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중동 사태로 물가·금융 불안 가능성…면밀히 지켜봐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의 확전 여부를 한국 경제의 주요 변수로 꼽았다. 물가를 자극할 뿐 아니라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어서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책에 대해서는 “규제 강화가 우선이지만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다면 금리 인상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23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앞으로 상당 기간 물가에 중점을 두고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연초부터 물가상승률이 내려와서 통화정책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유가가 올라가서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7% 올라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내년 말 2%대로 수렴할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국제유가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변동성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금융‧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유가 문제나 중동 사태가 합해지면 미국 달러가 안전자산이 돼 자본이 더 빠져나갈 수 있어 우려된다”면서다. 현재 2%포인트로 벌어져 있는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자본유출 경계심을 키우는 가운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자본유출 가능성을 묻는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질의에 대해 “미국이 (금리를) 한 번 정도 더 올리거나 이제는 안 올리는 쪽으로 가 있어서 지난해보다 이자율 격차가 벌어지더라도 금융시장 영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미국 통화정책 자체보다 중동사태가 커지는 것을 더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 김영선 의원이 미 고금리 장기화 영향을 묻는 질의에 대해서도 “당분간은 미국 통화정책뿐 아니라 중동 사태가 위험으로 대두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한은은 “현재까지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확전 가능성이 있어 향후 전개 상황을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날 이 총재는 미 국채금리 급등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국 경제 영향에 대해 묻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의 질의에 대해 “상승세가 계속될지 한두 달 사이 정리될지 지켜봐야 한다”며 “한국은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도 시장금리가 올라가서 긴축 정도가 올라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시장금리 상승이 자본유출을 완화하는 측면도 있어 장단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문제도 이날 국감 테이블에 자주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이 총재 입장을 묻자 “금융시장 불안 문제로 완화했던 규제를 다시 조이고, 그래도 증가세가 잡히지 않으면 그땐 심각하게 금리 인상을 고려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야 책임 공방도 벌어졌다.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완화로 가계부채를 희생양 삼아 부동산 버블을 떠받치는 정책을 펴고 있다(양경숙 의원)”고 지적한 반면, 여당은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면 문재인 정부 시절에 가계부채가 504조원 증가했다(박대출 의원)"고 맞받았다.
한편 이 총재는 “현재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아 경기 침체기가 맞다”고 진단했다. “내년 성장률은 한국은행에서 2.2%로 예상했는데, 중국 경제와 중동 사태 등이 앞으로 한 달 정도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고 원점에서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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