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윤의 이코노믹스] 인플레이션·고금리·환율 불안, 세계 경제 뒤흔든다
‘전시 체제’로 가고 있는 글로벌 경제
전쟁은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
역사상 전쟁의 기록이 제공하는 전시 경제의 첫 번째 특징은 인플레이션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세계 경제를 뒤흔든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결국 주요 배경이 전쟁이었다. 제1차 석유파동에는 제4차 중동전쟁이, 제2차 석유파동에는 이란 혁명과 뒤이은 이란-이라크 전쟁이 있었다. 제 1·2차 석유파동 당시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연 25~30%에 달할 정도였다.
■
「 전비 조달 위해 국채 발행 늘면
물가·금리 뛰고 통화가치 하락
인플레 잡으려 금리 인상 불가피
금융시장 불안 세계 각국서 확산
일부 국가는 전쟁 특수 누리기도
안정적 자금 확보의 중요성 커져
」
전쟁 당사국과 인접국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예를 들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 물가상승률은 39.7%(74년), 39.3%(75년)에 달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1980~85년 이스라엘의 물가상승률은 계속 연간 100%를 넘었는데, 1984년에는 373%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은 자국 통화 ‘셰켈’의 포기를 논의할 정도였다.
미국 물가도 매번 전쟁 영향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주요 인플레이션 시기를 살펴보면 전쟁 상황과 상당 부분 겹치는데, 바로 다음과 같다. ①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가격 통제가 해제되면서 최고 연 20%에 달하는 전후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1940년대 중후반 ②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 ③19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확전 시기 ④1970년대 초중반 제4차 중동전쟁과 제1차 석유파동 ⑤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이란-이라크 전쟁과 제2차 석유파동 ⑥1990년대 초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 전쟁 ⑦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인플레이션은 물가 제어를 위한 통화 당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비롯해 이자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쟁 경비 조달을 위해서는 재정적자 혹은 국채 발행 증가가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국채 공급 증가로 인한 채권가격 하락 또는 시장 금리 상승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글로벌 전시 경제의 두 번째 특징은 채권 가격 하락과 시장 금리 상승이다. 미국 시장 금리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10년 만기 미국 재무부 채권 수익률이 상승하던 시기 역시 미국의 인플레이션 시점과 상당 부분 겹친다. 시장금리 상승이 주요 전쟁 시점과도 깊이 연관된다는 이야기다.
영국, 2차대전으로 금융패권 놓쳐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초래되는 이유는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화폐 증발 때문이다. 전쟁 당사국의 통화 공급 증가는 해당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시경제의 세 번째 특징은 전쟁 당사국의 통화가치 하락이다. 특히 전쟁에 따른 생산시설 파괴로 경제력 약화를 경험한 국가라면 이를 반영한 통화가치 하락은 더욱 심각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이던 1944년, 세계 각국 대표단이 미국 브레튼우즈에 모여 새로운 전후 국제금융 질서를 모색한 것도 기존 국제 금융시장을 이끌던 영국이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핵심 당사자로 산업 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영국이 전비 지출에 지친 데다 외화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하던 때였다. 결국 전쟁의 직접 피해를 적게 입은 채 세계 경제를 주도하게 될 미국을 중심에 두고, 금과 연계된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가 탄생했다.
그러나 미국의 베트남전 수행에 따른 천문학적인 전비 지출과 이를 위한 달러 발행, 그리고 이에 따른 달러 가치 하락으로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도 붕괴하고 말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 루블화 폭락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국가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외환 시장의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전 세계적으로 통화가치 변동이 심해지는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경우는 개전 이전엔 환율이 1달러당 70~80루블 정도였는데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해 3월엔 1달러당 140루블대까지 치솟았다. 현재 환율도 1달러당 100루블대로 루블화 가치가 전쟁 이전에 비해 크게 하락한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주요 수출국이어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로 자국 통화가치가 강해질 수 있는 여건임에도 통화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굳건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따른 직접 피해 당사자가 아니며, 강력한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현재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통화가치를 유지한다.
전쟁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그 강도는 국가마다 다르다. 이를 제어하기 위한 기준 금리 인상 정도도 상이할 수밖에 없어 이로 인한 국가 간 금리 격차와 그 변화는 환율 변동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여러 국가의 환율 변동이 다양한 패턴을 보이면서 세계적으로 외환시장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져 외환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 즉 전반적으로 시장 금리는 상승하는 가운데 외환시장은 불안정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일본,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 재기 성공
이처럼 전쟁의 비극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환율 불안정으로 이어져 전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을 주지만, 산업시설이 전투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입은 국가가 아니라면 역설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전쟁이 인플레이션, 금리,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전 세계적으로는 명확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경기 측면에서 어떤 영향이 발생하는지는 전쟁이 실제로 어떤 지역에서 벌어지는지를 따져야 한다. 만약 전투 지역이 산업시설이 밀집하고 생산과 소비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전쟁의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이라면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인접 국가 중심으로 군수 및 관련 생산 유발효과가 클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다. 1929년 대공황으로 1933년까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극심한 경기침체에 시달리던 미국은 뉴딜(New Deal)을 비롯한 적극적인 경기 대응 정책을 통해 1934년부터 플러스 경제성장으로 반전했다가 1938년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며 제2차 불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1939년 유럽에서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미국 경제는 경기 회복세로 전환했다. 진주만 사태와 함께 본격 참전한 이후 1941~43년 기간에는 연간 15~20%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대공황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된다. 유럽처럼 자국 영토에서 전쟁이 발생한 당사국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
한국전쟁 특수로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경제적 절망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일본의 사례, 베트남 전쟁 특수로 경제 발전의 주요 추진력을 확보했던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례 등은 모두 자국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가운데 전쟁을 통해 경기 부양 효과를 누렸던 ‘비극의 역설’이다.
이러한 관점을 현재의 세계적인 안보 불안과 갈등, 전쟁 상황에 적용해보면 일부 경기 부양 효과를 예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산하는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상승 부담, 그리고 불안정한 환율 움직임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세계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가계와 기업 모두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 구매력 감소가 불가피하고, 금융·외환 시장 불안에 따른 안정적인 자금 조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가 정윤회와 밀회?" 박근혜 직접 밝힌 ‘세월호 7시간’ [박근혜 회고록] | 중앙일보
- 평판 1위 강동원 2위 고윤정…요즘 제작사가 돈 쏟는 '필승 전략' | 중앙일보
- '40세 연하' 남친 덕에…77세 여가수가 60년 고집 꺾고 낸 앨범 | 중앙일보
- "수억 뜯겨" 이선균 협박한 건 유흥업소 20대 실장…지난주 구속 | 중앙일보
- 손흥민, EPL 7호 골 폭발...통산 득점서 긱스 제쳤다 | 중앙일보
- "손 넣어 만지세요"…압구정 알몸 박스女, 이번엔 홍대에 떴다 | 중앙일보
- 시진핑은 왜 한국을 중국의 일부라고 했나 [시진핑 탐구] | 중앙일보
- 양세형, 홍대 109억대 건물주 됐다…홍대 정문서 걸어서 3분 | 중앙일보
- "中톱스타 장쯔이 이혼, 왕펑 불륜 때문"…6500억 재산 분할은 | 중앙일보
- "첫 만남에 경호원 대동"…남현희, 15세 연하 재벌 3세와 재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