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고의 교통사고로 억대 보험금 편취한 40대 여성 징역 20년 확정

최석진 2023. 10. 2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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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보험에 중복 가입한 뒤 70대 노인을 일부러 치어 사망하게 만든 40대 여성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이 여성은 14년 전에도 비슷한 범행을 저질러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전력이 있었다. 피고인은 이를 자신이 유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로 주장했지만, 법원은 오히려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받고도 처벌되지 않았던 과거 경험이 또다시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고 봤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42·여)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죄의 고의 및 공동정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연령, 성행,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살펴보면, 상고이유에서 주장하는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20년 9월11일 전북 군산시 한 도로에서 길을 걷던 70대 여성을 시속 42㎞의 속도로 들이받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이 사고로 보험사로부터 치료비와 형사 합의금, 변호사 선임 비용 등 1억76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김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보험금을 받을 목적으로 일부러 사고를 낸 것으로 파악했다. 사고 당시 김씨 옆 조수석에 타고 있던 전 남편 A씨는 2017~2018년 화물차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고, 이로 인해 김씨는 파산을, 남편 A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김씨는 2018년 남편과 이혼한 뒤 한부모 가정으로 국가로부터 양육수당 등을 수령해 4명의 자녀를 양육했고, 2019년 3월부터 다시 동거하기 시작했다. A씨는 벌점 초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화물차 기사로 근무하다가, 면허 취소 사실이 드러나 2020년 8월 해고됐고, 이후 중고 자동차 매매를 중개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김씨는 같은 해 5월에도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1361만원을 취득했으며 여러 보험상품에 중복으로 가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에서 김씨는 '앞을 잘 보지 못해 발생한 사고'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전방주시의무 위반 등 운전 부주의에 의해 일어난 사고일 뿐 보험금을 노리고 살인의 의도로 낸 사고가 아니었다는 취지였다.

실제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는 김씨가 사고가 나기 2초 전부터 "아, 엄마 나 흘렸어"라고 반복해 얘기하는 음성이 녹음돼 있었고, 김씨는 당시 이런 말을 하면서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음료수를 닦고 있다가 사고를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초라는 시간이 음료수를 떨어트리고 이를 치운 후 닦기까지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점,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말을 했다면 목 눌림으로 인해 어조가 달라지거나 소리가 나는 방향이 달라져야 하는데 녹음된 음성에서 그 같은 변화를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사고 당시 차량에 함께 타고 있었던 증인이 법정에서 "김씨가 '충격과 동시에' 음료수를 쏟았다"고 증언한 것에 비춰 봐도 "충격하기 전에 음료수를 쏟아서 피해자를 보지 못했다"는 김씨의 진술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살인죄 유죄를 인정,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사고 직전 계속 가속했고 차를 멈추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점, 피해자가 걷던 방향으로 자동차의 진행 방향이 꺾였던 점 등을 근거로 김씨에게 피해자를 살해할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당시 경제 상황으로 볼 때 범행 동기가 충분했고, A씨와의 보험금 편취에 대한 공모 정황도 인정된다고 봤다.

특히 A씨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된 교통사고가 2019년과 2020년 각 11건에 달했고, 2019년에는 하루에 2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날도 이틀이나 됐는데, 이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의 근로소득의 약 2배가 넘는 9600여만원을 보험회사로부터 입금받은 것을 보고 김씨가 고의로 교통사고를 발생시켜도 유의미한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주 경험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고액의 보험금을 수령할 욕심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의 정도가 중대해질 가능성이 높고 기대여명이 얼마 남지 않아 유족들과 쉽게 합의에 이를 것이 기대되는 고령인 피해자를 골라 범행했다"며 "보험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에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김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김씨는 2009년에도 전북 익산시 도로에서 70세 노인을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하고 보험금을 타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력이 있었다. 당시 김씨는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김씨는 재판에서 "과거의 교통사고와 재판 경험 등에서 얻은 교훈으로 인해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보험사기 범행을 하지 않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보험금을 노린 교통사고로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던 내가 또 같은 범행을 저질렀겠냐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그 같은 사고 전력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평소에도 거칠게 운전한다는 시어머니의 진술과 평소 신호 없이 차선을 변경한다는 김씨의 진술 등이 참조됨) ▲2009년 낸 교통사고로 합의금 5000만원을 훨씬 넘는 3억9000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해 이를 아파트 구입이나 화물차 사업 추자 용도로 사용하는 등 상당한 경제적인 이익을 누렸음에도 결국 형사처벌을 면했던 점 ▲고의로 2020년 5월 21자 교통사고를 내 1200만원이 넘는 보험금을 수령했음에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죄(치상)로 불과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만 받아, 보험사기범행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큰 형사처벌을 면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을 것으로 보이는 점 ▲이번 사건 역시 2009년 사건과 유사하게 고령의 여성이 피해자라는 점 등에 비춰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과거의 무죄판결을 통해 교통사고의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피고인이 보험금 수령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과거 무죄를 받은 사안과 유사한 수법으로 이 부분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반대의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이고, 그러한 해석이 피고인이 처한 경제적인 상황 및 보험가입 내역과 더불어 이 부분 교통사고의 발생 경위나 그 전후 정황을 설명하기에 더 합리적이라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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