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고 욕해도 좋다, 베이비부머가 MZ에게 전하는 십계명
주산(주판)의 마지막 세대이자 컴맹 제1세대, 부모에게 복종한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에게 순종한 첫 세대, 부모를 부양했지만 부모로서 부양 못 받는 첫 세대, 뼈 빠지게 일하고 구조조정 된 세대인 베이비부머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나재필 기자]
▲ 예전 회사의 상사는 입버릇처럼 기자들을 해고하고 싶어했다. |
ⓒ 픽사베이 |
"A는 능력이 안 되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잘랐으면 좋겠는데 묘안이 없어. B는 기사를 발로 쓰는 것 같아. C는 광고영업이 안 돼. 신문사를 폼으로 다녀서야 되겠어? 월급을 받으려면 최소한 몸값은 해야 되는 거 아냐?"
신문사 부장으로 일할 때 회장이 나에게 털어놓은 푸념이다. 입버릇처럼 기자들을 "자르고 싶다"고 한 그의 품평은 대부분 왜곡돼 있었고 과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후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장이 무시하고 깎아내린 A·B·C 전체가 15년째 살아남았다. 스스로 사표를 던진 나를 빼놓고는 말이다. 회장이 그렇게 간절하게 자르고 싶어 했던 A는 편집국장 임기를 마친 후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B·C는 각각 전무와 상무가 됐다.
결국 '버티기'다. 밀림 같은 약육강식·생존경쟁의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최후의 승자는 능력자가 아니라 맷집 좋은 이들이다. 착하고, 의리 있고, 모범생으로 살면 손해 볼 일들이 더 많다.
의협심 강했던 지난날
문득 의협심 강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야간자율학습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밤 10시까지는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어느날, 자습을 끝내고 집에 가는데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거기 무슨 일 있으세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가보니 네다섯 살 많아 보이는 남성이 한 여성의 몸을 짓밟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맞고 있던 그녀를 구해야 했다. 다짜고짜 그 남성에게 몸을 던졌고, 그 틈을 타 여성이 도망쳤다. 잠시 옥신각신했는데 남자가 먼저 두 손을 들어 보이는 몸짓을 보이며 휴전 표시를 해왔다.
"이 친구, 고등학생인가 보네. 저기 있는 학교 다니나?"
"네…"
"젊은 친구가 기백이 좋군. 맘에 들어. 저기 가서 음료수나 한잔할까?"
남성이 콜라와 사이다를 사와 건넸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머리에서 벼락이 쳤다. 그리고 이내 얼굴로 쏟아지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남성이 콜라병으로 내 머리를 내리친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남성은 이미 줄행랑치고 있었다. 의협심이 좋다며 날 치켜세운 건 경계를 늦추기 위한 꼼수였던 것이다.
결국 이마를 17바늘 꿰맸다. 그날 이후 붉은 흉터와 20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흉터를 볼 때 가끔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때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 어떤 힘든 일이 생겨도 절대 도망치지 않기로 다짐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그 경험칙은 스스로 물러서지 않고 직면한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 보게 하는 단초가 됐다.
세월이 흘러 흉터가 흐릿해질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시간은 상처를 아물게 한다. 한반도 지도 같은 흉터도 점차 옅어졌다. 누군가 흉터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전 이 흉터가 싫지 않아요.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맞닥뜨렸을 땐 그냥 마주 대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전 그 불편한 시간을 버팁니다."
▲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
ⓒ 연합뉴스 |
어쩌면 상처의 교훈으로 인생의 어떤 시점을 버티고 참으며 지나왔다. A·B·C보다 먼저 사표를 내고 직장생활을 마무리했지만, 그 때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표를 내기 전에 좀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세상은 '관계'로 연결돼 있다.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사회가 굴러가는 것이다. 선구자가 있기 때문에 후발주자가 분발할 수 있다. 조금 모자란 사람이 있기에 똑똑한 사람이 빛나는 것이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무질서가 바로잡힌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해도 버릇(습관)은 바뀔 수 있다. 60년대생으로 꼰대 같지만 좀 더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사회(직장)생활 십계명이 있다.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30년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① 버티는 자가 승자다. 욱해서 사표를 던지지 마라. 자신만 손해다.
②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
③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된다. 자신을 너무 닦달하면 서두르다 망친다.
④ 인사가 만사다. 인사만 잘해도 사람이 달라 보인다.
⑤ 끊임없이 보고 배워라. 뭐래도 익혀놓으면 쓸 데가 있다.
⑥ 롤 모델 삼을 사람을 꼭 한 명은 만들어라. 그를 본받으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된다.
⑦ 좋은 옷은 아니어도 단정하게 입어라. 좋은 인상은 인성을 좋게 보이게 한다.
⑧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공짜는 가짜 관계를 만든다.
⑨ 뭐든지 하고 보라. 가만히 있으면 0%지만 일단 해보면 1% 이상 건진다.
⑩ 뒷담화하지 마라. 욕은 반드시 돌아온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평생직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100세 시대에 우리가 거쳐 갈 직장은 최소 2개 이상이다.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면 노년이 힘들어진다. 젊었을 때 제2의 직업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내가 막일을 하고, 공장 식당에서 2000명분의 설거지를 하게 된 것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탓이다.
"때가 되면 뭐라도 하고 있겠지."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될 대로 되라. 인생은 어차피 한방이야."
이런 말은 착각이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의 역사(history)는 그 사람의(his) 이야기(story)다. 은퇴(retire)는 타이어(tire)를 다시(re) 갈아 끼우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 우여곡절의 직장생활, 답은 버티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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