의 이미지와 상관없이 카멜레온처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배우가 되려고 합니다. 또 자만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으며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던 성실하게 임하여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이재혁 배우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인가요?

제 배우 인생에 뮤지컬이 90%를 차지하는데, 뮤지컬만을 고집하고 다른 활동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더라고요. 아쉬움이 남아요. 다만 제가 원하는 어떤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까진 한참 멀었기 때문에 많이 연습하고 배워서 더 다양한 분야에서 관객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배우가 되어있으면 좋겠습니다. 최대한 빨리요.

-마지막으로, 이재혁 배우의 목표도 들려주세요.

‘벤허’가 끝나면 당분간은 다른 많은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기회가 온다면 뮤지컬도 계속 참여하겠지만 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해보고, 차근차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노래 앨범도 내고, 영화와 드라마도 도전해 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많은 곳에서 만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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