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부 장관, '국어·수학 수능' 만들 셈인가
지난 10일 교육부가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이 세 차례에 걸쳐 개편 시안을 분석합니다. <편집자말>
[이현 기자]
이명박 정부에서 5년 내내 교육정책을 주도했던 이주호 장관이 10년 만에 다시 교육부장관으로 복귀한 뒤, 드디어 그가 주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아래 개편안)'이 발표됐다. 핵심 내용은 수능 체제의 변화와 내신 산출방식의 변화다.
개편안에 따르면, 수능은 국어와 수학의 경우 선택과목 없이 공통으로 응시하게 해 특히 수학에서 문제가 됐던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문제는 해소됐다. 하지만 2028 수능 개편안은 이전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30일 앞둔 17일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이 자율 학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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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28 수능 개편안을 통해 교육부 스스로가 고교학점제에 대해 '크게 의미없는 정책'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수능 국어 과목으로 제시된 '화법과 언어, 독서와 작문, 문학', 그리고 수학의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는 모두 '일반선택과목'이다. 고교학점제에 따르면 이 과목들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과목'이다.
그런데 개편안은 이 과목들을 수능 응시과목에 포함시켜서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지난 수 년간 교육부가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강조하면서 추진해온 고교학점제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이과 수학의 유불리 문제와 학교 교육 파행 가능성
또한, 수학 과목의 유불리 문제와 고교 수학 교육과정의 파행적 운영 가능성이 문제가 된다.
개편안에 따르면 문과와 이과의 구별 없이 모두 같은 수학 시험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시험 범위는 과거의 '문과 수학' 범위다. 그러면 누구에게 유리할까? 이과 수학을 공부한 이공계 지원 학생들이 당연히 유리해진다. 이과 수학을 공부한 학생들에게 문과 수준의 수학 시험은 학생들 표현을 빌리면 '껌값'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공계를 지원하는 이과 학생들에게 특별히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이공계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이과 수준의 수학을 공부하지 않고 새로운 수능 범위에만 맞춰서 '문과 수준의 수학' 공부에만 집중한다면, 그들의 수학 실력이 문과 지망 학생보다 월등하게 높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고등학교의 이과 수학 과목 수업이 황폐화된다는 뜻이고, 이공계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문과 학생'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공계열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문과 수준'의 수학만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면, 이공계 대학의 입장에서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이공계 대학뿐만 아니라 수학학회나 수학 교육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사회'니, '디지털 대전환 사회'를 내걸면서 이공계 대학 진학자들에게 '문과 수준의 수학'만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고려해 개편안에선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미적분Ⅱ+기하'를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하는 심화 수학 영역 신설"을 추가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만일 심화 수학이 수능 과목이 된다면, 최소한 이공계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학 실력'을 보완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적분Ⅱ+기하' 과목은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에서 '필수 공통과목'도 아니고, 심지어는 '일반선택' 과목도 아니다. 그보다 심화 단계인 '진로 선택' 과목이다.
따라서 이 과목들이 수능 과목이 되다는 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선택과목인 '진로 선택' 과목조차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아니라 '이공계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는 필수과목'이 되게 하는 셈이다. 결국 고교학점제가 또 한 번 교육부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다.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발표에 참석해 선택형 수능 폐지 및 과목 통합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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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능 개편안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 시험 범위의 문제다.
개편안에 따르면 문과 이과 구별 없이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시험을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만 보게 된다. 겉으로는 '문이과 융합'의 모양새고, 과목 제목도 '통합'이니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들어있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고1 공통과정으로 '기초적인 사회와 과학 공부'에 해당한다. 과학 과목을 예로 들어서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과학 과목은 통합과학(공통) - 일반선택 - 융합선택 - 진로선택과목으로 구분된다. 이때 통합과학이란 인문 사회, 예체능, 이공계열 등 진로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공통 필수 과목을 말한다. 그 내용과 목표는 중학교 수준을 조금 넘어서는 수준에서 과학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데 있다.
한편, 일반선택인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과목은 인문사회 및 예체능계로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알아야 할 자연과학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고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기 위한 기초 과학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과목이다.
그리고 진로 선택과목에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심화 과목이 포함되는데, 이 과목들이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을 위한 과목이다.
그런데 개편안에 따르면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진로 선택 수준의 과학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기초 과학 개념을 위한 일반 선택 수준의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며, '고1 수준의 통합과학'만 수능에 응시하게 한다는 것이다.
통합사회도 통합과학과 마찬가지로 문과뿐 아니라 예체능과 이공계 진로 학생도 필수적으로 이수하는 고1 공통과정이다, 정치, 경제, 지리, 사회문화, 세계사, 윤리 등의 과목은 모두 고2~3학년 과정에서 배우는 일반선택 또는 진로 선택과목인데, 이들 과목은 모두 수능에서 배제된다.
결국 개편안은 고 1에서 배우는 '기초 수준의 교과'인 통합사회와 통합과학만을 수능 과목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첫째, 이와 같은 수능 개편안은 '수능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수능 시험은 '대학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인데, 고1 수준의 교과 지식수준으로 '대학 수학 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고 1수준의 지식으로 '대학 수학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면, 인문계(대학 진학 계열)고등학교의 고2, 고3의 교육과정은 왜 필요한가? 혹시 교육부는 고1 수준의 교과 지식 정도를 갖추고 있으면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공부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둘째, 고등학교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과목 수업을 파행으로 이끌 것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고2~3학년 과정에서 수업하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선택과목은 수능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이렇게 되면 학교 현장에서 고2~3학년의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현실적으로 이 수업들은 학생들에게 '의미없는 형식적인 수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업 시간은 국어와 수학 수능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될 가능성까지 열릴 수 있다.
교육부에서는 고2~3학년 과정도 내신성적이 반영되기 때문에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선택과목 수업도 학생들이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신성적의 변별력이 충분하고 대입에서 실질적인 중요성이 크다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뒤에서 보겠지만, 이번 개편안은 내신성적의 영향력과 변별력을 최소화시켜 놨다.
셋째, 국어와 수학, 영어의 수능 응시과목과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기형적인 시험 구조다. 개편안에 따르면 국어, 수학, 영어는 모두 고1 수준의 공통과목이 아니라 "고2~3학년 '일반선택과목"이 수능 과목이다. 반면에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과목은 고2~3학년 과정은 배제하고 "고1 수준으로만 수능"에 응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발표에 참석해 선택형 수능 폐지 및 과목 통합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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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2028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의해 이후 수능 시험은 사실상 '국어와 수학 수능 시험' 체제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는 2018학년도에 절대평가로 전환된 이후에 이미 수능 성적의 변별 도구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고1 수준의 내용으로만 시험으로 보기 때문에 역시 수능 성적의 변별도구로서의 의미를 갖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개편안에 따르면, 2028학년도 이후의 '수능'은 사실상 '국어와 수학 수능'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대입 선발에서 수능 성적의 영향력과 변별력은 훨씬 약화될 것이다. 달랑 '국어와 수학' 성적만 의미있는 변별이 되는 시험이라고 한다면, '대학 수학 능력 평가'라는 취지에는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수많은 동점자도 양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주호 장관은 왜 이런 내용의 '수능 개편안'을 내놨을까? 이 장관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개편안에 담긴 '내신 성적 산출방식 변경'과 과거 이명박 시절 이주호 장관이 주도했던 대입정책을 되새겨 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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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현은 공항중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전교조 가입으로 해직됐다. 1994년 복직했지만,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곧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스카이에듀라는 수능업체의 대표를 지냈다. 2014년 사교육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2015년 재단법인 우리교육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이후 우리나라 교육정책 전반에 대해 "사실적 근거"에 기반한 연구와 "합리적 대안" 모색을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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