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유상'으로 전환된 '방과 후 학교' 후폭풍
[서부원 기자]
종일 종이 위에 '마인드맵'까지 그려가며 해법을 찾아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주장마다 일리가 있고 얼마든지 반박할 논리가 있어서 토론은 다람쥐 쳇바퀴 돌며 이내 흐지부지되고 만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사들 간의 갈등이라 조율한답시고 섣불리 나서기도 어렵다. 아이들의 요구를 무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설득하려 들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놓고 교사들의 사정을 말하기도 뭣하고, 학부모의 전화까지 받게 되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지방의 많은 인문계고등학교에서는 여전히 야간자율학습(야자)이 시행되고 있다. 학교마다 일과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오후 4시 30분에 정규수업이 끝나면, 6시 30분까지 방과 후 수업이 진행되고 이후 저녁 급식을 먹은 뒤 밤 야자가 시작된다.
"방과 후 수업을 듣는 대신, 교실에서 자습하면 안 되나요? 방과 후 수업을 의무적으로 들어야만 야자에 참여할 수 있고, 저녁 급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숱한 아이들의 한결같은 요구로부터 개인적 고민과 교사들끼리의 토론이 시작됐다. 학교마다 방과 후 수업이든, 야자든, 방과 후의 일과는 자율 선택제로 운영된다. 현행 광주광역시 학생인권조례에서도 아이들의 선택을 학교가 강제하거나 유도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방과 후 수업 과목도 아이들의 희망과 선호도에 따라 개설되거나 폐강되고, 도중에 수강을 취소할 수도 있다. 교실과 특별실, 도서관, 운동장 등 넓은 학교 공간은 다양한 방과 후 수업이 운영되는 데 최적의 조건이다. 최근 학교 시설도 현대화되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 교실 |
ⓒ 픽사베이 |
문제는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한 아이들보다 그 시간에 자습하려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다. 언뜻 그게 무슨 문제인가 싶겠지만, 학교에 남아서 자습하려는 아이들 곁에는 반드시 교사가 임장해야 한다는 게 쟁점이 된다. 교사에겐 법정 근무 시간이 끝난 뒤라서다.
물론, 교사들끼리 순번을 정해 자습하는 아이들을 동반할 순 있다. 현행 야자도 교사 두 명씩 묶어 근무조를 편성해 순번제로 운영하고 있다. 또, 하루 최대 4시간까지 시간당 1만 원 남짓의 초과근무 수당이 제공된다. '푼돈 수당'의 현실화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다.
여기에 숱한 갈등의 씨앗이 배태돼 있다. 우선, 방과 후 수업을 하는 교사와 하지 않는 교사와의 형평성 문제가 지적된다. 방과 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수업이 없는 교사는 별도의 보상 없이 자습하는 아이들을 임장해야 한다. 근무 시간이 끝났다고 아이들을 방치할 순 없다.
여태껏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의 경우, '빛고을 다 같이(가치) 교과 보충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관내 학교마다 방과 후 수업비를 무상으로 지원해왔다. 설령 방과 후 수업의 만족도가 낮다 해도, '공짜'라는 인식 탓에 큰 반발이 없었고, 차라리 그 시간 자습하겠다는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유상(수익자 부담)으로 갑작스레 전환되면서 학교마다 긴급히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물론, 수업의 만족도가 높아 기꺼이 별도의 수업료를 내겠다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유상으로 전환됐다는 소식에 아이들의 자습반 개설 요구가 워낙 많아 방과 후 수업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할 기세다.
학교 밖의 시선에선 방과 후 수업의 질을 높이면 해결될 문제 아니냐고 여길 테지만,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기실 교사의 수업 역량 제고를 위한 연수 프로그램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학교가 공간만 제공하고 외부 강사들을 활용하는 등의 실효적 방안까지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그런데도 번번이 실패했다. 학교에 학원 강사를 초빙해 수업하는 모양새도 우스꽝스럽지만, 초빙하려 해도 턱없는 강사료에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거절당하기 일쑤다. 몇 해 전엔 사범대생들에게 방과 후 수업을 맡기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가, 어차피 관리 책임은 교사가 질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없던 일이 됐다. 결국 돌고 돌아 방과 후 수업도 교사가 떠맡았다.
저녁 급식 문제까지 얽혀 '사면초가'
광주광역시의 경우, 방과 후 수업 수당은 시간당 4만 원이다. 만약 매일 두 시간씩 수업한다면 8만 원의 가욋돈을 벌 수 있다. 같은 시간 자습을 지도하는 교사는 2만 원 남짓의 초과근무 수당에 만족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교사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법정 근무 시간도 끝났는데, 방과 후 수업을 하는 교사들을 대신해 자습 지도의 의무를 부과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거다. 교사도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의 심리에 자유로울 리 없다. 그렇다고 지도 수당을 지급한답시고 애꿎게 자습하는 아이들에게 별도의 비용을 갹출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방과 후 교내 자습 금지'나 '야자 희망자의 경우, 방과 후 수업 참여 의무화' 같은 아이들이 당최 납득할 수 없는 방침이 강제되고 있다. 거칠게 말해서, 수당 차이로 인한 교사들 사이의 갈등이 애꿎은 아이들의 학습권과 선택권을 침해하는 형국이다. 물론, 법정 근무 시간 이후라 법적으로 하등 문제 될 건 없다.
이 와중에 저녁 급식 문제까지 얽혀 사면초가의 상황이 됐다. 교사는 "학교가 무슨 탁아소냐?"고 항변해보지만, 학부모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자녀가 학교에서 저녁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힘들다. 그들의 '소박한' 바람은 아이가 매일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자습하고, 저녁을 먹고, 야자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들 중엔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가정이 적지 않다. 방과 후에 자녀를 매일 학원에 보내는 이유가 '공부'보다 '돌봄'에 있다는 건 더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곧장 하교하는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집에서 저녁을 챙겨 먹는 경우가 다섯 명에 한 명꼴도 안 됐다.
어차피 수능을 앞둔 고3 아이들을 위해 학교의 급식소는 매일 저녁 운영된다. 아이들에게 저녁 급식을 제공하는 게 그리 번거로운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젠 "저녁 급식 먹자고 방과 후 수업을 따로 돈을 내고 들어야 하느냐?"는 아이들의 항의까지 받아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교육청에 바란다
"이럴 거면, 고3을 제외하곤 야자를 전면 금지하고 저녁 급식 운영도 폐지하는 게 낫다."
한 동료 교사는 방과 후 수업이 학교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쾌도난마'는 분노를 드러낸 것일 뿐, 당장 해법이 될 순 없다. 갑작스레 지원을 끊은 채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뒷짐만 지고 있는 교육청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마다 스터디 카페에 버금가는 자습 공간을 갖추도록 한 건 이정선 교육감의 공약이었다. 번듯한 자습실까지 마련해놓고도 학교가 방과 후 자습을 막는 건 어불성설이다. 교육청은 방학 때에도 아이들이 원하면 등교해 자습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라며 공문까지 내린 터다.
학교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엄연한 공공시설이다. 공적인 소임을 다해야 하는 공교육 기관으로서, 아이들의 합리적 요구에 납득할 만한 답변과 방안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물며 학교 교육을 지원해야 할 교육청이 이를 나 몰라라 하는 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교육청에 바란다. 방과 후 수업의 무상 실시로 정책을 되돌릴 수 없다면, 적어도 방과 후 자습이라도 가능하도록 예산을 확보하고 관련 규정을 손봐야 한다. 교사들의 선의와 희생에 기댄 정책은 오래가지도 못할뿐더러 교육적 취지마저 훼손되어 온갖 편법만 난무하게 된다.
올 초 이정선 교육감은 '교육은 희망의 사다리가 돼야 한다'면서 '희망하는 모든 학생에게 야간 돌봄'을 시행한다고 약속했다. 그가 말한 모든 학생에서 고등학생은 예외인 걸까. 돈 내고 방과 후 수업을 듣지 않는 아이에겐 자습은 물론 저녁 급식을 먹을 권리조차 박탈하는 학교에서, 과연 교육은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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