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30초'에 갇힌 건강보험 상담... 괜찮은가요?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에게 가장 필요하며 가장 가까운 사회 복지 제도지만 쉽고 가까운 제도는 아니다. 이럴 때 국민이 전화해 찾는 게 바로 고객센터 상담사다. 이들은 민간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센터를 소속 기관으로 전환해 상담을 통합 운영하기로 2021년 결정했지만 2년간이나 이행하지 않고 있다.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노동기본권 향상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공기관의 역할 방기다. 노동자를 쥐어짜는 간접고용의 폐해, 상담의 전문성 담보하지 못해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되는 구조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세 편의 연속 기고를 통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기자말>
[전주희 기자]
"2000년 출범한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전화방'으로 불리는 업무가 있었다. 직원마다 순번을 정해 지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했다. 건보공간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업무량이 급증했고 악성민원도 늘어났다.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공단은 2006년 공공기관 최초로 고객센터를 설립한다. 직원들은 전화방 업무에서 해방돼 가업자 지원사업 등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한국일보, '고객센터 상담원들이 파업하는 이유', 2021.7.2.)
그렇게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가 2006년에 출범했다. 당시 고객센터 상담원 600명 중 공단 정규직 신분의 전문상담원 180명과 외주업체 소속 상담원 420명이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보게 됐다. 설립 초기 '건강보험공단 상담 실무과정'이 4주간 진행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교육과정을 수료한 노동자들에게 '수료증'을 수여했다. 교육 마지막 날에는 연회를 열어 상담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당시 교육에 참여한 예비 상담사들은 공공기관 최초의 고객센터를 운영한다는 포부가 있었고, 건강보험공단도 공공기관에 걸맞은 사명감과 전문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1기 교육과정을 끝으로, 건보공단 이사장 이름으로 내주는 '수료증'이나 연회 따위는 사라졌다. 1기 상담사로 입사한 노동자들 중 거의 대부분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못 견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18년이 지난 지금 건보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공공기관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전문성은 오히려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정신과 신체를 빠르게 소진시키고 있다.
그뿐일까? 5천만명이 넘는 전 국민이 가입한 건강보험은 제도의 설계 못지않게 제도의 전달이 생명이다. 건강보험에 가입되었더라도 내가 건강상의 위험에 처했을 때 제대로 된 치료시설을 찾지 못하면 무용한 것처럼, 건강보험이 나에게 어떤 지원과 보호를 해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나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에 대한 알권리는 시민의 권리이자, 국가는 적시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갖는다. 그런데 그러한 정보를 제공할 기관이 외주화되어 11개의 민간 콜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 2022년 8월 30일 오후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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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수행하는 공적 업무의 일부를 떼어내 민간업체로 외주화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가장 중요한 이념과 목표는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단절 없이 수행해야 할 과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해 전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단의 일부 업무가 떼어져 외주화될 때, '공공성'의 가치는 사라지고 대신 민간기업이 추구하는 최대치의 효율과 생산성이 절대적 가치가 된다.
'2분 30초', 외주화 된 콜센터가 추구해야 할 절대 목표다. 모든 콜은 2분 30초 안에 끊어야 한다. 여기에 국민 건강과 관련된 1069개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공익성, 건강보험이 가장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고령층, 빈곤층, 이주노동자, 가난한 싱글맘, 거주지와 일자리가 불안정한 취약한 인구집단에 대해 더욱 세심하게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공익성 따위는 없다. 제대로 된 정보를 알 수 없으니, 제도에 대한 문의 역시 어긋난 것이거나 정확하지 않다. 상담사들은 문의해온 시민이 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상담사에게 시민 개개인의 정보를 포괄적으로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어떤 시민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해 보장 혜택을 적절하지 받지 못하거나 추가적인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자 공공성의 기본 방향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의'에 대한 기계적 답변 대신,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2분 30초는 너무 짧다. 그럼에도 2분 30초 안에 콜을 빨리 '끊고', 다음 콜을 받는 것이 '상담품질'의 가장 중요한 평가지표다.
2021년 건보고객센터 대전센터에서는 하루 평균 180~200콜을 받는 상위 성과자를 대상으로 통화품질을 전수 조사한 적이 있다. "일부 상담자는 고객의 질문에만 대답하고 콜이 길어지면 빨리 끊기 위해 성의 없는 답변을 하기 일쑤였다"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정작 콜을 많이 받도록 콜 수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유인정책이 폐지되거나 2분 30초의 암묵적 철칙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 결과 공공성은 '2분 30초'안에 억지로 욱여넣어야 할 '쿠션어', '호응어' 등을 버무린 친절하고도 성의 없는 답변으로 왜곡된다. 공공적 제도 설계와 공공성을 왜곡하는 제도의 실행 사이에, 외주화된 콜센터 상담사들이 끼어 있다.
"하루는 70년생 고객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분은 살면서 주변의 누구에게라도 건강보험에 대한 안내를 받아본 적이 없다. 고아로 컸고, 주거지도 일정하지 않았다. 일자리와 삶이 모두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건강보험도 가입과 해지를 반복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체납고지서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40세가 넘도록 평생의 보험료 체납이 쌓여 있었다. 병원을 다(니)더라도 보험 가입이 안 되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한 상담원은 30분이 넘게 제도를 설명하고,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때까지 최대한 천천히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민간업체 관리자에게서 장시간 콜을 빨리 끊으라는 독촉 메시지가 수없이 날라왔다. "하지만 고객센터마저도 이 사람에게 그런 안내를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상담원은 콜 수 경쟁에서 밀렸고, 실적을 채우느라 추가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보험 제도에서 공공성이 훼손되면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과 삶이 모두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저렴한데 양질의 서비스는 없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외주화를 중단하고 공단의 직접고용을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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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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