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까지 달리는 '짠한형', 이대로 괜찮을까

고은 2023. 10. 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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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스타의 영향력-인맥에 기댄 '술 방송', 성찰이 필요하다

[고은 기자]

 <짠한형 EP.0> 유튜브 캡처본
ⓒ 스튜디오 치카치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누군가는 울고, 위로하고, 취침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곳. 다음날 "나 어제 뭐 실수한 거 없지?"로 시작해 기억을 되새김질한 경험과 불쑥 떠오른 이불킥의 순간을 다들 하나씩 갖고 있을까. 단언할 순 없지만 사람 사이 술이 끼어들어 만들어지는 '반짝 효과'는 있다고 생각한다. 술 핑계 삼아 꺼내는 속마음, 술이 만드는 우연적인 사건, 급속도로 좁혀지는 거리감 등을 누리려 이따금 술의 힘을 빌린다. 

래퍼 이영지가 호스트인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아래 <차쥐뿔>), 어반자카파 보컬 <조현아의 목요일밤>, 장한준 감독의 <넌 감독이었어> 역시 술의 반짝 효과를 잘 살려 인기를 얻었다. 세 콘텐츠의 공통점은 대중문화, 음악, 영화 등과 같이 고정 주제를 확실히 잡은 후 술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토크를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대화와 술의 비중을 5대 5로 적절히 유지해 게스트가 평소에 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게 만들고 시청자는 무장 해제된 연예인을 보며 친밀감을 느낀다.

연예인들의 '술방'은 소위 시장에서 먹히는 콘텐츠였지만 우려의 시선은 언제나 있었다. 반드시 술이 있어야만 '유쾌', '진정성'을 담보한다는 사고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음주 문화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터넷 방송은 정보통신 심의규정이 있으나 유튜브의 경우 해외 사업자이기 때문에 음주 방송에 대한 규제도 거의 없다. 대부분 성인 인증 없이 음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과도한 음주 노출은 오히려 미성년자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도 크다.

<짠한형> 나온 연예인들, 혀는 꼬이고 눈은 감기고
 
 <짠한형>EP.4/8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하지원, 가수 선미가 술에 취한 모습. 유튜브 캡처
ⓒ 스튜디오 치카치카
 
이에 연예인 음주 콘텐츠는 '진정성 있는 고품격 토크쇼'와 '만취 폭음 콘텐츠'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하며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최근 이 균형의 추를 무너뜨리는 콘텐츠가 등장했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짠' 하는 신동엽의 본격 만취 토크쇼, <짠한형 신동엽>이 그 주인공이다. '만취', '날것'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만큼 이 콘텐츠의 중심은 단연 '술'이다.

순서대로 세 번째, 일곱 번째 게스트로 나온 배우 하지원, 가수 선미는 '만취 토크쇼'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건배를 거듭할수록 하지원은 했던 말 또 하는 술주정을 시작했고 선미는 감기는 눈꺼풀을 감당하지 못하고 듣는 척하며 졸거나 훅 밀려오는 취기에 무너져 급기야 바닥에 앉기에 이른다. 

대중이 술 콘텐츠에서 보고 싶었던 장면이 이런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댓글 반응은 좋았다. 연예인의 주사를 못 보던 모습의 발굴로 여기고 '귀엽다', '매력있다'는 칭찬을 이어갔다. 결국 흐트러진 연예인을 구경하고 싶은 대중의 관음 욕망과 '만취 토크'가 목적인 방송이 만나 <짠한형>은 1개월 만에 구독자 약 65만 명을 모았다.

한편으로 이는 '신동엽'이 가진 파급력을 체감할 수 있는 속도이기도 하다. 그가 수년간 쌓아온 '주당', '형' 이미지는 오히려 대중들이 언제나 만취로 끝맺는 콘텐츠를 위화감 없이, 비판적 사고 없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짠한형>이 '만취'를 '진정성'으로 둔갑시키는 방법
 
 <짠한형 EP.4>의 두 장면. 본 촬영을 끝내고 2차 술자리로 향하는 출연진과 술에 만취된 채 촬영을 종료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신동엽의 모습.
ⓒ 스튜디오 치카치카
 
<짠한형>은 음주 수위 조절을 하지 않는 게 전략인 콘텐츠다. 사석 술자리에 카메라를 갖다 댄 화면을 그대로 내보낸다. 제작진이 한 연출이라면 창고를 방불케 하는 작업실 중앙에 테이블을 놓고 안주와 술을 세팅한 다음 직접 제작한 술트렁크를 배경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이후 출연진들은 대본 없이 떠들고 마시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근황, 앨범 및 예술작품 등과 같이 게스트와 관련한 토크를 이어가다가 술에 점점 취하고 난 뒤 한층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나오는 장난과 주사, 무리수에 가까운 행동으로 채워진다. 진정성 있는 대화는 오히려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어쩐지 보는 사람이 부끄러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신동엽은 환호하고 제작진은 방송 분량을 뽑았다고 좋아한다. 

오로지 술자리의 유흥을 전시하는 콘텐츠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이렇게 많은 연예인 술방 콘텐츠가 우후죽순 생겨난 중심에는 '게으른 창작자'가 있다. 진정성이 사랑받는 시대라지만 <짠한형>은 사적 술자리라는 '현실'에 카메라 렌즈를 비추면 '진짜'가 만들어진다고 사람들이 착각하게 만든다.

'만취'라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편집방향으로 정한 제작진은 본 촬영을 끝낸 후 비틀거리며 2차 술자리로 향하는 연예인의 모습, 갈지자로 걷고 얼굴은 벌게진 상태로 자리를 파하는 장면을 내보낸다. 대중의 호응을 맛본 시점에서 애초에 선이 없던 수위가 고장난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너도나도 하는 술방? 만들기 쉬운 콘텐츠 찍어낸 결과

회차를 거듭할수록 <짠한형>은 신동엽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친목 술자리'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라이브 방송'이지 '토크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창작자의 기획력 없이 스타의 영향력, 인맥에 기댄 방송 포맷은 투자 대비 결과가 확실하다는 이유로 끝없이 생겨난다. 

술방이 유튜브를 넘어 공중파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참신한 기획 예능, 새로운 예능인을 만나기 더 어려워졌다. 폭음을 유쾌한 것,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포장하는 콘텐츠가 스타의 이미지를 빌려 '토크쇼'로 둔갑하는 상황에까지 온 지금, '술 방송 포맷'에 대한 성찰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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