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남아, 여전히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
[용산FM 기자]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의 경험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태원은 여러 커뮤니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이태원'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우리는 게이클럽, 트렌스젠더바, 드랙쇼와 같은 LGBTQ+ 문화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음식점을 연상한다. 그렇듯 이태원은 '경계 없는 풍경'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장소다. 그리고 이 이질적인 모습은 '다양성'이라는 말로 흔히 표현된다.
'다양성'이라는 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말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고 또 가려지는가? 그 말 너머 어떤 편견들이 생기는가? 우리는 다양성을 어떻게 타자화하는가? 이태원의 다양성은 퀴어와 외국인으로 대표된다. 주류 사회 외부에 위치한 문화와 사람이 이태원을 이루며, 이방인의 정체성이 이태원에 터를 잡고 모여드는 것이다.
이태원에는 이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수 세대 동안 그들이 만들어 온 문화가 있다. 159명의 안타까운 희생 앞에서 이태원에서 어떻게 노는지 주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태원에 사는 사람들과 이들의 일상, 이들이 생각하는 이태원과 이태원에서 노는 방식, 그리고 이를 통한 애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태원과 퀴어 문화에 진심인 사람, 선샤인
"제가 사는 이 공간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서 인터뷰에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또 제가 모든 성소수자 아티스트들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그분들과 연결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선샤인과는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었다. 사진작가인 친구가 촬영을 위해 그가 일하던 드랙바를 방문한 날, 나도 그를 처음 만났다. 나와 동갑인 그는 아주 친근했다. 진로를 고민하는 여느 또래 친구들과 같은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2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 인터뷰했다.
"지금은 잠깐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러쉬'에서 일을 하면서 게이 클럽에서 바텐더를 겸하고 있고요. 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드랙은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더욱 확고하게 생겼을 때 하고 싶거든요."
지난 3년, 선샤인은 이태원을 거점으로 드랙퀸 활동을 해 왔다. 그는 이태원의 역사와 놀이 문화, 그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퀴어 문화도 꿰뚫고 있었다. 사전 미팅 자리에서 1시간에 걸쳐 신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 질문에 답하는 선샤인씨의 모습 |
ⓒ 용산FM |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마음의 고향
"이태원은 제2의 고향 같은 공간이에요."
이태원은 퀴어들에게 상징적인 공간이다. 선샤인 역시 일찍이 이태원을 선망했다. 그렇게 드랙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태원에 대한 애정은 훨씬 커졌고, 그는 이태원의 매력으로 '날것'을 꼽기도 했다.
"드랙 커뮤니티에서 이태원은 상징적인 지역이에요. 90년대부터 드랙퀸 클럽이 있었다 보니까, 메이저처럼 여겨져서… 드랙 하시는 분들은 다 이태원에서 활동하고 싶을 거예요. 저도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고요."
비슷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 또한 이태원의 매력이다.
"이태원은 무서운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소외받는 분들이 모이게 된 장소이다 보니까 연대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이태원이 조금 더 마음의 고향 같은 공간이에요."
종로에서 이태원으로 이어진 추억
그는 종로구에 위치한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클럽 <띵동>을 통해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종로에 '띵동'이라는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클럽을 알고 종로에 자주 놀러 다녔어요. '게이빈'이라고 아시나요? 종로에 있는 '커피숍'인데, 성소수자들이 하도 많이 모여서 그렇게 불렸어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술집을 갈 수도 없고 밤에 어디 갈 만한 데가 없으니까 그냥 거기 앉아서 놀았던 거죠. 미성년자 시절에는 핼러윈 같은 때 나와서 그냥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사람 구경하고 놀았죠. 분장한 사람들과 같이 사진도 찍었던 것 같아요."
스무 살 이후, 선샤인은 '띵동'을 통해 사귄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수많은 추억을 쌓았다. 난생 처음 가 본 게이 클럽도 재밌었고, 이태원의 문화는 마냥 신세계처럼 다가왔다. 한때 주 4일을 놀러 다녔다는 그는 그 이야기를 전하며 매우 상기되어 보였다.
모두가 유령처럼 서로의 배경을 잊은 채
"이태원의 명절이었죠, 핼러윈은. 그동안 못 보던 사람들도 핼러윈 때 만날 수 있었으니까."
선샤인에게 핼러윈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그는 이태원의 핼러윈에 대해, 모두가 유령이 된 것처럼 서로의 배경은 잊은 채 함께 어울려 노는 날이라고 묘사했다.
"핼러윈 축제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배경에 대해 아예 묻지 않아요. 그냥 '너 재밌다 나랑 같이 놀자' 이런 말로 통해서 편견 없이 재밌게 놀 수 있었어요. 사실 이태원 메인 거리를 기준으로 이쪽은 게이 거리, 이쪽은 일반 분들 거리로 보통 나뉘는데, 핼러윈이 되면 그런 거랑 상관없이 많이 섞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서울 안의 다른 나라, 이태원에 스며들다
이미 이태원 문화에 익숙한 선샤인에게도 이태원은 언제나 남다른 장소였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이태원에서는 신경을 안 쓰거든요. 내가 말랐든, 살집이 있든 피부를 드러내는 게 아무렇지 않고, 무슨 시상식 가는 사람처럼 화려하게 입어도 신경 안 쓰고, 드랙을 하고 돌아다녀도 드랙퀸이 있구나 이러고 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는 이태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 자유로움에 점점 스며든다고 말한다.
"처음 평범하게 입고 왔던 사람들도 점점 깨닫는 것 같아요. 여기서는 이렇게 입고, 이렇게 행동해도 괜찮구나. 마인드 세팅이 바뀐다고 해야 되나? 나중에는 '야, 이태원 가는데 화끈하게 입어야 하지 않냐' 이렇게 되는 거죠."
다름에 대한 편견, 그러지 말고 와서 한 번 놀아 봐
"이태원만큼 불특정 다수가 나를 옹호해주는 공간이 없다"
어떻게 보면, 이태원은 일탈적인 장소다. 그 자유로움과 다양함에는 편견이 뒤따른다.
"그저 다른 스타일로 논다 뿐이지, 이태원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성별만 조금 자유롭다? 남자가 남자를 헌팅해도 여자가 여자를 헌팅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거. 이래서 이태원이 안 된다느니, 저렇게 노니까 저런 거라느니, 이런 얘기 하는 사람들 되게 많잖아요. 사실 직접 경험 안 해본 사람들이 그런단 말이에요. 실제로 이태원에 와 보면, 그냥 자유로운 공간으로밖에 안 보여요."
선샤인은 성소수자가 많은 이태원의 특성상 오히려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태원만큼 불특정 다수가 나를 옹호해 주는 공간이 없거든요. 이태원은 상대방의 배경에 의문을 두지 않아요. '잘 논다. 쟤랑 같이 놀고 싶다' 이거밖에 없어요. 그리고 제가 게이 클럽에서 일하잖아요. 여성분들이 되게 많이 오세요. 그 이유가 뭐냐면, 잘생긴 남자들이 많은데 이 남자들이 나한테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이러니한 거죠."
나의 말이 폭력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편, 선샤인은 이태원을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인 만큼,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말을 조심해야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이 언제든 폭력이 될 수 있단 말이에요. 섣불리 일반화할 수 없다고 해야 되나? 예를 들어 '여자 친구 있으세요?'라고 남성 100명한테 물을 때 30명 정도는 '저 여자 안 좋아해요'라고 답할 수 있는 게 이태원인 거죠. '너는 왜 남자를 좋아해?' 이런 질문도 사실 불편할 수 있어요. 나는 날 때부터 남자를 좋아했는데 남자를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잖아요."
논다는 건 재밌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선샤인에게 이태원은 삶의 터전이자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노는 과정 안에서도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내가 불편한 만큼 이 사람도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배려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논다는 건 내가 재밌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학교에도 기본 교육 과정이 있고. 방과 후 활동 같은 특수 교육 과정들이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건 기본 교육 과정, 노는 건 방과 후 수업 같은 느낌? 특히 재밌는 사람들이랑 놀면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도 노는구나, 저렇게도 노는구나. 노는 방법을 배운다고 해야 할까요?"
그는 한국어를 못하는 친구들과 번역기를 활용해 대화를 나누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 또한 놀이 문화 안에 포함시켰다.
핫한 사람들이 많아서 핫했던 이태원
선샤인은 이태원을 "핫한 사람들이 많은 핫한 곳"으로 기억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침체된 이후 다시 '핫플'이 된 이태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퀴어들이 뉴미디어 안에서 각광 받는 시즌이었어요. '이태원에 오면 유명한 사람들, 드랙퀸도 많이 본다더라' 이런 이야기가 흔하게 오고 갔어요. 그래서 이태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되게 긍정적인 거였죠."
그는 2020년부터 이태원 퀴논길에 위치한 드랙바에서 드랙퀸으로 활동했다. 한 달에 두세 번 이상 공연하고, 드랙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참사, 당일의 당황스러움
참사 당일의 경험과 감정, 생각에 대해 묻자 선샤인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참사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음… 저는 드랙바에 있었어요. 그러다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났다더라 하는 얘기를 손님을 통해 전해들었어요. 두 개의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에 대한 생각? 분명 사람들이 많이 모일 거라고 예상 못하지 않았을 텐데. 갑자기 사방에 퍼져 있던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전부터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분명 뭔가 대책이 있었을 텐데."
지난 몇 년간 핼러윈 축제 때마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지켜봤기에, 그는 안일한 대처가 더욱 안타까웠다.
"상인들끼리도 '이러다 사고 한 번 크게 나겠다'는 얘기가 빈번했어요. 참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참사 이후 이태원에 경찰 병력이 그렇게 많이 배치될 줄 몰랐어요. 왜 진작에 안 땡겼을까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동네 이태원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죠."
참사 이후의 안타까움, 각자의 추모 방식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관한 축제와 행사가 취소되었다. 여러 기업에서 준비한 핼러윈 관련 축제들 또한 취소되었다. 선샤인은 이 기간 이태원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추모의 무게라는 게 각자 다른 거잖아요. 추모하는 방식도 그렇고요. 이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이 동네를 떠날 수 없어요. 이 공간을 살려야 돼요. 근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추모하는 분위기로만 바꿔 버리니까 어이가 없는 거예요. 너무 일차원적으로 대처한 느낌? 참사 이후 한 달 동안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한 달이 뭐예요. 두세 달 가까이 이태원 완전 죽었고, 이제 장사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사람이 없었는데, 지역 하나를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단 말이에요.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를 해주는 게 맞아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고안해야 되는데, '사고가 안 나게 하는 방법은 사람을 몰리게 하지 말자'가 되어 버린 느낌인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게를 정리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그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있으면 핼러윈이잖아요. 지자체에서 준비를 잘해 줬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할 수 있을지."
참사 이후의 변화, 이후의 감정
선샤인은 참사 이후 더 당당하게 살고 싶어졌다.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을 보며 결국 욕을 할 사람들은 욕을 한다고 느꼈다. 그에게 참사 이후 이태원에서 어떻게 애도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보냈는지 물었다.
"'혹시 아는 얼굴이 있을까 싶어 추모 공간에 방문했어요. 엄청 다양하더라고요. 나이 많으신 분부터 진짜 어린 친구들까지... 아, 무슨 죄가 있을까, 죄가 없을 텐데. 그리고 그 옆에 보수 단체 분들도 같이 있었거든요. 이런 것까지 정치로 이용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되게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그는 룸메이트들과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의견이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태원이 너무 커다란 장례식장이 된 것 같다. 사실 지인의 지인이… 참사 때 안 좋게 되어서 다들 슬퍼했거든요. 근데… 참 생각이 많네요. 무슨 잘못을 했을까? 잘못이 없다는 걸 아는데… 실감이 안 나서 멀게 느껴져요. 아, 이런 일이 왜 생겼지… 사실, 지금은 그 슬픔이 분노로 변한 느낌."
각자의 애도 방식, 다음 이태원의 모습
이태원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일상이 있고, 생계가 있고, 문화가 있다. 그럼 어떤 태도로 이태원을, 참사를 바라보아야 할까? 어떤 태도로 슬퍼하고, 어떤 태도로 놀아야 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선샤인은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가졌냐는 질문에, "이겨내야 했다"고 답했다.
"이겨내야 했어요. 이 지역에서 살아남으려면. 왜냐하면 이제 이태원을 경험하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잖아요. 이렇게 재밌는 공간이 있다는 걸. 그러니까 더 괜찮다고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인 거죠. 이런 일이 발생해도 잘 이겨낸다고 보여줘야 할 것 같았어요. 저희는 추모 기간과 상관없이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야 했거든요. 충분히 애도했다고 생각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다음 핼러윈이 얼마 안 남았는데 우짜쓰면 좋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그리고 엄숙하게 생각하기보다 조금 캐주얼하게, 평소처럼 재밌게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마음속으로 잘 담아두고 기억하면서요. 이태원도 충분히 재밌는 공간이라는 걸 많이 알아주셨으면 해요."
요즘 그는 참사 전과 다름없이 이태원에서 잘 놀고 있다. 그것이 그의 애도 방식일 테다. 올해 핼러윈 축제에 참여할 것인지 묻자, 그는 자신은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웃어 보였다.
"손님들이 즐거울 수 있도록 재밌게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이태원에서 재밌게 놀면서 일할 생각입니다."
다음 핼러윈과 각자의 기억 방법, 추모 공간
선샤인에게 올해 핼러윈 때 열렸으면 하는 행사에 대해 물었다.
"이태원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상징적인 공간이니까. 그런데 왜 안 할까요? 이태원의 캐릭터로 만들 수 있을 텐데, 그게 부끄럽다고 생각하는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내 해밀톤 호텔의 벽면에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그 중 일부는 비바람에 색이 바래거나 글자가 번졌고, 또 일부는 바닥에 떨어졌다. 참사와 희생자를 기억할 수 있는 추모 공간을 마련할 필요를 느낀다. 하지만 모두의 애도 방식이 다르듯, 각자가 그리는 추모 공간의 모습 또한 다를 테다.
"어렵네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한참 뜸을 들이던 그에게 다시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참사가 일어나면 보통 위령탑을 세우는 방식으로 추모 공간을 만들잖아요.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공원이 조성될 수도 있는 거고요. 당장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이 없으시면, 그냥 없다고 편하게 말씀해 주셔도 괜찮아요."
"(침묵) 일단은 재발 안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추모의 무언가를 만든다고 하면, 피해자 분들이나 그 근처에 계셨던 분들이 좋아했던 공간들 위주로 표시를 남겨도 좋을 것 같아요. 생전에 이분들이 이런 공간을 되게 좋아했고, 이런 재밌는 장소에서 너도 한 번 즐겨보라고. 너무 무거운 분위기로 가는 것보다 그렇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가 상상한 추모 공간을 함께 상상할 수 있었다. 희생자들이 추억을 쌓았던 공간에 그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표시를 남긴다면, 다음에 누군가 거기에서 놀 때 그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다. 그들을 기억하며 춤추고, 웃고, 놀 수 있을 테다. 그리고 그 공간을 방문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할 것이다.
참사가 일어난 공간에서 살아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슬퍼하라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애도는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태원 참사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 할까? 축제를 즐기고 춤추기 위해 거리로 나왔던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야 할까?
- 인터뷰어 : 심나연 / 촬영 : 홍다예 / 인터뷰이 :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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