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팔고, 엔 산다… ‘엔저’ 타고 바빠진 환테크

김진욱 2023. 10. 2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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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예금 한달새 81억 달러 감소
엔 예금 잔액은 올 첫 1조엔 돌파
은행들 투자 편의 높인 상품 출시
국민일보DB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30대 직장인 A씨는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내려갔던 지난 12일 1000만원을 엔화로 바꿨다. 내달 일본 여행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경비 몫은 200만원뿐이고 나머지는 투자 목적이다. A씨는 엔저 효과를 이용해 일본 여행 중 스마트폰 ‘아이폰15 프로’ 모델도 구매할 예정이다. 일본 내 아이폰15 프로 판매가는 17만4800엔(약 158만원)으로 한국 판매가(170만원)보다 12만원가량 저렴하다. A씨는 “최근 원·엔 환율이 과도하게 내려간 것 같은데 일본 경제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은 만큼 언젠가는 다시 1000원대로 복귀할 것으로 본다”면서 “평소 일본 여행도 자주 가는 편이라 엔화를 사둘 유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근 엔저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환테크족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강달러 현상에 힘입어 달러화를 팔아 차익을 실현한 뒤 가격 메리트가 있는 엔화를 사들이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일본이 역대급 엔저에 여행지로서 매력도 부각되면서 외환 시장에서 엔화의 뜨거운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 달러화 예금 잔액은 531억7300만 달러(약 71조9430억원)로 전월(612억8600만 달러) 대비 81억1300만 달러 감소했다. 무려 11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한 달 새 빠져나간 것이다. 이 중 일부는 엔화 예금으로 이동했다. 지난 10일 기준 5대 시중은행 엔화 예금 잔액은 1조369억9900만 엔(약 9조3600억원)으로 집계됐다. 5대 시중은행 엔화 예금 잔액은 올해 1월 말 7583억1800만 엔에서 4월 말 5977억6300만 엔까지 3개월 연속 내리막을 걷다 이후 5개월째 상승세다. 지난달 말(1조335억1800만 엔)에는 올해 처음으로 1조 엔을 돌파했다.


이는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행(BOJ)이 강력한 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본은 장기 저물가에 대응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2016년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도입한 뒤 현재까지 연 -0.1%를 유지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 중 나 홀로 보이는 이례적인 행보다. 이에 지난 4월 초 10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6월 들어 900원대 초반까지 급락했다. 지난달 중순에는 4거래일 연속 800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900원대 초반에서 횡보 중이다.

엔저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우도 다이스케 미쓰이스미토모 연구원은 BOJ가 통화 완화 정책을 유지해 연내 엔·달러 환율이 160.35엔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최근 내놨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 선까지 하락했던 것은 1990년 4월이 마지막이었다. 엔·달러 환율이 160엔까지 내려앉으면 원·엔 환율은 870원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넘고 원화가 강세를 보일 경우 원·엔 환율이 다시 800원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엔저 현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OJ가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에 따르면 사쿠라이 마코토 전 BOJ 정책 심의위원은 BOJ가 이르면 이달 중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간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도 지난 16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엔화 약세가 과도해지면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은행권에서는 엔화 투자 편의성을 높인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달러화만 가입 가능했던 ‘바로 보는 외화 통장’에 엔화를 추가했다. KB국민은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계좌를 개설한 뒤 돈을 넣으면 엔화 환율 변동에 따른 실시간 수익률을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엔화를 입출금할 때는 80% 우대 환율도 제공한다. Sh수협은행은 가입 시 지정한 목표 환율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해지되는 ‘Sh 똑똑 환테크 외화 적립 예금’을 내놨다. Sh수협은행 모바일 앱을 통해 가입할 수 있으며 최대 월 1만 달러어치 엔화와 달러화, 유로화 입금이 가능하다. 최대 70% 우대 환율을 제공하며 오는 12월 29일까지 목표 환율에 도달해 예금 만기 이전에 자동 해지된 고객에게는 약정 이율을 적용해 환차익도 준다.

환테크 시작 전 반드시 알아둬야 하는 사항이 있다. 우선 엔화를 비롯한 외화 예금의 경우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돼 원금을 포함해 최대 5000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다만 일본 기준 금리가 제로(0) 수준이라 이자 수익이 없어 엔화 환차익이 크지 않다면 큰 재미를 보기 힘들다. 환차익에는 별도의 세금이 부과되지 않지만 이자의 경우 15.4%의 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외화 예금 대신 투자할 수 있는 외화 상장지수펀드(ETF)의 경우 환전 수수료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증권사 모바일 앱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사고팔기도 간편하다. 다만 ETF 매매 차익에 대해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증권사별로 다르지만 ETF에는 0.2~0.4% 수준의 운용 수수료도 부과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 국제 정세까지 불안정해 환율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투자 결정 전에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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