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돈 받아 '부실 학술지'…"논문 게재료만 991억원"
국가 연구·개발(R&D) 지원 과제 논문 상당수가 학계에서 부실 의심을 받는 학술지에 게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7~2022년 한국연구재단 R&D 지원을 받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15만5002건 중 16.5%(2만5581건)가 ‘부실의심 학술지’에 게재됐다.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분석한 결과다. 이 기간 부실 의심 학술지 게재 논문은 2017년 7.7%에서 2022년 19.2%로 늘었다.
‘부실 의심 학술지'란 동료 심사(Peer Review) 등 엄격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돈만 지불하면 쉽게 논문을 실어준다는 의혹을 받는 학술지를 뜻한다. 유명 학술지와 이름만 비슷한 ‘위조 학술지’, 돈만 지불하면 쉽게 논문을 실어주는 ‘약탈적 학술지’, 한 번에 수백 편 논문을 대량 발행하며 간소화된 심사만 거치는 ‘대량발행 학술지’ 등이 있다.
이번 분석에서는 세계 주요 기관의 4가지 저널 평가 목록에 한 번이라도 포함되면 부실 의심 학술지로 분류했다. KISTI의 건전학술활동지원시스템(SAFE), 중국과학원 '국제 저널 조기경보목록', 부실 학술지 목록으로 유명한 '빌의 목록'(Beall’s List), 노르웨이 국립학술출판위원회의 Level-X 리스트다. 공신력을 인정받은 SCI급(SCIE·SSCI·A&HCI) 논문을 대상으로 했다.
부실 학술지에 107편 논문 낸 연구자도
윤철희 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출판윤리위원장(서울대 동물생명공학 교수)은 “분야에 따라 논문 수정에만 6개월 이상 걸리기도 하는데 MDPI 계열 학술지들은 30일만에 검토가 끝나기도 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MDPI에 실린 논문들은 평균 387만원의 게재료를 지불했다. 이인영 의원실은 지난 6년간 이런 식으로 부실 의심 학술지에 쓴 논문 게재료가 991억7900만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자료에 따르면, 특정 연구자가 부실 의심 학술지에 논문을 대량 투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지난 10년간 한국연구재단 R&D 사업을 수주한 연구자 중 18명이 부실 의심 학술지에 650편을 게재했다. 이 중에는 논문 107편을 게재한 연구자도 있었다. 이들 중 9명은 현재(10월 기준)에도 연구재단 R&D 과제를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 의심 학술지 논문이 많은 학교는 경북대(1243건), 성균관대(1201건), 고려대(1113건), 경희대(1082건), 부산대(1074건), 연세대(1005건), 서울대(997건), 한양대(881건), 동국대(786건), 중앙대(779건) 순이었다. 경북대 관계자는 “학교 차원에서 건전한 학술대회나 학술지에 대해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고, 교내 평가에서 부실 의심 학술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논문 편수' 중심 실적 평가 바꿔야
R&D 과제 상당수가 대학에서 이뤄지지만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연구윤리 관련 예산을 40% 감축했다. 이에 따라 연구윤리 관련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윤리 실태조사 등 사업 예산도 대거 삭감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들이 5년 이상 지속되면서 내년부터는 유지, 보수 정도만 해도 운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인영 의원은 “일부 부정한 의도를 가진 연구자들이 개인의 성과 달성을 위해 국가 예산을 유출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며 “투고한 논문의 편수로 실적을 평가하는 현재의 연구 평가 시스템 개혁과 더불어, 이러한 연구자들에 대한 제재·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윤서 기자 chang.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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