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넥스트 지방자치 시대 열 ‘지방의회법’

2023. 10. 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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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이 관객은 심판의 판정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실제 경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이 부조리한 가정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지방의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 모두가 지방의회법 부재에서 발생한 문제다.

넥스트 지방자치, 지방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 줄 지방의회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최종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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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여기 경기를 앞둔 ‘선수’와 ‘심판’이 있다. 이날 경기의 심판진은 선수가 구성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비롯한 심판 운영방식 또한 선수가 결정했다. 이제 심판은 선수가 짠 경기 판 위에서 판정만 내리면 된다. 관객은 이 일련의 결정 과정을 지켜봤다. 이 관객은 심판의 판정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실제 경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이 부조리한 가정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지방의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삼권분립을 선언했다. 법령을 통해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라는 권력의 그릇을 분리했다. 그래야 민주적인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입법기관인 대한민국 국회가 정부를 엄격히 견제, 감시할 수 있는 것 또한 국회법이라는 단독법 아래 인사, 조직, 예산 등 독립된 권한을 갖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이토록 당연하고 상식적인 분립의 원칙이 지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991년 대한민국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래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지방의회는 여전히 집행기관에 종속돼 있다. 집행기관을 견제·감시해야 할 지방의회의 조직권과 예산편성권을 시도 지사가 쥐고 있는 모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시행으로 지방의회 인사권 일부가 독립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반 쪽 독립이다. 지금도 조직권은 행정안전부와 집행기관의 손안에 있다. 조직권이 담보되지 않은 인사권 독립은 명분상 독립 그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이 모두가 지방의회법 부재에서 발생한 문제다. 지방의회가 계속해서 집행기관을 중심으로 규정된 지방자치법의 지붕 아래 더부살이를 하는 한 지방의회는 ‘집행기관의 부속기관’이라는 참담한 오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방의회는 지방의 유일한 입법기관이다. 생활정치의 터전이다. 지방의회가 만드는 조례는 도시의 기틀을 바꾸고 시민의 삶을 새로 쓰는 역할을 한다. 견제와 감시로 집행기관의 폭주를 막고 시민의 고혈(膏血)인 세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예산을 심의하는 일 또한 오직 지방의회만이 할 수 있다.

지방의회법 제정을 통해 지방의회가 기나긴 종속의 세월을 뒤로 하고 진정한 독립과 자유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분립이 가능해진다. 지방자치의 양대 축인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이 힘의 균형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23년 9월19일은 대한민국 지방자치 역사에 기념비적 전진의 날로 기록될 법하다. 필자가 회장을 역임했던 대한민국 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범사회적 공감대를 구축하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해 초안을 작성한 지방의회법(안)이 바로 이날 국회에 발의된 것이다.

발의된 지방의회법(안)은 ‘집행기관의 감시와 견제’라는 지방의회 본연의 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방의회 경비의 예산권 독립, 의회에 필요한 사무기구 설치,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배치, 보좌관(정책지원관) 제도의 현실화 등 지방의회의 권한과 책임,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강할 구체적 조항을 명시했다.

넥스트 지방자치, 지방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 줄 지방의회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라는 최종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지방의회 30년 숙원인 지방의회법 제정이 제21대 대한민국 국회의 최종 결실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김현기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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