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믿음이 그렇게 만든다

2023. 10.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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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에 ‘문공’이란 명군이 있었다. 역사가들은 그가 명군이 된 이유로 주변 인재들에게 조언을 잘 구했던 점을 손꼽는다. 하루는 그가 오랜 충신 ‘호언’에게 물었다.

“적국과의 전쟁이 빈번한데 어떻게 해야 백성들이 기꺼이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갈 수 있겠소. 재물을 넉넉히 주면 되겠소?” 그러자 “아니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시 “그러면 궁핍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죄지은 자를 사면하면 되겠소”라고 묻자 호언은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소”라고 반문하자 호언이 답했다. “공이 있는 이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이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면 됩니다.” 그러자 문공이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징벌의 경계는 어디까지 하면 좋겠소?” 호언이 답했다. “친근한 사람이나 존귀한 사람을 피해 가지 않고 잘못이 있다면 총애하는 사람에게도 형벌을 내려야 합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란 고사성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이 고사성어는 군주뿐 아니라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모든 이들이 되새겨야 할 중요한 원칙으로 회자됐다. 그런데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신상필벌의 핵심이 ‘상필벌’, 즉 상과 벌을 준다는 통치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통치를 통해 결국 백성들에게 생기는 ‘믿음’, 바로 ‘신’(信)에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군주가 상필벌의 행위를 엄정하게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선에는 상이, 악에는 벌이 주어진다는 대중적 믿음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 후로는 백성들이 알아서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한다는 뜻이다. 이 해석이 와 닿는다.

이런 건 어떠한가. 사람들이 왜 자기 계발에 몰두할까. 믿음 때문이다.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의 소멸로 어느새 자신이 자기 삶을 책임져야만 한다는 믿음에 지배를 받기에 좀처럼 쉴 수 없다. 믿음이 만든 피로사회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커리어는 단절되고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고 극한의 육아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왜들 결혼을 안 하는가. 가족의 둥지인 집을 구할 수 없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부동산은 왜 이렇게 계속 오르고 다들 집 장만에 목을 맬까. 대한민국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절대 부동산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무엇보다 왜 사람들은 배금주의에 빠지는가. 돈이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넘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많이 벌면 성공한 사람이 되지만 선하게 산들 돈이 없으면 비참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게 우리 소시민들의 믿음이 만든 사회이다.

그래서 지도자가 중요하다. 성경 속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아니라 주로 왕, 재판관, 종교 지도자들을 정죄한다.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다루는 사람임을 감안하면 그 정죄의 대상은 한마디로 ‘법을 만드는 자, 시행하는 자, 판단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권력자들이다. 그리고 대중은 그들이 법이라는 도구로 ‘상필벌’ 하는 것, 즉 그들이 그린 밑그림 위에 자신들의 삶을 그려 넣는다. 그런데 이들이 좋은 밑그림을 그리기는커녕 도리어 그들로부터 악이 나왔기에 정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권력은 사회에 기준을 강제하는 힘이다. 그 힘으로 대중들에게는 일종의 ‘믿음’이 생기고, 그게 문화를 만들고 그대로 산다. 그래서 윗물이 더러우면 아랫물도 더러워진다는 속담이 진실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의 권력은 국민에게 어떤 믿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답답하지만 말을 아끼겠다. 다만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 믿음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가나안 성도’ ‘플로팅 크리스천’이라는 현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 나는 이게 ‘믿음’의 문제로 보인다. 어느새 지역 교회를 다닌다면 신앙이 성숙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저하되고 심지어는 상처가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게 아닐까. 믿음을 줄 수 있는 권력자들, 믿음을 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타나길 바란다. 그러면 자연스레 앞날은 바뀔 것이다.

손성찬 이음숲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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