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다 그래" 대만 영화에 왜 이런 대사가?
[김성호 기자]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 또한 짙은 법이다. 외국인을 사로잡는 한류의 바람이 거센 만큼 그에 대한 반감 또한 일어나게 마련이다. K-팝과 K-드라마 등 한류열풍이 거셌던 대만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기실 대만의 반한감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주도의 미중 간 핑퐁외교, 그 뒤 이어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필연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위상을 위협했다. 하나의 중국을 기치로 삼은 중국이 외교 상대국들에게 중국과 대만 가운데 한 나라를 선택하도록 요구했던 것이다. 세계의 공장이며 막대한 소비시장을 갖춘 중국을 무시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았고, 상당수 국가가 대만과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른다.
▲ 세이 예스 어게인 포스터 |
ⓒ 팝엔터테인먼트 |
묘한 반한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기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해 대만 경제의 수준을 초월했고, 스포츠와 예술 등 다양한 부문에서 대만을 압도한 점도 반한감정이 확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다. 대만인 가운데선 한국이 공자나 쑨원 같은 중국 위인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거나, 한자가 한반도에서 유래했다고 이야기하고 가르친다는 식의 풍문을 믿는 이가 적지 않다. 한국인들은 다른 이의 것을 빼앗기 좋아한다는 평가 또한 자주 따라붙기도 한다.
요 근래 중국과 관련한 뉴스 댓글에서 흔히 마주하는 중국인 전반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평가를 마치 사실인 양 믿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것처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몇몇 국가에서도 극도의 치우친 풍문들이 사실처럼 알려져 전승되는 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만영화 <세이 예스 어게인>은 한류에 대한 묘한 반감을 실감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는 시간을 오가며 어긋난 사랑을 다시 맞춰가는 타임루프 로맨스물이지만, 영화 중간 난데없이 등장하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모욕적이며 편견 어린 표현이 대만에 퍼져 있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알도록 한다.
▲ 세이 예스 어게인 스틸컷 |
ⓒ 팝엔터테인먼트 |
그놈의 오빠오빠, 한국 드라마는 다 그래?
설명만 듣고도 눈치 채는 이가 있겠지만, <사랑의 블랙홀>이 일찍이 보여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같은 날 아침으로 돌아오는 타임루프 멜로물이 또 한 편 나온 꼴이다. 남자는 거듭하여 같은 날 아침을 맞이하고, 온갖 방법을 바꿔가며 다른 결과를 얻으려 분투한다.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조금씩 나아져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자는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간다. 예고된 해피엔딩은 감격스럽기보다는 당연한 결말이라 보아도 좋겠다.
눈에 띄는 건 앞에도 언급한 반한감정이 엿보이는 장면과 대사다. 영화 속 반복되는 하루하루에 절망한 루크가 방법을 찾아 헤매던 때다. 터덜터덜 걷던 그가 길거리 카페 앞에 앉았는데, 여학생 세 명이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름 아닌 한국 드라마다.
한 여학생이 말한다. "그놈의 오빠오빠." 다른 여학생이 말한다. "무슨 병이라도 걸렸나?". 또 다른 여학생이 말한다. "한국 드라마는 다 그래."
▲ 세이 예스 어게인 스틸컷 |
ⓒ 팝엔터테인먼트 |
은근한 혐오와 비하, 조롱... 우리도 주의해야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가 스스로 조롱하는 듯한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이 예스 어게인>은 그 결말부에 가서 마치 반전처럼 중병에 걸린 주인공의 사연을 내보이고 이를 통해 억지 감동을 자아내려 시도한다. 한국 드라마가 시한부를 흔히 소재로 쓴다는 이야기를 마치 복선처럼 깐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설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만약 그렇다 해도 굳이 타국 드라마에 대한 조롱어린 표현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이 예스 어게인>은 타국에 수출되는 작품이 주의해야 할 대목에 대해 알린다. 영화 중간 언급되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는 나보다 민감한 관객이 본다면 충분히 기분이 상해 박차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가 될 듯하다.
▲ 세이 예스 어게인 스틸컷 |
ⓒ 팝엔터테인먼트 |
귀한 반면교사 사례로 삼을 만하다
OTT 서비스를 통해 국경이 가까워진 요즈음 콘텐츠 강국인 한국 또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상영되던 tvN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한국군 1인당 베트콩 20명을 죽였다" 등 민감할 밖에 없는 대사를 거르지 않고 삽입했다 내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동남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선 아예 대놓고 이들 나라가 불법의 천국이며 치안이 무너진 곳인 양 묘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 나라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이러한 견지에서 비판한다면 그 어떤 평론가도 꿀 먹은 벙어리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여러모로 <세이 예스 어게인>은 좋은 영화가 못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코미디와 어설픈 반전, 신파적 설정에 기대는 클라이막스가 모두 식상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로맨스 장르에선 아시아를 주름잡던 대만영화가 시대의 흐름에서 갈수록 뒤쳐져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계에 반면교사가 된다. 다른 세상에 대한 충분한 앎이 없으면 어디까지 상대를 오인할 수 있는지를, 부족한 앎으로 상대를 재단하려 들 때 얼마나 우스꽝스런 상황이 되는지를, 그로부터 의도 없는 반감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전에는 경험한 적 없는 큰 시장과 매해 새로 맞닥뜨리는 한국영화계가 명심해야 할 것 또한 바로 이것이다. 단 한 편의 작품이, 하나의 장면이 누구를 구하기도 하고, 누구를 적으로 돌리기도 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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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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