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알츠하이머·파킨슨병 ‘방사선 치료 시대’ 열리나
인지 기능 유지 등 의미 있는 성과
원자력의학원 정연경 박사팀은
신경 염증 치료 연구 결과 발표
암 치료에 주로 쓰이는 방사선이 알츠하이머 치매와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신경질환 치료의 새 영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대상 저선량 방사선 치료 임상시험의 중간 결과에서 인지 기능이 유지되거나 상승되는 등 의미있는 성과가 확인됐다. 파킨슨병의 경우 국내 연구진에 의해 수행된 동물실험에서 방사선 치료의 가능성이 처음 제시됐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0세 이상 치매 추정 환자는 96만여명에 달한다. 치매 극복을 위해 다양한 치료제와 치료법이 나오고 있으나 높은 치료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최근 등장한 몇몇 치매 신약이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춰 치매 진행을 지연하는 것으로 입증됐지만 뇌부종·출혈 등 부작용이 한계로 거론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약물이 아닌 비침습적 치료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모색되고 있으며, 저선량 방사선을 활용한 치매 치료가 그 중 하나다.
강동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정원규 교수팀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연구 과제로 보라매병원, 충북대병원과 함께 지난해부터 저선량 방사선 치매 치료의 효과성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2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알츠하이머 경증 치매 진단을 받은 60~85세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내년 말까지 지속한다. 주 2회씩, 총 3주간 모두 6번의 방사선을 조사(照射)한 뒤 6개월과 1년이 지난 시점에 다양한 검사를 통해 인지 기능의 변화를 살피는 방식이다. 방사선량은 뇌 전이암 환자 치료에 쓰는 양의 0.8~5% 이하로 조절되며 일반 암 치료 선량의 10분의 1 수준이다.
연구팀은 지난달 중간 연구결과를 대한퇴행성신경질환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해 주목받았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모집한 31명의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 중 15명을 대상으로 저선량 방사선 치료 후 6개월 시점에 상태 변화를 분석했다. 환자를 각 5명씩 3개 그룹으로 나눠 대조군은 방사선 치료 없이 기존 치료약만 복용토록 했고 극저선량 방사선 치료군(회당 4cGy씩 6회 총 24cGy 조사), 저선량 방사선 치료군(회당 50cGy씩 6회 총 300cGy 조사)으로 구분했다. cGy는 치료 방사선 조사량 단위인 ‘센티 그레이’다.
분석 결과 6개월 후 극저선량군과 저선량군의 알츠하이머병 평가 척도 ‘ADAS-K’는 각 평균 0.2점, 0.4점이 떨어져 대조군(3.8점 감소) 보다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훨씬 늦었다. 또 간이 인지상태 검사인 ‘K-MMSE’의 경우 극저선량군과 저선량군 각 평균 0.8점과 1.2점이 증가해 대조군(1.8점 감소)에 비해 오히려 인지 기능 상승을 보였다. 이밖에도 다양한 인지 기능 진단 도구(CDR, CGA-NPI, K-iADL)에서 방사선 치료 후 유의미한 인지 기능 상승이나 유지가 확인됐다. 정 교수는 23일 “6명 환자를 대상으론 MRI를 통해 치료 전후 대뇌 용적을 비교했는데, 실험군(4명)에서는 해마나 대뇌실의 용적 변화가 거의 없는 반면 대조군(2명)에서는 해마의 위축과 함께 대뇌실 용적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형적인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실험군에서 방사선 치료와 관련된 어떠한 부작용도 발견되지 않았다.
저선량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호메시스 효과(Radiation hormesis)’를 이용한 것이다. 다량의 방사선은 생명체에 피해를 주지만 소량의 방사선은 오히려 자기 보호 작용, 항상성 유지 활동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도 저선량 방사선 치료 시 신경보호 작용이 증가하고 ‘미세아교세포(독성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제거 등 뇌속 청소부 역할)’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정 교수는 “다만 추적 관찰이 6개월로 아직 짧고 분석한 환자 수가 적어 추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암이 아닌, 치매 환자 치료에 최적화된 방사선 장비도 개발 중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 정연경 박사팀은 국내 최초로 중저선량 방사선의 파킨슨병 신경 염증 치료 효능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Neurobiology of Aging) 최신호에 발표했다. 파킨슨병은 중뇌의 흑질부에서 신경 염증으로 인해 도파민 분비 세포가 손상돼 발생한다. 몸 떨림, 이상 운동 장애 등을 일으키는데, 현재 진행을 멈추는 근본적 치료법은 없는 상황이다.
연구팀은 파킨슨병 유발 실험 쥐의 뇌에 중저선량 방사선 조사(0.6Gy씩 5회) 후 7일째 뇌 신경 염증 관련 단백질(GFAP)이 방사선을 쬐지 않은 쥐에 비해 20% 정도 감소하는 걸 확인했다. 또 다른 염증 단백질(ICAM-1)은 방사선을 조사하지 않은 쥐 보다 약 7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 박사는 “파킨슨병에 방사선 치료 가능성을 보여준 세계 최초의 연구”라면서 “기존 파킨슨병 치료약은 결핍된 도파민을 올려주는 기전인데 비해 방사선 치료의 경우 도파민 결핍의 원인인 신경 염증을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보다 더 근본적 치료에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임상시험 등 추가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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