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꽃의 형태 그대로 옮겨 자연을 담은 그릇 만들어요
가을은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 사이에 있는 계절입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 나뭇가지에 매달린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우면서도, 나뭇잎은 바닥에 떨어지고 꽃을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시기이기도 하죠. 만물이 다시 생기를 되찾고 꽃을 피우는 봄이 오기까지 앞으로 반년은 기다려야 해요.
곧 다가올 겨울에도 꽃의 화사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피어있는 꽃을 그대로 말린 드라이 플라워(dry flower), 오랫동안 생화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화학 약품 처리한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 등이죠. 드라이 플라워와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꽃의 형태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둔 방법인데요. 생활에서 자주 쓰는 물건에 꽃의 형태를 살려서 장식하는 방법도 있어요. 압화 그릇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릇으로 만들 흙 반죽의 표면에 꽃을 눌러 그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죠. 약품 처리한 꽃을 눌러서 건조한 뒤 그림을 그린 것처럼 화폭에 구성한 조형예술의 일종인 압화(pressed flower·押花)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꽃의 형태를 그릇 표면에 남기는 도자기라니, 흔하지 않은 형태의 작업이라 더욱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압화 그릇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스토 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문재영·안현진 대표가 화초가 우거진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인상적인 2층 공방에서 박재인 학생기자와 오은채 학생모델을 맞이했어요. 먼저 재인 학생기자가 "그림·조각 등 그릇을 장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압화를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안 대표가 "그릇 표면에 꽃의 형태를 남기는 압화 기법은 해외에서 주로 쓰는 도예기법이에요. 스토 스튜디오는 공방 내외부에서 보이는 푸릇푸릇한 정원이 특징인데요. 여기에서 계절과 분위기에 맞는 꽃을 담아내 나만의 꽃그릇을 만들면 잘 어울릴 것 같아 압화 기법을 공방의 메인 테마로 정하고 압화 그릇 수업 커리큘럼과 수업용 석고 틀을 개발했죠"라고 설명했어요.
이어서 초보자가 압화 그릇을 만들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을 알려줬죠. "첫 번째, 자신이 어떤 느낌으로 그릇에 꽃을 장식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서 재료가 될 꽃을 선별해야 해요. 두 번째, 꽃의 두께를 잘 고려해 그릇의 두께를 정해야 해요. 만약 해바라기처럼 꽃잎이 크고 두꺼운 꽃으로 그릇의 표면을 장식하려면 그릇을 만들 흙 반죽의 두께도 두꺼워야죠. 반면 꽃잎이 얇은 꽃은 흙 반죽이 비교적 얇아도 괜찮아요."
압화 그릇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백자토 덩어리, 백자토 덩어리를 올릴 나무판, 백자토 덩어리를 넓게 펼 때 사용하는 밀대, 도자기 제작용 손물레, 여러 종류의 꽃, 스펀지와 물이 담긴 실린더, 물이 담긴 스프레이, 그릇 입구를 다듬을 때 쓰는 칼날이 대각선 방향으로 날카로운 전칼, 꽃을 자르는 원예용 가위, 작은 붓, 광목천, 핀셋, 타원형 석고 틀 등입니다.
첫 번째로 나무판 위에 광목천을 펼쳐 올리고 주름을 펴줍니다. 스프레이로 광목천 위에 물을 뿌린 뒤, 천 표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주름을 펴죠. "나무판 위에 바로 백자토를 올리면 흙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수축할 때 나무판과 딱 붙어요. (너비가 넓게 짠 베로 만든) 광목천은 숨구멍이 있어서 통풍이 잘돼요. 백자토와 나무판 사이에 광목천을 놓으면 공기 순환을 도와 흙이 손상되거나 갈라지는 걸 최대한 막아주죠."(문)
주름 하나 없이 펴진 광목천 위에 백자토 덩어리를 올려줍니다. "백자토는 입자가 매우 고운 흙이라서 꽃의 섬세한 부분까지 그릇에 새길 수 있어요. 그만큼 다루기 어렵지만, 신경 써서 열심히 다듬으면 예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요. 백자토는 그릇을 만드는 단계에서는 베이지색이지만 투명한 유약을 바른 뒤 가마에 구우면 아이보리색이 되죠."(문)
두 번째 단계는 백자토 덩어리 밀기입니다. 문 대표가 백자토 옆에 타원형 석고 틀을 놓아두었는데요. 칼국수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밀듯, 밀대로 백자토 덩어리를 밀어서 납작한 판의 형태로 만들어야 해요. 백자토 덩어리의 1.5배 정도 면적인 석고 틀을 다 덮을 정도의 면적이어야 하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처음에는 밀대 사용이 손에 익지 않아 어려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법 익숙하게 평평한 형태로 만들어냈어요. 적당한 크기로 밀어낸 백자토 판은 물을 묻히고 꽉 짜낸 스펀지로 위를 쓸어줍니다. 앞서 시간이 지날수록 흙에서 수분이 증발한다고 했죠. 이렇게 물을 먹인 스펀지로 쓸어주면 흙에서 수분이 증발해 표면에 금이 가거나 구멍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세 번째 단계는 타원형 그릇을 엎어놓은 형태의 석고 틀을 손물레 위에 올려두고, 석고 덩어리 윗면에 꽃을 장식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꽃을 놓은 뒤, 백자토 판으로 덮으면 그릇의 바닥에 꽃의 형태가 새겨지겠죠. 문 대표가 재인 학생기자와 은채 학생모델을 위해 연노랑 작은 꽃이 알알이 모인 형태가 특징인 솔리다스터, 계란후라이를 닮은 모양이 귀여운 백공작, 넓은 꽃잎과 화려한 아름다움이 인상적인 겹백합, 소나무처럼 뾰족한 잎을 가진 등심초를 탁자 위에 놓았어요. 원예용 가위로 원하는 꽃과 꽃잎을 잘라서 석고 덩어리 윗면에 놓으면 됩니다.
은채 학생모델이 "그릇 압화에는 주로 생화를 활용하는 것 같아요. 드라이 플라워로 하면 안 되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꽃의 형태에 따라 드라이플라워가 적합한 경우도 있고, 생화가 적합한 경우도 있어요. 그건 제작자의 의도에 적합한 형태인지 여부를 사전에 시험해 봐야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그릇 바닥 표면에 (암술·수술·꽃잎·꽃받침 등) 꽃의 형태를 잘 새기고 싶다면 생화를 써야 해요. 드라이플라워는 형태가 휘거나 바스러질 수 있어요."(문)
석고 틀 위에 꽃을 배치할 때는 그릇의 용도를 고려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면 가운데보다는 가장자리에 꽃을 배치하는 게 음식물이 덜 끼이고, 설거지할 때도 수월하겠죠. 반면 장식용 그릇이라면 과감한 배치로 화려하게 꾸며도 됩니다. 재인 학생기자와 은채 학생모델은 서로 다른 스타일로 꽃을 배치했어요. 은채 학생모델은 솔리다스터와 등심초를 가장자리에 배치하고 중앙을 비워둔 채 끝냈지만, 재인 학생기자는 가장자리에 솔리다스터와 등심초를 배치한 것 외에도 중앙에 겹백합의 꽃잎을 한 장 따서 놓았죠.
이제 백자토 판을 석고 틀 위에 놓고, 타원형인 석고판 모양에 맞게 손으로 두드리고 매만져서 성형합니다. 그러면 석고 틀 위에 있던 꽃과 꽃잎이 백자토 판에 달라붙게 돼요. 형태 성형을 마치면 석고 틀에서 삐져나온 백자토 판의 일부를 전칼을 사용해 잘라줍니다. 전칼의 단면이 남은 모서리는 손으로 매만져서 부드럽게 다듬고, 구멍이 생겼거나 매끄럽지 않은 백자토 판 표면은 스펀지에 물을 살짝 묻혀서 정리합니다.
문 대표가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백자토 판이 그릇의 바깥쪽 바닥 부분이 될 거예요. 알파벳과 숫자가 양각으로 새겨진 도장을 이용해 바닥에 원하는 문구를 새겨보세요"라고 말했어요. 은채 학생기자는 자신의 이니셜과 제작 날짜를, 재인 학생기자는 "Smile Every day"라는 문장을 백자토 판에 음각으로 새겼죠.
도장으로 문구를 새기는 동안 석고 틀이 백자토 판의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두 개가 분리가 가능한 상태가 됐어요. 분리해서 뒤집으니 백자토 판 안에 쏙쏙 박힌 솔리다스터·등심초·겹백합 꽃잎이 눈에 들어왔죠. "와, 정말 아름다워요!" 소중 학생기자단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이제 핀셋으로 백자토 판에 박힌 꽃을 빼낼 거예요. 솔리다스터는 꽃의 크기가 작은 구슬과 비슷하고, 등심초는 잎이 바늘 모양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서 빼내야 해요. "핀셋으로 꽃과 꽃잎을 제거한 부분에 울퉁불퉁한 요철이 남지 않아야 해요. 핀셋 자국이 난 부분은 작은 붓에 물을 묻혀서 살살 문질러 주세요."(안) 핀셋으로 표면에서 꽃을 제거하는 과정을 끝내고, 그릇 입구의 테두리 부분을 위를 향하도록 수직으로 좀 더 다듬어 주면 가마에 구울 준비가 끝납니다.
그릇 형태가 된 백자토 판은 두 번에 걸쳐 가마에서 구워요. 먼저 유약이 잘 발리도록 700~800도 온도에서 초벌로 굽죠. 문 대표가 초벌된 그릇을 예시로 보여줬는데, 연한 분홍색이었죠. 이 상태에서 투명한 유약을 바른 뒤 1220~1250도 온도에서 재벌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보리색 그릇이 돼요. 이 과정은 약 3주 정도 소요됩니다. 설명을 듣던 은채 학생모델이 "하루빨리 제 그릇을 받아보고 싶어요"라며 눈을 반짝였죠.
압화 기법을 사용한 그릇 만들기는 꽃의 형태에 따라 표면에 다양한 문양과 질감을 낼 수 있어요. 자연의 형태를 그릇 표면에 그대로 구현하기 때문에 조각·그림에 능하지 않은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죠. 또한 도자기를 굽는 과정까지 체험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예요. 깊어져 가는 가을,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장식한 그릇을 만들어 꽃이 피었던 계절을 기억해 보세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처음에는 압화라고 해서 꽃을 그릇에 배치한 뒤 굽는 것을 생각했는데, 형태만 남기는 작업이었어요. 꽃을 둔 그릇을 가마에 구우면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 꽃이 타버리기 때문이에요. 반죽을 그릇의 크기와 두께에 맞게 밀어서 다듬고, 꽃을 배치하고, 밑바닥에 글씨를 새기고, 꽃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 압화 그릇을 만들었죠. 이렇게 만든 그릇은 700~800도에서 초벌 해서 유약을 바른 뒤, 1220~1250도에서 재벌 해서 완성한대요. 저는 석고 틀에서 삐져나온 백자토 자투리를 전칼로 자르는 단계와 백자토 판에 남은 제 손자국을 스펀지와 작은 붓으로 다듬는 단계가 가장 어려웠어요. 나머지 부분은 문재영·안현진 대표님이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게 잘 설명해 주셔서 간단하고 재미있었죠. 여러분도 꼭 한 번 도전해 보세요.
박재인(서울 가원초 4) 학생기자
이번 취재에서는 스토 스튜디오에 가서 압화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도자기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서 압화 그릇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 기대가 됐죠. 문재영·안현진 대표님이 친절하셔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눌러서 말린 꽃을 그릇에 그대로 붙이는 건 줄 알았는데, 백자토 판에 꽃을 눌러서 형태를 찍어낸 뒤 핀셋으로 떼어내는 방식이라 흥미로웠죠. 처음 만들어 보는 방식이라 약간 걱정됐지만 막상 해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만든 그릇은 가마에 두 번에 걸쳐 구워야 해서 약 3주 뒤에 완성된대요.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돼요. 완성된 그릇을 빨리 받아서 사용해 보고 싶고, 다음에는 가족 모두와 함께 그릇을 만들고 싶어요.
오은채(서울 가동초 5) 학생모델
」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박재인(서울 가원초 4) 학생기자·오은채(서울 가동초 5)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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