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 쉬운 대포통장 왜 써? '가상계좌 장사'로 160억 꿀꺽했다
허위로 온라인 쇼핑몰을 만든 뒤 가상계좌를 범죄 조직에 넘겨주는 수법으로 1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챙긴 폭력단체 조직원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대전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결제대행사(PG)를 통해 만든 가상 계좌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제공한 뒤 수수료 명목으로 160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범죄단체 조직 등)로 23명을 검거, 총책인 A씨(48) 등 13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23일 밝혔다. 나머지 10명은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이 보유한 현금과 자동차 등 13억원은 기소 전 몰수 보전했다.
대전·전북·경북 등 폭력조직원 23명 범죄 가담
경찰에 따르면 대전지역 폭력단체 조직원인 A씨 등은 2021년 3월쯤 의류와 중고물품·농기계 등을 파는 온라인 쇼핑몰 8개를 개설했다. 범죄에는 대전은 물론 전북과 경북 등 모두 5개 폭력단체 조직원이 가담했다.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선후배 사이로 각종 범죄에 가상계좌가 이용된다는 것을 알고 범행을 모의했다.
A씨 등은 자신이 설립한 쇼핑몰이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홈페이지를 만들고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와 가맹점 계약도 체결했다. PG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결제를 대행하는 업체로 은행에서 계좌(모계좌)를 만든 뒤 가맹 계약을 체결한 업체에 가상계좌를 만들어준다. 소비자들은 쇼핑몰에서 물건을 산 뒤 가상계좌를 통해 돈을 보내고 PG는 수수료(통상 금액의 0.3%)를 제하고 대금을 가맹점에 송금하는 게 일반적인 구조다.
A씨 등은 이렇게 만든 PG를 통해 만든 가상계좌를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에 제공했다. 피해자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아 가상계좌로 돈을 보내면 A씨 등은 금액의 1%를 수수료로 받았다.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년간 A씨 등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서 받아 챙긴 수수료만 160억원에 달했다. 이들이 제공한 가상계좌를 통해 거래된 돈은 1조6000억원이나 됐다.
거래금액 1조6000억원…수수료만 160억원
통상 가상계좌는 1일, 24시간, 1000만원까지만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은 무제한으로 가상계좌를 개설, 범죄에 이용되는 금액도 횟수나 한도에 제한 없이 거래될 수 있었다. A씨 일당이 1년간 만든 가상계좌는 6만4602개나 됐다. 조사 결과 A씨 등으로부터 가상계좌를 받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3곳으로 확인됐다.
가상계좌는 범죄 피해자가 신고하더라도 해당 계좌만 거래될 뿐 모계좌는 거래가 가능하다. 모계좌는 중개업체인 PG가 은행을 통해 직접 만든 계좌로 거래를 중단하면 다른 쇼핑몰 운영자나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보이스피싱·인터넷 도박 등을 운영하는 범죄조직은 자금 추적을 피하고 돈을 세탁하기 위해 노숙자 또는 유령법인 명의로 개설된 일명 ‘대포통장’을 이용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통장 발급절차 강화로 대포통장 확보가 어려워지는 데다 피해자 신고로 계좌가 정지되면 돈을 인출하지 못하는 불편이 자주 발생하자 대안으로 가상계좌를 범죄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대포통장'→'가상계좌'
경찰은 지난해 초 ‘조직폭력배가 가상계좌를 유통하고 (거액의) 수수료를 받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PG사 압수 수색을 통해 A씨 등이 만든 허위 온라인 쇼핑몰과 가상계좌 입·출금 내용 등 증거자료를 확보했다. 이후 7개월간 관계자 조사와 휴대전화 통화내용 분석·추적수사로 23명을 모두 검거했다.
대전경찰청 김재춘 강력범죄수사대장은 “피의자들은 SNS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상계좌를 유통, 막대한 범죄 수익을 챙겼다”며 “수사 과정에서 확인한 가상계좌 문제점과 중개업체인 PG사 관리 문제를 해결하도록 관계 부처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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