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Ⅱ'에 꽂혔던 빈 살만…여권 "사우디 하늘, 한국이 지킬 것"
윤석열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사흘째인 23일(현지시간) ‘오일 머니’를 겨냥한 세일즈 외교에 주력했다. 과거 도로·항만 등 사회기반 시설 위주에서 벗어나 ‘넥스트 오일’ 시대에 맞춰 무기 수출부터 디지털 인프라 구축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이날 첫 성과는 성사 단계에 접어든 국내 고성능 무기 체계의 사우디 수출 건이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사우디 현지 브리핑에서 “방위사업은 사우디와의 협력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대공 방어체계, 화력 무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우디와 대규모 방산 협력 논의가 막바지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일회성 협력이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방산 협력 프로그램을 사우디와 논의하고 있다”며 “우리의 우수한 방산 기술이 적용된 무기 체계가 사우디 국방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도록 협력해 나가고자 하며, 이는 우리 방산 수출 성과를 확대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예멘 후티 반군으로부터 탄도미사일과 드론 등의 공격을 받던 사우디는 요격미사일 수요가 큰 상황이다. 특히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우리나라가 개발한 탄도탄 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에 관심을 보였다. 한국형 패트리엇으로도 불리는 ‘천궁-Ⅱ’는 최대 요격 고도가 15km에 이른다. 표적에 직접 부딪혀 파괴하는 ‘힛 투 킬’(Hit-to-Kill) 방식으로, 지상군과 공군을 주력으로 하는 중동 국가들이 천궁-Ⅱ의 유효성에 주목해 왔다. 여권 관계자는 “곧 사우디의 하늘을 한국 무기체계가 지키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사우디가 상정한 위협 대상이 있다”며 “구체적 무기 체계와 수량을 거론하면 주변 국가가 이를 추정할 수 있어 사우디 측이 민감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사 단계에 와있고 규모와 액수는 상당히 크다. 이렇게밖에 말씀드릴 수 없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와 35억달러(약 4조7300억 원) 규모의 천궁-Ⅱ 계약을 체결했는데, 방산업계에선 이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한다. 당시 UAE는 약 2조 원대 규모의 차륜형 다연장로켓 ‘천무’도 계약했다.
윤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 중 발표되는 ‘한·사우디 공동성명’에도 양국 간 방산 협력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김 차장은 “이번 중동 순방을 촉매제로 우리 방산 수출 시장의 외연을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유럽과 동남아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많다”며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서 ‘K방산’ 세일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경제 세일즈 행보도 가속 페달을 밟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리야드 네옴 전시관에서 한-사우디 건설협력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부제는 ’알울라-카이바에서 네옴까지’였다. 1973년 사우디에 알울라-카이바 고속도로 사업(약 2000만달러)을 수주한 해로부터 50년이 지난 것을 기념하면서, 네옴시티 등 첨단 미래 도시와 디지털 인프라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한국과 사우디가 굳건히 다져온 토대 위에 기술변화 및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인프라 경제협력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우디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 등에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도시건설 역량을 결합한다면 양국이 함께 미래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선 △자푸라 2 가스플랜트 패키지2 사업 △디지털트윈 플랫폼 구축·운영 △모듈러 사업 협력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MOU △디지털 인프라 구축 MOU 등의 계약이 체결됐다. 자푸라 2 가스플랜트 패키지 사업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이 사우디 아람코가 보유한 중동 최대 셰일가스 매장지인 자푸라 지역에서 천연가스를 정제하는 플랜트 건설 사업이다. 약 24억달러(3조 2400억원) 규모다. 또 네이버와 사우디 도시농촌주택부는 사우디 5개 도시에 현실 공간과 똑같은 가상 디지털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해 도시계획 및 관리, 홍수 예측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1억달러(1350억원) 규모로,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 1호 수출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사우디 왕립과학기술원에서 열린 ‘한-사우디 미래기술 파트너십 포럼’에도 참석했다. 성장 잠재력이 크고 파급 효과가 큰 분야로 ▲디지털 ▲청정에너지 ▲바이오헬스 ▲우주를 꼽은 윤 대통령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한국이 사우디와 함께 연대해 나가면 사우디의 도전적 목표를 이루어나갈 뿐 아니라, 세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는 사우디의 ‘킹 사우드’ 대학교에서 학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청년, 미래를 이끄는 혁신의 주인공’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1957년에 설립한 사우디 최초의 대학이자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졸업한 학교다. 대학 역사상 최초로 외국 정상이 한 강연이라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과 사우디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이끌어가는 퍼스트 무버로 거듭나야 한다”며 “이러한 변화와 혁신을 만들고 실천해 가는 원동력은 미래세대인 청년”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가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한 국가 전략인 ‘비전 2030’과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점을 언급하며 “이러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해가는 사우디의 비전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혁신을 통해 비약적 성장을 이룬 나라들은 예외 없이 창의와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미래 인재를 양성했다”며 “변화와 혁신을 만들고 실천해가는 원동력은 바로 미래세대인 청년”이라고 강조했다.
리야드=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가 정윤회와 밀회?" 박근혜 직접 밝힌 ‘세월호 7시간’ [박근혜 회고록] | 중앙일보
- "푸틴, 심정지 상태로 침실서 발견"…또 불거진 건강이상설 | 중앙일보
- '이선균 마약' 파장…"전과 있다" 방송인 출신 작곡가도 내사 | 중앙일보
- "난 14살" 나이 속이고 12세 간음한 30대…감형은 없었다 | 중앙일보
- “한국은 중국 일부”…이제야 드러난 시진핑 속셈 | 중앙일보
- '재벌 3세' 예비남편 루머 난무하자…남현희 "강력 대응할 것" | 중앙일보
- "수억 뜯겨" 이선균 협박한 건 유흥업소 20대 실장…지난주 구속 | 중앙일보
- 손흥민, EPL 7호 골 폭발...통산 득점서 긱스 제쳤다 | 중앙일보
- '40세 연하' 남친 덕에…77세 여가수가 60년 고집 꺾고 낸 앨범 | 중앙일보
- '369억짜리 오줌' 되나…수입된 중국 맥주 3만3903t '어마어마'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