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남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이 받은 심각한 악플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신필규 기자]
▲ 퀴어돌 영업왕 마마무편의 한 장면 |
ⓒ 큐플래닛 |
"성소수자 인정해달라고 여기저기 떠들지 마, 너흰 정상이 아니야."
퀴어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성소수자에 대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큐플래닛은 최근 '퀴어돌 영업왕'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공개 중이다. 케이팝은 전 세계를 아울러, 특히 성소수자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 아이돌들은 다른 국가의 가수들에 비해 화려한 안무와 의상을 보여주며 이런 모습이 종종 이분법적인 성역할을 넘어서거나 혹은 그 경계를 뒤섞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해외 진출 초창기 케이팝은 각 국가의 성소수자 하위문화처럼 인기를 모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성소수자 팬덤이 케이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팬으로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를 다룬 콘텐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퀴어돌 영업왕'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각 가수의 팬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의 '퀴어한 매력'을 영업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 큐플래닛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달린 성소수자 혐오 댓글 |
ⓒ 큐플래닛 |
케이팝을 퀴어하게 해석한다, 그 반응은?
큐플래닛은 비영리 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운영하는 채널이다. 그렇기에 채널은 시작부터 비영리 공익채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쓸 수 있는 예산과 인력도 한정적이고 될 거 같다고 아무 소재나 건드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채널의 규모도 영향력 있는 다른 유튜브 채널에 비해 작은 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았을 때, '퀴어돌 영업왕'에 대한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평소에 비해 조회 수가 높게 나온 에피소드가 있는 점도 그렇지만 다양한 국가의 케이팝 팬들이 환영하는 반응을 보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는 반응부터 성소수자로서 자신이 특정 아이돌을 사랑하는 이유를 잘 짚어주어서 감동적이라는 호응까지, 평소보다 많은 댓글과 SNS 반응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노골적인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있었지만 성소수자 당사자인지 알 수 없는 가수들을 왜 퀴어하다고 해석하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한 영어권 시청자는 코멘트를 통해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퀴어'라는 단어를 본래의 용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며 성소수자인지 불분명한 가수들의 작업을 '퀴어하다'고 해석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글쎄, 나를 비롯한 출연진들은 성소수자를 뜻하는 '퀴어'라는 단어가 어떤 역사 속에서 탄생하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지 알고 있다. 다만 이 단어가 물을 건너 여러 나라에 퍼지면서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의미와 맥락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인 팬들을 게스트로 초청한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그 단어가 한국에서 통용되는 방식대로 쓰일 수밖에 없음을 먼저 짚고 싶다. 한국에서는 서구권에서 유래한 성소수자 하위 문화의 명칭을 세세하게 구분하기 보다는 '퀴어 문화'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성소수자가 아닌 예술가의 작업을 퀴어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
다음으로 성소수자가 아닌 가수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놓고 이를 퀴어하다고 해선 안 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반대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한 가수의 작업은 무조건 퀴어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가수들 중에서도 자신이 속한 장르의 도식을 철저하게 쫓거나 관습적인 성역할을 아주 충실히 따르는 이들도 많다.
물론 대중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무엇이 퀴어한가'를 선 긋듯이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매우 보수적으로 보이는 콘텐츠도 세심하게 읽다 보면 매우 급진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커밍아웃 한 모든 예술가들의 작업을 무리를 해가며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있던 걸 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가수가 성소수자 당사자여야만 그들의 콘텐츠를 퀴어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심지어 케이팝 콘텐츠들이 성소수자들의 하위문화를 사용한 사례도 이미 있다. 예를 들어 보깅(Voguing)이나 왁킹(Waacking)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등지에 북미의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유행이 시작된 춤이었다. 지금이야 이 춤들이 대중적인 유행을 탔으니 여기저기 보인다고 쳐도, 사실 그전부터 케이팝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해당 안무들을 선보여 왔다. 또한 대놓고 퀴어 영화나 공동체 문화를 차용한 해외 팝스타들의 컨셉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퍼포먼스에 이식한 한국 가수들도 많다. 케이팝의 곳곳에 이미 존재해 온 퀴어한 요소들이 아직까지 전면에서 이야기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 큐플래닛에서 케이팝을 소재로 제작한 <케이팝을 퀴어링>, <퀴어돌 영업왕>의 로고(디자이너: 허원준) |
ⓒ 큐플래닛 |
창작자들 또한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자신이 겪고 보아 온 것들을 작품 속에 녹이지만,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누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창작자가 인용하고 재창조한 요소들 속에서 전혀 다른 결의 맥락을 읽어내고 독창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수용자들은 늘 등장한다. 작품의 의미란 그런 방식으로 완성된다.
큐플래닛이 제작한 또 다른 영상 '케이팝을 퀴어링'에 출연한 연혜원 활동가들의 말처럼 대중문화에서는 늘 해석의 전쟁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특정 콘텐츠가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을 잘 따른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심지어 내재된 퀴어한 맥락조차 삭제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왜 그게 당연한가.
그리고 반대로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니거나 불분명한 창작자가 때로 관습적이고 익숙한 콘텐츠를 생산했다고 이걸 퀴어한 관점에서 해석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주장은 결국 서두에 언급한 댓글처럼 성소수자를 비정상으로 보는 태도의 연장은 아닐까. 이러한 태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만의 방식대로, 때로는 퀴어하게 혹은 다양하게 문화를 이야기하고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케이팝이든 무엇이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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