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치어 죽이고 무죄…14년뒤 똑같은 수법, 보험사기 딱걸렸다
70대 노인을 차로 치어 죽이고도 무죄를 받았던 40대가 비슷한 범죄를 다시 저질러 14년 만에 중형을 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살인 및 보험사기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씨는 2020년 9월 전북 군산시의 한 도로에서 길을 건너던 76세 노인 A씨를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하고, 합의금 등 명목으로 보험금 1억7600만원을 부정 지급받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법정에서 ‘교통사고를 내거나 A씨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차 안에서 음료수를 마시다가 흘리는 통에, 앞을 잘 보지 못해 실수로 사고를 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김씨가 법원에 제출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엔 사고 직전 ‘흘렸다’고 외치는 김씨의 육성이 담기기도 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차량으로 피해자를 충격할 경우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는데도 피해자를 충격해 사망하게 함으로써 피해자를 살해하고,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것처럼 가장해 보험금을 취득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 사망 사고 5초 전 시속 33㎞로 달리던 김씨가 차로 변경 후 차량 속도를 시속 42㎞까지 올린 데다가, 김씨가 ‘흘렸다’고 외치기 전부터 차량 전방에 길을 건너는 A씨의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특히 진로 변경 후 약 1초가 지난 후 피고인이 ‘흘렸어’라는 말을 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진로 변경과 동시에 음료수를 마시는 시도를 했다는 것인데, 이는 운전자 스스로에게도 매우 위험한 것이어서 자연스러운 태도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가 음료수를 흘렸다고 한 시점에 차량 진행 방향이 흔들리기는커녕, A씨 쪽으로 틀어진 점도 재판부의 의심을 샀다.
재판부는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하며 김씨 주장을 허점을 하나하나 짚었다. “블랙박스 영상에 음식물을 씹는 소리까지 녹음됐지만, 음료수병을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들릴만한 소음이 전혀 녹음되지 않았다” “A씨를 충격할 때까지도 A씨에게 다가간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는데, 그렇다면 충격과 동시에 비명을 지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70대 들이받아 살해…증거부족 무죄
김씨는 2009년에도 전북 익산시 도로에서 70세 노인을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하고 보험금을 타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김씨는 이 사건 1심에서 징역 9년을 받았지만, 2심 재판부인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 형사1부(부장 임상기)가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풀려났다. 이후 김씨는 2009년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7건의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4억2129만원을, 전 남편 B씨는 29건의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7억1738만원을 부정 지급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뚜렷한 수입원 없이 양육 수당 등을 받으며 생활해왔다고 한다.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B씨는 2020년 8월 교통사고 이력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되면서 해고됐다. 2020년 3~12월 김씨와 전 남편 B씨는 총 5300만원을 벌었지만, 같은 기간 생활비 등으로 2억 4700만원을 썼다. 김씨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34개 보험에, B씨는 2008~2020년 총 57개 보험에 가입했다.
1심 재판부는 “고액의 보험금을 수령할 욕심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의 정도가 중대해질 가능성이 높고, 기대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아 유족들과 쉽게 합의에 이를 것이 기대되는 고령인 피해자를 골라 범행을 해 죄질도 매우 좋지 않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 역시 “과거 무죄판결을 통해 교통사고의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김씨가 보험금 수령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과거 무죄를 받은 사안과 유사한 수법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며 원심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고 봤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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