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호 청각장애 어반스케쳐, 매일이 행복합니다" [앤디의 어반스케치 이야기]
[오창환 기자]
▲ 류호철씨가 어반스케쳐스 남산전시회에서 현장을 그린 그림이다. 당시 상황과 인물의 특징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
ⓒ 류호철 |
지난 21일 서울 언더스탠드에비뉴와 서울숲 일대에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과 콜라보로 어반스케쳐스 서울의 10월 정기 모임(이하 정모)이 진행되었다. 요즘 서울 챕터의 정모 참가 인원이 급격히 늘고 있고, 날씨도 장소도 좋아서 200여 명이 모인 역대급 행사가 되었다.
▲ 서울숲 군마상 앞에 자리를 잡은 스케쳐들. 오른 편에서 서서 그림을 그리는 이가 호철씨다. 그림 왼편에 군마상 일부가 보인다. |
ⓒ 오창환 |
▲ 서울숲은 예전에 뚝섬 경마장이 있던 곳이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군마상 조각상이 있다. 달리는 경주마를 빠르게 스케치해 보았다. |
ⓒ 오창환 |
- 어반 스케치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작년 8월 수원 정모에 처음으로 참가했어요. 작년 7월 수원 행궁 마켓에서 캐리커쳐를 그리던 오니온님을 만나서 어반스케치를 알게 되었어요. (오니온님은 수원 챕터 운영진이다) 올해 1월부터는 서울 정모에도 나가고 있어요."
-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나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부모님께서 미술 교육을 시키셨어요. 대구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전선택 화백님께 배웠어요. 고등학교 땐 미술부 활동을 했어요. 대구대학교 미술대학 회학과(서양화 전공) 졸업한 후에 30대 초반까지 그룹전, 공모전에 출품하여 참가했는데. 그때 경제적인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탓에 붓을 꺾었어요."
- 그럼 지금은 무슨 일을 하세요?
"오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회사 계열사(위드림)에서 글로벌 물류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연차 휴가를 내는데 어려움이 없어 수원 아시아링크에 참여 할 수 있었고, 주말에 어반스케치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지난 10월 12일에 열린 어반스케쳐스서울 남산 전시회에 참가하셨는데 몇 년 만의 전시인가요?
"어... (호철 씨가 한참을 계산한 후에 말한다) 25년 만에 전시회에 참가하네요. 30대 초반에 그림을 포기하고 전공과 관련 없는 생산직을 오랫동안 해 왔는데, 그림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어반은 작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다른 어반스케치 전시회를 여러 번 관람했는데 제 마음속에 꺼져 왔던 "젊었을 때 서양화가의 정열과 꿈"에 대한 촛불의 심지가 타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런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녹슬었던 손의 감각과 표현을 살리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 어반스케치가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젊었을 때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외롭게 작업하고 사람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는데, 어반스케치 활동하면서부터 마음이 열리고 다른 스케쳐와 교류가 잦아져서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었어요. 넓은 세상에서 어반스케쳐와 즐거운 만남을 통해서 인생 공부와 그림에 대한 안목을 넓혀서 정말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애지중지한 그림 태워 눈물... 산전수전 다 겪었어요"
- 젊은 시절에는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몇 년 전 저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요, 제가 그렸던 작품을 친척 회사의 창고에 보관했었는데 어느날, 그림을 비워달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받았어요.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제 작품을 회사 창고 앞에서 불태워 버렸는데, 제가 애지중지한 그림을 태워버려서 마음이 슬퍼서 울었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가 눈물을 흘렸다.)
저는 예전에 목우회 공모전 특선과 입선 2회를 했고 1997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도 출품했어요. 나무 패널에 혼합 재료로 그린 100호 작품도 그때 태워서 없애 버렸어요. 그때 태우지 않은 몇 점만 제 방 한 곳에 놓여 있어요. 산전수전 다 겪었어요 저는."
- 다시 그림을 그려서 좋겠네요. 지금 사는 곳은 어디인가요?
"지금 군포에서 살아요. 그래서 수원, 서울, 성남 어반스케쳐스 정모에 나간답니다. 평일에 회사에 다니면서 바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어반스케쳐스 정모 단어만 봐도 무척 설레고 기대됩니다."
- 신체장애로 인해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저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특수학교보다 일반 학교(초등학교~대학교)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수업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제 옆에 있는 학우의 노트를 필사했어요. 제일 힘들었던 과목은 음악(듣기, 노래, 악기연주), 국어(받아쓰기), 고등학교 교련 수업이었어요."
- 정모에 나와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처음에 정모에서 운영자의 공지 사항을 전달받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지금은 카톡방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다른 스케쳐들이 내가 말을 못 하는 외국인인 줄 알고 대화를 나누지 못하여 속 시원한 마음이 아니었는데, 제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저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요.
▲ 왼쪽은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한 100호 작품 '소리의 생성'(일부)인데 지금은 불타고 없다. 오른쪽은 인터뷰 중인 호철씨 모습입니다. |
ⓒ 류호철 |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저는 한국에 있는 어반스케쳐스 중 청각 장애인 1호 류호철입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어서 초심을 갖고 꾸준히 활동하려고 해요. 서울 톡방에서 '어반스케치는 마라톤과 같다'라는 글을 보았는데 항상 명심하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누군가 카페 2층에서 눈물 콧물을 찔끔거리면서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는 우리 두 남자를 보았다면 웃겼을 것 같기도 하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나면서 생각했다. 다시 시작된 그의 그림 인생 옆에는 내가 늘 있을 것이라고.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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