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 망해"…책값 27배 뛴 中금서 일침

전수진 2023. 10.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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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정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다. [중앙포토]


지난달 중국 베이징의 서점에서 일제히 사라진 책이 있으니, 명나라(1368~1644)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를 다룬 역사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숭정제: 실패한 왕조의 부지런한 황제(崇禎: 勤政的亡國君)』라는 이 책이 금서가 됐다며 21일(현지시간) "약 400년 전의 황제의 비극을 다룬 이 책이 지금 서점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중국은 현재 집권 중인 지도자들을 연상시키며 유사점을 그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검열의 대상으로 삼아왔다"며 "중국 내에선 '곰돌이 푸에 이어 과거 황제까지 문제 삼느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라디오프리아시아(RFA) 역시 22일 이 책의 소식을 전하며 "규제가 덜한 온라인 중고 서점에선 이 책이 비밀리에 정가의 27배인 1280위안(약 23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며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간접적으로 표출되는 셈"이라고 풀이했다. FT는 "국영서점부터 독립서점까지 다양한 곳을 가보았지만 '이달 17일부터 판매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며 "(중국) 외교부에 관련 문의를 넣었지만 답변을 즉시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검열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아무 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를 들고 집회를 열고 있는 중국의 시위 참가자들. AP=연합뉴스


숭정제는 1628년 17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망국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평가가 비판 일변도이진 않다. 이전 황제들과 달리 사치를 하지 않았고, 권력을 남용하던 환관 세력을 제거해 정치 개혁을 꾀하기도 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숙청 등 정치 개혁의 과정에서 정쟁을 격화시켰고, '이자성의 난'으로 불리는 농민 봉기와, 후금의 침입 등을 막지 못했다. 반란군이 진격해오자 후궁 등을 죽이고 본인은 자금성 밖 나무에 목을 매 사망했다.

이 금서는 숭정제가 부지런히 취했던 여러 조치가 어떻게 상황을 악화했는지에 주목한다. RFA는 "책 내용 중 '하나의 잘못된 행동이 또 다른 잘못으로 이어지면서, 숭정제가 열심히 일을 할수록 나라의 몰락은 더 빨라졌다'는 대목이 일부 논객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며 "그 과정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중국의 여러 마지막 황제들을 비교하는 글이 올라왔다"고 금서 선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글엔 시 주석의 이름 석 자는 없었지만 대신 일부 비판 세력에서 시 주석의 별명으로 사용해 역시 검열의 대상이 된 곰돌이 푸가 언급됐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시진핑 주석은 이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사회 특성상 이런 비판은 일각에서 우회적으로 익명 온라인 등에서 이뤄졌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의 대대적 단속 대상이 된 이유는 뭘까. FT는 "시 주석 집권 후 검열은 계속 강화됐지만 특히 올해 더 심해졌다"며 "팬데믹을 지나며 경제가 더 어려워졌고 특히 소비자들과 소상공인들 사이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RFA 역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견 개진을 할 수 없는 중국에서 특정 책이나 정보를 통해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 본인이 역사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이유 역시 검열 강화의 배경이라고 FT는 소개했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의 중국학 전문가 케리 브라운 교수는 FT에 "시진핑 주석 본인이 역사엔 패턴이 되풀이된다는 믿음을 가진 듯하다"며 "연설문에도 역사의 교훈을 많이 포함시킨다"고 설명했다. 브라운 교수는 이어 "그런 시 주석을 비판하는 대상 역시 역사에서의 비교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며 "시 주석 본인이 황제와 같은 존재가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2018년 당시 헌법에 적시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했고, 실제 2022년 3연임을 확정했다. 사실상의 종신집권이라는 점에서 그를 두고 '시 황제'라는 비판이 일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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