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11년 어머니 병수발…"진심보다 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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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그건 "진심"이기보다는 "양심"에 따른 것이었고, 어머니 돌봄은 "가혹한 의무"였다고 말한다.
부제의 키워드 중 하나인 '양가감정'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돌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혼돈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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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희귀 질병을 앓는 어머니를 11년간 돌본 경험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하는 자전적 에세이다. 나이 듦과 병듦, 필수 노동으로서의 돌봄, 그리고 그 끝에 놓인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을 냉철하게 직면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언젠가 돌봄의 제공자이자 또 대상이 될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움을 주고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불편한 진실과도 마주한다.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그건 “진심”이기보다는 “양심”에 따른 것이었고, 어머니 돌봄은 “가혹한 의무”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양심’과 자기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욕망’ 사이에서 린 틸먼은 괴로워하고 혼란스러워했다. 부제의 키워드 중 하나인 ‘양가감정’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돌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혼돈을 드러낸다. “이 일을 완벽하게 제대로 해내기란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은 지금 돌봄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전한다.
그럼 당신은 도와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관심을 끈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체면의 모든 규칙이 깨진다. - p.79
노인 환자는 특히나 의학계에서 가망이 없는 짐짝으로 여겨진다. - p.104
나는 좋은 딸 역할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고 대신 내 양심은 담겨 있었다. - p.130
어머니를 변기에 앉히고,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의 밑을 닦았다. 어머니의 음부를 씻고, 어머니의 유방 밑살을 닦고, 어머니의 가슴을 만지는 것은 혈연 그리고 무언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 p.142
어머니는 내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종종 내게 물었다. 왜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거지?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위로하는 대신 이런 식으로 말했다. 어머니의 때가 오면 그렇게 될 거예요. 어머니의 몸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그래요, 죄송해요. - p.168~169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적어도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 p.169
겉으로 드러나는 징후,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징후는 발가락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다. 마치 뭔가를 움켜쥐듯이. - p.184
사람이 죽을 때 목에서 내는 소리는 더 이상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입안에 고인 침이 만드는 소리다. 죽어갈 때 삼킴 기능이 멈추기 때문이다. - p.185
어머니가 거동이 어려워지면서 장애인의 세계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 p.226
어머니를 돌보다 | 린 틸먼 저 지음 |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63쪽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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