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 빼앗길까봐? 7년째 닫힌 대구 ‘삼성 건물’ 정체
“하도 개관을 안 하니까, 혹시 좋은 기(氣)를 빼앗길까봐 공개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5년 넘게 주변 산책하면서 이 건물을 봐왔으니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지난 19일 오전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서 만난 북구 주민 최모(43)씨는 캠퍼스 입구에 덩그러니 서 있는 4층짜리 건물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건물에는 ‘株式會社 三星商會(주식회사 삼성상회)’라고 쓰여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입구에는 ‘내부 공사 중’이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이 건물은 옛 삼성상회의 모습을 재현한 건물이다. 삼성상회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설립한 삼성그룹의 모태다. 이 회장은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 중구 인교동에 삼성상회 목조건물을 세워 청과물, 건어물 등을 팔았다. 97년 붕괴 우려로 옛 건물은 철거됐지만, 2016년 12월 복원된 모습이 공개됐다. 삼성이 공사비 900억원을 들여 북구 침산동 옛 제일모직 터에 삼성창조캠퍼스(연면적 3만600여㎡)를 조성하면서다.
문화벤처·융합벤처창업·주민생활편익·삼성존 4개 구역 중 삼성존에 삼성상회가 들어섰다. 지상 4층, 면적 330㎡ 규모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집무실과 접견실, 숙직실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건물을 지을 때 삼성물산이 보관하던 옛 삼성상회 건물 자재를 활용해 역사적 의미도 깊다.
캠퍼스가 문을 연 지 7년째지만, 삼성상회 건물은 단 한 번도 시민들에게 공개된 적이 없다. “7년째 내부 공사가 덜 됐다니 말도 안 된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입사원에게만 공개할 계획이라더라” 등 추측만 무성하다.
삼성존에 있는 제일모직 기숙사 전시관, 제일모직 기념관도 마찬가지다. 모두 “준비 중(공사 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제일모직 기숙사 전시관의 경우 밖에서 기숙사 목욕탕을 재현한 공간 등 내부가 살짝 보이긴 했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다. 기숙사의 경우 옛 제일모직 직원들의 숙소와 목욕탕·빨래터·전시관·카페 등 기숙사 부대시설로 이뤄져 있다. 캠퍼스 관계자는 “아직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개관 계획도 미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쪽짜리 캠퍼스에 애가 타는 건 지방자치단체다. 당초 북구는 삼성존이 개관하면 중구 인교동 호암고택과 옛 삼성상회터 등을 연계한 관광코스로 개발할 계획이었다. 삼성창조캠퍼스 외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회사 풍국면, 대구 최초 안경박물관 등을 연결해 근대산업거리로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북구는 2021년부터 삼성을 상징하는 ‘경제신화도보길’이라는 관광 코스를 운영 중인데, 삼성존이 개관하게 되면 이 코스의 인기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구청 관계자는 “인근 관광 코스 등을 삼성존과 연계할 것으로 계획했는데 개관이 늦어져 아쉽다”면서도 “삼성 소유의 건물이니, 지자체에서 관여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삼성 측은 현재 개관을 준비 중이라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개관 시기나 방법에 대해서 정해진 것이 없다”며 “내부 콘텐트를 정비하면서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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