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 건강한 사람은 득보다 실… “위장 출혈 위험 커”
정영훈 중앙대광명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저용량 아스피린(하루 100㎎ 이하)은 2000년대 초반까지 피를 묽게 하는 항혈전 작용이 입증돼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때문에 상비약으로 구비해 두고 매일 한 알씩 먹거나 해외에서 주문해 사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근래 그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심혈관질환 1차 예방 효과에 따른 이득 보다 출혈성 사건(위장·뇌 출혈) 등 손해가 더 크다는 해외 연구들이 연이어 나오는 상황이다. 1차 예방은 질병 발생 전에 원인을 제거하거나 줄이는 것을 말한다. 최근 중앙대광명병원 순환기내과 정영훈 교수팀은 건강하거나 심혈관질환 위험 인자 및 증상이 없는 동아시아인에도 예방적 차원의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심장학회 학술지(JACC Asia) 최신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정 교수는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은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 시 서구인과 심혈관질환의 예방 효과 차이는 크지 않은데, 위장관 출혈 위험이 서양인에 비해 훨씬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인종에 따른 아스피린의 예방적 효과 차이를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국내 혈전 연구 권위자인 정영훈 교수로부터 아스피린 관련 최신 연구에 관해 들어봤다.
-심혈관질환 예방약 입지가 흔들린다.
“아스피린은 1897년 펠릭스 호프만이 순수하고 안정된 형태의 ‘아세틸살리실산’을 합성하는데 성공해 오랜 기간 진통 소염제로 쓰여 왔다. 1980년대 심혈관질환 예방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득 보다 실이 크다는 연구들이 지속 발표되면서 지난해 미국 질병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는 60세 이상 고령은 심혈관질환의 1차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하면 안된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또 40~59세는 10년 심혈관질환 위험도가 10% 이상인 고위험군인 경우 1차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 사용을 고려하도록 했으나 치료 결정은 개별적으로 이뤄지도록 주문했다.”
-어떤 이유인가.
“아스피린이 심혈관질환 예방에 기여하는 바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건강하거나 심혈관질환 위험이 없는 경우 굳이 예방적 차원에서 저용량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심장학회(2018년) 미국심장학회(2019년)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도출했다. 오히려 위장관이나 뇌 출혈 위험이 더 높다는 이유에서다. 우리 몸의 ‘COX-1 효소’는 위장관 점막을 보호하는 물질(프로스타글란딘)을 생성하는데, 아스피린은 COX-1 효소를 저해해 점막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아스피린은 혈소판(혈액 응고 기능)을 억제해 피를 묽게 하므로 출혈을 돕기도 한다.”
-이번 연구의 의의는.
“일반적으로 의학 연구는 미국·유럽인들을 모집단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아시아인 대상으로도 아스피린의 심혈관질환 1차 예방 효과 검증이 필요했다. 2012년부터 ‘동아시아인 패러독스’ 개념을 만들어 인종간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번 연구는 2개의 동아시아인 그룹(1만7003명)과 9개의 서양인 그룹(11만7467명)을 메타(문헌)분석해 비교했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위중한 출혈 발생 빈도가 동아시아인에서 유의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아스피린 사용군의 주요 출혈 위험은 대조군 대비 서구인은 1.45배 였으나 동아시아인은 2.48배 높았다. 특히 아스피린 사용군의 위장관 출혈 위험은 동아시아인이 3.29배, 서구인이 1.56배였다. 아스피린 복용에 따른 주요 심혈관계 사건(MACE) 발생 위험은 동아시아인은 13%, 서구인은 10% 정도 낮아 비슷했다.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는 큰 차이 없었다.”
-동아시아인 위장 출혈 위험이 더 큰 이유는.
“동아시아인은 서구인 보다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 감염률이 높다(한국인의 약 50%가 양성, 미국·유럽인은 40% 미만). 이로 인해 위장 점막에 염증이 유발돼 있는 상황에서 아스피린 복용이 출혈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음주와 흡연, 진통제 등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 복용 등 위험 요인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전히 심장에 좋다며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이 많은데.
“심혈관질환 1차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이 무의미해졌으나, 꼭 복용을 해야겠다면 위장관 출혈 예방을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출혈 위험을 낮추기 위한 약제(양성자펌프억제제)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 추후 스타틴 같은 약제가 아스피린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며 출혈 위험이 낮은 혈전 치료 약(항혈소판제) 발굴이 필요하다.”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약제 외에 권할만한 사항은.
“담배를 피운다면 금연하는 것이 좋다. 술 역시 하루 한 두잔 이하로 줄이고 가급적 금주하는 것을 권한다. 적절한 운동과 균형잡힌 식단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은 심혈관질환의 선행 지표이므로, 이를 갖고 있다면 각별히 관리해야 한다. 정기적인 건강검진 역시 중요하고 가족력이 있다면 더 신경쓰는 것이 좋겠다.”
글·사진=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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