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조사받은 김범수…수사 칼날 원아시아도 겨누나
원아시아 펀드 자금 지원한 기업들로 수사 확산 주목
지난 19일 카카오의 투자 활동과 자회사 관리를 총괄하는 2인자(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됐다. 23일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가 금융감독원에 출석했다. 그가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식 공개매수를 막기 위해 시세조종 내용을 보고받았거나 지시했을 것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어서다. 이날 오전 10시께 피의자 신분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범수 센터장은 혐의를 인정하는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배재현 대표에게 시세조종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 있는지 등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짤막하게 답변하면서 말을 아꼈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김범수 센터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출석을 통보한 것을 고려할 때 시세조종 관련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진상규명을 자신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더욱이 배재현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혐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법조계와 금융당국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김범수 센터장과 배재현 대표가 시세조종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에 힘이 실리면서 수사 칼날이 어디를 겨눌지 이목이 집중된다.
카카오 최고 경영진 정조준…혐의 벗기 쉽지 않을 듯
수사·금융당국의 칼날은 카카오 최고경영진을 겨누고 있다. 아직 기소 전 단계인 만큼 배재현 대표 등 카카오 경영진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시세조종 혐의에서 쉽게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속이라는 강수를 둔 이유도 김범수 센터장을 겨냥해서다. 특사경은 배재현 대표를 비롯해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등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배재현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증거인멸 및 도망 염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역시 진상규명을 자신하고 있다. 금감원 측은 "배재현 대표는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가 상당해 구속된 후 유치장에 수감돼 있다"면서 "특사경이 구속상태에서 수사해 10일 이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특사경은 23일 출석한 김범수 센터장에게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그가 지시했는지, 또는 보고를 받았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이미 카카오 실무진 휴대전화에서 시세조종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과 문자 등을 확보한 상황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해서도 "수사 결과 객관적 사실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규명돼 있다"면서 "보강 수사를 계속해 처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법원 역시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기각했지만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 자료로 객관적 사실관계는 상당 정도 규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범죄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다는 뜻이다.
원아시아와 공모 관련 수사 불가피
카카오는 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에스엠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카카오와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모펀드와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배재현 대표 구속영장 청구서에서는 시세조종 과정에서 사모펀드 운용사와 공모하고, 이 운용사와 공동으로 투자한 계열사까지 동원했다는 구체적 내용이 담겼다. 다수의 공동 투자로 긴밀한 관계에 있던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짜고 에스엠 주식을 대량 매수해 에스엠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인 12만원보다 높게 유지했다는 내용이다.
장외에서 이뤄지는 주식공개매수의 경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보다 높으면 투자자를 구하기가 어렵다. 하이브가 공개매수에 실패한 이유다. 하이브의 공개매수 발표 일주일쯤 후인 2월16일~17일 원아시아는 자체 자금과 운용펀드 '헬리오스1호'의 자금을 동원해 이른바 '고가 매수, 물량 소진, 종가 관여' 등 시세조작성 주문을 300회 이상 실행했다. 이는 전형적인 작전세력의 매매 기법이다. 공개매수 마감 하루 전인 2월27일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원아시아가 공동으로 투자한 회사인 그레이고 계좌까지 동원해 고가 매수 등의 주문을 냈다. 수사·금융당국은 이 같은 매매행위가 에스엠 주가를 12만원 이상으로 고정시키거나 안정시킬 목적에 따라 이뤄졌고, 시세조종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 제 176조를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에스엠 주식을 매수한 이들 회사가 카카오 측과 관련이 있다는 게 입증되면 5%룰 위반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원아시아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원아시아 측의 대량 지분 매입이 배재현 대표와 공모 아래 이뤄졌고, 사실상 카카오와 원아시아를 하나의 인수 주체로 보아 5%룰 위반을 주장해온 수사·금융당국의 입장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특사경은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회장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다만 지창배 회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이에 특사경이 추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여지도 있다. 신생 PEF에 불과했던 원아시아는 배재현 대표와 배 대표가 과거 CJ그룹 미래전략실 소속이던 시절부터 친분을 쌓은 김태영 원아시아 사장과의 인연으로 카카오의 주요 거래에 경쟁 입찰 없이도 빈번히 등장했다. 이에 김태영 사장도 조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금감원 특사경은 "사모펀드의 매집 건 역시 수사 대상에 해당한다"며 "계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사 대상 확대되나
고려아연도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원아시아가 지분을 매집한 펀드의 자금원이 바로 고려아연이다. 에스엠 공개매수가 활발하던 시절 원아시아 운용 펀드의 최대 출자자(LP)가 고려아연이 다. 펀드 지분 90% 이상을 갖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각종 펀드를 비롯해 채권 등 여러 자산운용사를 통해 다양한 재무적 투자를 하고 있으며 각 운영사의 세부 운영 내역이나 방식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에스엠 경영진과 얼라인파트너스와 관계 등도 수사 대상에 오를 여지가 있다. 에스엠 인수 과정을 둘러싼 전체 과정으로 수사 범위가 확대된다면 에스엠 경영진과 카카오 경영진, 그리고 얼라인파트너스와 교감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공매개수 기간 에스엠 경영진은 자사주 매입 가능성을 등을 언급해 시세조종 의혹을 받고 있다. 경영권 분쟁을 촉발한 얼라인파트너스가 카카오 경영진과 교감이 있었는지도 살펴볼 여지가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2022년 초부터 에스엠의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해왔다. 올해 들어 에스엠 이사회가 얼라인파트너스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전격 수용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다만 이후에는 이중 행보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개인법인인 얼라인홀딩스(옛 씨에이치엘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보유 중이던 에스엠 주식 1만주를 올해 3월 전량 매도했다. 얼라인홀딩스가 에스엠 주식을 인수한 가격대는 평균 5만원 중반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시 에스엠 가격을 고려하면 두 배 넘는 수준의 매각 차익을 거뒀을 것으로 보인다. 또 얼라인파트너스는 보유 중인 주식 전량을 공매도에 활용될 수 있는 대차거래로 제공해 수수료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거래 시점이 논란이 됐다. 하이브의 인수전 포기로 카카오의 승리가 확정되면서 에스엠의 주가 하락이 명확해진 직후에 거래를 단행했다.
얼라인 측은 "운용 전략상 결정으로 적법한 절차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주주가치 제고를 내건 기존 입장과 배치된다는 비난 여론이 있었다. 얼라인 측은 "지분 매각은 운용비용 충당 등 재무적인 이유"라며 "(이창환 대표의 에스엠) 이사 취임 이후에는 거래가 실질적으로 제한되고 행정적인 번거로울 것으로 예상돼 가급적 그 전에 정리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차거래에 대해서는 장기 투자가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의 경우 보유 주식을 대차해 고객 이익을 늘리는 건 이상할 게 없다고 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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