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의 매력

김현정 2023. 10.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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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도 물러가고 이제 가을입니다. 가을은 날씨가 좋아서 ‘독서의 계절’이라든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든가 하는 표현을 쓰곤 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신나게 놀기에 좋아요. 다른 계절에 비해 바깥 활동을 하기도 좋으니 시간이 날 때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 가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을은 식물이 번식하기에도 적합한 계절이라 저마다 열심히 최종 목적인 열매를 만들고 성숙시켜 가죠. 나무들은 저마다 다양한 열매를 만들어내고 익히거나 건조시키며 멀리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특히, 빨간 열매가 아주 많이 눈에 띕니다. 빨간 열매는 동물을 겨냥한 열매라고 할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주로 새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새들이 다른 동물에 비해 빨간색을 잘 구분하고, 장도 짧아서 씨앗이 소화되기 전에 배설될 수 있고, 이빨이 없어서 씹힐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래서 새를 겨냥한 열매들은 새의 입 크기에 맞게 크기도 작게 열립니다. 다양한 빨간 열매가 열리는 나무 중에 이번 호에서는 주목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43 주목

주목은 흔히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자주 말씀하신 단어라고 생각할 텐데요. 그 주목과 이 주목은 한자가 다릅니다. 식물인 주목은 붉을 주(朱), 나무 목(木)자를 쓰는 ‘朱木’이죠. 왜 이름에 붉은색이 들어갔을까요. 나무 겉껍질이 일단 붉은색이고 잘라보면 나무의 심재가 특히 붉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게다가 질도 좋아서 고급 가구를 만들 때도 많이 사용했어요. 나무가 단단하고 탄력이 있어서 서양에서는 활을 만드는 재료로 많이 사용했죠. 유명한 로빈 후드의 활도 주목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조선시대에는 주목에서 추출한 붉은 물감으로 옷감을 치장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주목은 그 특이한 심재 덕분인지 오래 살기도 하지만 죽어도 잘 썩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목에게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별명이 있죠. 정말로 주목이 천년을 살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로는 강원도 정선 두위봉에 있는 1400년 된 나무가 꼽히는데요. 그 주인공이 바로 주목입니다. 정선 두위봉 주목은 세 그루가 위아래로 나란히 천 살을 넘게(1100년, 1400년, 1200년 추정) 살고 있으며 천연기념물이기도 하죠.
이밖에 강원도 발왕산이나 태백산, 충북 단양 소백산에 가면 수백 년 된 주목의 군락지를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오래되고 우람한 나무들이 사는 곳이 있구나, 하고 원시성에 놀라게 됩니다. 그렇다고 주목이 희귀한 나무인 것은 아닙니다. 화단이나 공원, 학교 숲 조경에 주로 사용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볼 수 있어요.

우리 주변 식물들의 비밀 이야기 43 주목

사실 주목은 열매가 특이합니다. 보통의 바늘잎나무의 열매들은 솔방울을 닮은 ‘구과(毬果)’인데 비해 주목은 겉에 빨간 과육이 있죠. 겉을 싸고 있는 빨간 과육은 먹을 수 있고 맛이 달아요. 하지만 안에 있는 씨앗은 독이 있어서 맛이 쓴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햄릿(Hamlet)』에서 햄릿의 아버지를 독살할 때 주목의 씨앗에서 추출한 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물론, 독은 잘 사용하면 약으로도 쓰여요. 항암 물질인 '탁솔(taxol)'을 추출하기도 한다니 정말 매력이 많은 나무입니다.
바늘잎나무들은 주로 바람을 이용해서 날개 달린 씨앗을 멀리 보내려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주목은 새를 겨냥한 빨간 과육이 있는 열매를 만들죠. 그렇다면 주목은 새가 세상에 나오고 난 뒤에 나타난 나무일까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물에게 먹혀 배 안을 통과하면 씨앗의 발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게다가 배설물에 들어있는 거름 성분은 이후 자라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식물의 입장에서는 새를 겨냥해서 열매를 만드는 게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주목과 새는 오랜 시간 그런 관계를 이어오며 지구에서 살아남았죠. 무엇이든 끈기 있고 오래가는 것은 그만한 가치와 매력이 있어요. 올가을에는 하고자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결실을 보기를 기원합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그림=황경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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