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해피 엔딩? 결말 바꿀 것"…센 연출의 두 오페라 온다
현대적 해석한 내용으로 동시에 공연
한국에서 잘 못보던 스타 성악가들 출연
강력한 두 여성의 오페라가 동시에 무대에 오른다. 26~29일 서울 예술의전당의 ‘노르마’, 또 같은 기간 세종문화회관(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다. 서울의 두 대형 극장이 오페라로 맞붙는다. 두 오페라 모두 센 카리스마의 여성 캐릭터가 이끌어 간다. 한 민족의 제사장인 노르마, 고대 중국의 공주인 투란도트다. 오페라 역사에서 손꼽히는 여성 영웅들이다. 가히 서울의 ‘오페라 위크’라 할 수 있는 동시 공연의 두 키워드를 소개한다.
원작과 다른 결말
‘투란도트’는 연출의 재량이 큰 오페라다.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1858~1924)가 이 작품을 끝까지 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26년 초연된 ‘투란도트’의 마지막 부분은 작곡가 프란코 알파노가 완성했다. 작곡가와 연출가들은 이 결말 부분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선보였다. 특히 2002년 초연한 이탈리아 작곡가 안젤로 루치아노 베리오의 버전은 당연한 듯 여겨졌던 해피엔딩을 모호한 결말로 바꿔 화제가 됐다.
오페라 연출을 처음으로 맡은 손진책(76) 역시 결말에 손을 댄다. 연극, 창극, 마당놀이의 연출로 이름을 알린 노장의 새로운 시각이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기존에 중심이 됐던) 커플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페라의 중심축은 투란도트와 왕자 칼라프다. 투란도트는 수수께끼를 내고, 맞히지 못하는 모든 구혼자의 목을 베었다. 칼라프가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손진책 연출은 또 하나의 프리마돈나에 주목한다. 칼라프의 아버지를 모시는 노비, 류다. 류는 어려서부터 칼라프를 깊이 사랑한다. 3막에서 ‘얼음장 같은 공주님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부르고 스스로 숨을 거둔다. 푸치니가 쓴 마지막 장면이다. 작곡가는 이후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사랑이 이뤄지는 장면을 작곡하기 어려워했다. 얼음장 같던 투란도트의 마음이 류의 희생과 칼라프의 노래로 갑자기 녹아내려야 한다. 손진책은 “볼 때마다 결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공주가 갑자기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라인은 비극적 결말로 바꾸는 대신, 류의 희생이 가져온 한 차원 높은 희망을 선보인다.
대대로 ‘희생’이었던 ‘노르마’의 주제 역시 이번 작품에서 손질된다. 빈첸초 벨리니(1801~35)의 노르마는 정복자의 총독과 사랑에 빠졌고, 그 총독과 젊은 여사제의 배신을 알게 된 후 스스로 화형대에 몸을 던진다. 벌하는 대신 희생하는 숭고함이다.
이번에 예술의전당이 올리는 ‘노르마’는 2016년 런던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았던 버전이다. 스페인 연출가 알렉스 오예(63)는 종교 근본주의에 의문을 던졌다. 스페인 종교재판, 쿠 클럭스 클랜(KKK)을 연상시키는 의식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지난달 내한해 “여사제가 사랑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화형에 처할 정도로 잘못된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말도 손을 봤다. 노르마의 아버지인 오로베소 역의 베이스 박종민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노르마는 원작과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며 “현대인도 공감할 스타일의 연출”이라고 소개했다.
스타 성악가들
한국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성악가들이 무대에 오른다. 우선 ‘투란도트’의 왕자 칼라프 역을 맡은 테너 이용훈. 그는 2010년 베르디 ‘돈 카를로’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데뷔한 후 밀라노 라스칼라, 런던 코벤트가든, 빈 국립 오페라 등을 섭렵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3년 동안 한 번도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았다. 이번이 한국 오페라 무대 데뷔다.
칼라프는 이용훈의 드라마틱하면서 찌르는듯한 성량에 잘 맞는 배역이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뉴욕ㆍ베로나ㆍ런던 등에서 칼라프 역을 맡았고, 이달부터 다음 달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도 칼라프로 노래하고 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용훈은 “독일 공연이 없는 기간이라 한국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한국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돼 꿈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또한 ‘노르마’는 힘 있고 풍부한 성량으로 압도하는 소프라노를 찾는 것이 관건이라 자주 공연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마리아 칼라스, 몽세라 카바예가 이 역을 맡았다. 여기에 도전하는 노르마의 여지원(43)도 눈에 띈다.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2015년 발탁해 화제였던 소프라노다. 오페라 ‘에르나니’의 엘비라, ‘아이다’의 아이다처럼 묵직하고 풍성한 역할을 주로 했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여지원은 “2005년부터 해외생활을 했는데 2014년 대구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한국 오페라 무대”라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억제하면서 노래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라 책임감이 크다”고 했다. 그는 201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노르마를 불렀고, 이번이 세 번째 노르마다.
노르마에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베이스 박종민(37)도 출연한다. 역시 뉴욕ㆍ밀라노ㆍ마드리드ㆍ런던 등에서 끊임없이 좋은 무대에 오르고 있는 성악가다.
두 오페라는 한국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대형 프로덕션이다. 예술의전당은 2009년 ‘피가로의 결혼’ 이후 14년 만에 영국 로열오페라 하우스의 프로덕션을 들여왔다. 음악 칼럼니스트 이용숙은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실제 공연을 보고 싶어했던 오페라 청중이 많았다. 특히 전막 오페라에 대한 기대가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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