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투아웃 '대역전' 가능할까…부산엑스포 결판 한달 앞

박현주 2023. 10. 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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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해 대규모 방산 협력을 논의하는 가운데 한국과 사우디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30년 세계 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서로를 꺾어야 하는 경쟁 상대이기도 하다. 한국은 현재 예상 득표 1위를 달리는 사우디를 바짝 추격해 "9회 말 투아웃 대역전극을 펼치겠다"는 전략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리야드의 야마마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사우디측 수행단과 인사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막판 총력전 나선 韓


정부는 엑스포 유치의 승산이 50대 50이라고 보고 막판 총력전에 나섰다. 한국 부산,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이탈리아 로마가 후보인데, 사실상 사우디와 한국의 2파전 양상이라는 게 내부 평가다. 이성호 주이탈리아 대사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로마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로마가 3위로 밀려났다는 게 (이탈리아의) 내부적인 판단"이라고 귀띔했다.

앞서 부산은 지난 4월 방한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의 평가에서도 최고득점을 했다고 한다. 정부는 부산이 엑스포 최적지라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의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앞세우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 BIE 총회 경쟁 4차 프레젠테이션(PT)에서 영어로 "70년 전 전쟁으로 황폐화됐던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도움에 힘입어 첨단 산업과 혁신 기술을 가진 경제 강국으로 변모했다"며 "(부산엑스포에서) 대한민국의 첨단 디지털 기술이 환상적인 교류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파리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제172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세계박람회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서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영어 연설을 하는 모습. 공동취재단. 뉴시스.


최근 주요 장·차관급 고위 인사들은 세계 각국을 상대로 표심 끌어모으기에 한창이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에티오피아를 찾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나이지리아를 찾아 지지를 요청했다. 지난달 영국, 프랑스를 돌았던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일 유럽·아프리카·중동지역 화상 공관장 회의를 개최하고 국가별 막판 교섭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최근 정부 각급 인사가 대외 카운터파트를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엑스포 지지에 대한 당부다.

이와 함께,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기업 총수들도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앞서 총리실은 "지난 9월 말 기준 민·관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지구 409바퀴(총 1640만8822㎞)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등을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와 인터뷰하는 모습. 외교부.


오일머니 꺾을 수 있나


문제는 사우디가 BIE 회원 181개국을 상대로 뿌리는 '오일 머니'다. 외교 소식통은 "사우디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 엑스포급 행사 유치는 정권의 명운이 달린, 그야말로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대륙을 훑으며 BIE 회원국들에 표를 대가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뿐 아니라, 실제 사우디에 표를 던질 경우 '성공 보수'식의 사후 보답을 약속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맞서 한국은 "엑스포를 계기로 한국과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 단발성 지원보다 더 이로울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대외 원조는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도 수원국에 부채 부담을 크게 안기지 않는다. 다만 이같은 교섭 전략을 전면에 부각하기 보다는 사우디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로키'(low-key)로 접근하는 분위기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의 논에 4가지 색상 벼를 활용해 8천610㎡ 규모로 조성한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기원 그림. 2030부산세계박람회라는 글과 함께 부산시 소통 캐릭터 '부기'가 'BUSAN KOREA(부산 코리아)'라고 적힌 팻말을 든 모습을 연출했다. 부산시.


이-하마스 전쟁 여파도


엑스포를 앞두고 터진 돌발 변수로는 지난 7일(현지시간)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꼽힌다. 무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10일(현지시간)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회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양호한 삶을 누릴 적법한 권리, 희망과 포부,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성취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이날 AFP 등 외신이 전했다.

사우디는 그간 바이든 미 행정부 중재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왔지만 전쟁 발발로 관련 논의가 중단됐다. 사우디로선 이스라엘과 계속 협상을 할 수도, 하마스를 두둔할 수도 없어 난감한 처지에 빠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가 아랍의 맹주로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외교적 부담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모습. AP.


안 그래도 인권 문제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사우디에 표를 던지는 것을 꺼리는데, 전쟁 발발로 서방과 중동 아랍권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사우디가 서방의 표심을 모으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관측이다. 반면 아랍권 국가들의 사우디에 대한 결속력은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다.


결선투표 승부수


정부는 1차 투표에선 사우디를 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결선 투표'에 희망을 걸고 있다. BIE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은 국가가 개최국이 되는데, 1차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득표 국가가 없으면 상위 2개국끼리 결선투표를 한다.

1차 투표를 통해 승자가 나오지 않고 로마가 3위로 떨어진다면, 결선 투표에서 로마표를 한국이 흡수하자는 게 정부 전략이다. 유럽 국가들은 1차 투표에서 대부분 로마를 지지할 것으로 보이는데, 결선 투표에서 이들이 한국에 표를 던진다면 해볼만한 싸움이라는 계산이다.

다만 일각에선 결선투표까지 진행된다고 장담할 수 없는 데다, 한국이 사우디에 절대적 열세라고 판단될 경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대미를 장식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이제 엑스포 등 국제 행사를 무조건 많이 끌어오는 것으로 위상을 제고하는 시기는 지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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