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임기응변식 재정정책, 경제에 미칠 부작용 따져 봐야

2023. 10. 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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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경감 연장, 수요억제 악영향
세수결손, 시중금리↑ 부추길 수도
재정정책의 기본 다시금 생각할 때

지난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유류세 경감 조치(휘발유 25%, 경유와 LPG 37%)를 연말까지 연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한시적이라던 이 조치는 2년 넘게 지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로 국제석유가격이 불안정해져서 서민 부담 경감과 물가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고급차 소유주가 경차 주인보다 더 큰 수혜를 보고 차 없는 사람은 아예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서민들에게 보탬이 되는지 모르겠다. 물가도 그렇다. 상품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당장의 물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가격 변동에 따른 수요 억제 기능을 막아버려 물가 안정 기조에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 조치를 장기간 지속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 만일 구조적 차원에서 세금 경감이 필요하다면 법을 개정해 세율을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유류세 경감 조치로 연간 6조원 이상의 대규모 세수 감소가 발생하는 만큼 여러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미 2021년 말에 각종 세율을 낮춘 바 있고, 이것이 작금의 경기 부진과 맞물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금도 깎아주고 거기에 맞춰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을 줄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고 시기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세금 줄어도 경제 나아지지 않는다

금년에 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 나라살림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획재정부 발표에 따르면 금년 8월까지의 국세 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48조원이나 적게 걷혔다고 한다. 국내외 경기가 침체 국면이어서 기업들의 이익이 줄어들고 부동산 거래가 부진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재작년에 단행한 법인세(구간별로 1% 포인트 인하), 종합부동산세(다주택자 중과세율 폐지 및 공제기준 상향), 소득세(과세표준 인상) 등의 세율 인하 조치도 한몫하고 있다.

이렇게 세금을 깎아주면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고용도 증가하는 등 경제가 활성화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돌이켜 보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세율을 인하했었지만 결과는 항상 기대 이하였다. 기업 투자는 세금 말고도 규제나 자금조달 여건 등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런 것을 등한히하고 투자가 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아마추어적이다. 특히 경기가 불투명해지면 투자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자 투자 연기 사례가 빈발하고 있고, 투자를 한다고 해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핑계로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결국 세금을 깎아줘 남 좋은 일만 하는 꼴이다.

임시변통식 세수결손 충당, 경기 멍든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는 금년도 세수결손 규모가 59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시장에서는 전체 예산의 13%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에도 놀랐지만, 이로 인해 정부 사업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더 걱정하고 있다. 재정지출이 줄면 물가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경기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통상 세금이 덜 걷히면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재원을 채우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재정건전화를 위해 결코 빚을 내지 않겠다고 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선 금년도 예산에는 잡혀 있지만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 이른바 불용예산(매년 10조원 정도가 남음)과 지방정부에 대한 교부금(30조원에 달할 전망)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경기에 중립적이라 하겠는데, 최근 여러 지자체가 금년과 내년도 예산사업을 축소 또는 취소하는 것에 비춰 어느 정도의 재정지출 감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또 정부는 이와 별도로 정부가 관리하는 기금을 활용해 세수결손을 메울 방침이라고 한다. 본연의 목적과 다르게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 께름칙하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간접적인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즉 세수결손 충당을 위해 시중의 단기금융상품에 예치돼 있는 기금의 여유자금이 인출되는 과정에서 단기시장금리가 상승할 것이고, 이는 다시 금융기관의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지난 1월에 0.25% 포인트 오른 이래 변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택담보대출금리가 7%를 돌파하고 회사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 저간의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시중금리의 상승은 민간의 자금조달비용을 높인다는 점에서 경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맹목적 재정건전화 부작용 우려된다

내년도 예산이 656조원으로 편성돼 20년 이래 가장 낮은 증가율(2.8%)을 기록할 것 같다. 정부는 재정건전화를 위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연구개발(R&D) 예산을 감축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예산을 허투루 쓰는 개별사업을 적발해 조처하는 대신에 전체 예산을 줄이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인다. 차라리 긴축 재정으로 인한 경기저감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아닐까 싶다. 내년도 세입은 금년과 마찬가지로 여의치 않을 것이기에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피한데, 경기에 민감한 사업보다는 결과가 곧바로 확인되지 않는 연구개발사업을 줄여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R&D 투자는 국가의 장래를 결정짓는 핵심 사업이다. 특히 민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과감하게 뒷받침해야만 하는데, 이런 일을 뒤로하고 도처에 공항을 짓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시 까는 일을 앞세워서는 나라의 미래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재정정책은 불경기 때에는 확대하고, 호경기 때는 긴축적으로 운영해 다가올 불경기를 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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