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의 시시각각]대통령의 속앓이
“이번에 김태우는 주저앉히려고요.”
“그건 사면을 잘못했다는 얘기로 들릴 텐데….”
10ㆍ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50일가량 앞둔 8월 하순,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가 용산 대통령실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8ㆍ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김태우에게 공천을 줘야 하는지, 안 줘도 상관없는 건지 해석이 분분하던 때였다. 해당 인사는 "김태우가 사면되자마자 출마하겠다고 설친다. 사전에 대통령이랑 얘기가 다 된 것처럼 떠든다. 공천 못 받으면 무소속으로라도 나온다고 한다. 이런 식이면 당에 부담만 된다. 아예 출마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난감해했다. 그는 “대법원 선고를 받은 지 3개월밖에 안 된 김태우를 사면한 건 억울하게 피해 본 공익제보자를 국가가 방치해선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편향된 ‘김명수 대법원’을 겨냥한 경고 메시지도 있다. 김태우를 공천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당이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출마 자체를 막는 건 다른 문제다. 그건 사면해선 안 될 사람을 대통령이 무리해서 사면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겠나”라며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관련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불쾌해했다는 얘기도 곧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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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 보궐 전후 드러난 여당의 난맥
공천, 수습 과정서 권력 눈치만 살펴
무능한 여당도 대통령 책임 아닌가
」
며칠 뒤 국민의힘 연찬회(8월 28일)가 열렸다. 윤 대통령은 12여 분간 즉흥 연설에서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세력과는 싸울 수밖에 없지 않나. 제일 중요한 건 이념”이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아차’ 싶었는지, 즉각 김태우 공천 가능으로 선회했다. ‘김태우에게 윤심(尹心)이 실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경선 통과도 일사천리였다. 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여권 인사는 “당시 대통령 뜻은 특정인 출마를 강제로 막는 건 곤란하다는 거지, 누굴 공천 주라 마라가 결코 아니었다. 근데 마치 대통령이 뒤에서 다 조종한 것처럼 비치니…”라며 답답함을 표했다.
‘낙하산 후보’를 당도 썩 반기지 않았다. 매머드급 선대위가 꾸려졌지만, 막상 각 당협은 ‘우리도 와서 선거운동했다’며 머릿수 채워 얼굴 슬쩍 내미는 게 다였다. 온몸 던지는 이는 드물었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강서가 불리하다는 걸 누가 모르나. 그래도 ‘바닥 조직’은 나름 탄탄한 편이다. 그게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누가 장난친 건지, 다 보고됐다. 대통령도 부글부글하셨다”고 전했다.
보궐 참패 뒤에도 당은 우왕좌왕했다. 대통령 심기만 살피는 듯했다. 선거 이틀 뒤인 13일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야”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그제야 당 지도부는 한숨 돌리는 듯했다. 부랴부랴 김기현 대표 등 당 실세 3인이 모여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수습책을 마련했다. 임명직 당직자 전원 사퇴→추가 인선→혁신위 발족 등의 수순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책위의장 돌려막기, 당 3역 영남권 독식, 막말 인사 중용 등 논란이 또 불거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막말로 우리 대통령이 예전 박근혜처럼 김무성(당 대표) 전화 안 받고, 면담 거부하는 식은 아니지 않나. 여당 인사 수시로 만나고, 조리있게 얘기하면 최대한 수용한다. 그러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정무적 판단 빵점에, 사태 터지면 용산에 떠넘기니 대통령도 속상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보궐 참패 전후 여권 핵심부에서 벌어진 실상을 전해 듣자니 ‘대통령도 골치 아팠겠네’ 싶었다. 짐작과 달리 최고 권력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아 보였다. 국민과 야당이야 그렇다쳐도 여당마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무능한 여당, 누가 만들었는가. 이준석 쳐내고, 나경원ㆍ안철수 윽박지르고, 우격다짐으로 김기현 대표 세운 건 대통령 본인 아닌가. 이제 와 누굴 탓하랴. 윤 대통령 집무실 책상에 놓인 명패를 보면 더욱 그렇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
최민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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