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전문' 김한길 자주 보인다…다시 뜬 尹신당설 '성사의 조건'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태풍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선거 패배 열흘이 지나면서 ‘김기현 대표 2기 체제’가 출범해 외견상 일상을 되찾았지만 “연말까지 지지율을 못 올리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될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더 큰 비바람이 몰려오기 전의 ‘태풍의 눈’과 비슷한 모양새다.
정치권에선 여권이 맞게 될 태풍의 강도는 “전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연일 “반성”을 언급하며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윤 대통령이 내년 4·10 총선 승리를 위해 강한 태풍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다면 국민의힘에 엄청난 폭풍우가 쏟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최근 재부상하는 게 ‘윤석열 신당론’이다. 현재의 국민의힘 간판과 인력으로 총선 승리가 난망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아예 당을 새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전망이 제기되는 가장 큰 근거 중 하나는 최근 윤 대통령과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의 존재다. 김 위원장은 2003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관여했고, 2014년엔 무소속으로 있던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창당 전문가’로 통한다.
그런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곁을 지켰고 가장 자주, 오랜시간 독대를 하는 인사로 여겨진다. 지난 17일 김기현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참석한 국민통합위 만찬 행사에서 윤 대통령은 “통합위 활동과 정책 제언이 저한테도 많은 통찰을 줬다”며 김 위원장을 한껏 띄웠다. 이후 당내에선 “김 대표에게 보내는 무언의 압박”이라거나 “김 위원장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라도 창당을 부추기지 않겠냐”는 말까지 나온다.
윤석열 신당론이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8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2월 비윤계로 분류되는 안철수 당시 대표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한때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신평 변호사가 “(안 후보가 대표가 되면) 대통령이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해 논란이 벌어졌다. 친윤계가 민 김기현 대표가 당선되면서 창당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창당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간판갈이식 창당’(①)이다. 정치권이 자주 해오던 방식으로 15대 총선을 앞둔 1995년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민주자유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친윤계 중심의 ‘분당식 창당’(②)이다. 윤 대통령과 친윤계가 집단 탈당한 뒤 장외에서 창당하는 방식이다. 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1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친노 진영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사례가 있다.
세 번째는 ‘합당식 창당’(③)이다. 윤 대통령이 기존 보수 진영뿐 아니라 제3지대,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비명계까지 포섭하는 ‘빅텐트’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16대 총선 직전인 2000년 1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를 확대 개편해 만든 새천년민주당이 대표적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국민신당을 1998년 9월 흡수한 데 이어 386세대 간판급 인사와 장외 유명인 등을 영입해 만든 ‘반(反) 한나라당’ 빅텐트였다.
①→②→③으로 갈수록 창당 난이도는 높아지는 대신 창당 뒤 총선 승리 가능성은 커진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실제 윤 대통령이 대선 당시 적극 검토했던 모델도 ‘반문 진영’ 규합을 통한 창당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2021년 6월 29일 정치 참여 선언 뒤 각종 리스크로 지지율이 흔들리자 윤 대통령은 결국 기존 국민의힘 플랫폼에 올라타서 출마하는 방식으로 대선을 치렀다.
신당 창당 시나리오가 실제로 가동되기 위해 필요한 첫 조건으로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 반등이 꼽힌다. 20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30%로 6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하지만 윤 대통령이 국정기조 쇄신을 내건 만큼 향후 반등하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윤 대통령 지지율이 45% 이상이 되면 여권 인사들이 ‘윤석열’ 간판으로 총선에 나가도 해볼 만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윤 대통령도 신당 창당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으로 궁지에 몰린 비명계 의원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비명계는 향후 공천 과정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야권 내부의 원심력이 세지면 비명계가 윤석열 신당 합류를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친명계를 제외한 민주당 인사가 참여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윤석열 신당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는 일단 신당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와 당선인이던 시절 수행실장을 맡았던 이용 의원은 19일 “(신당은) 어불성설”이라며 “신당 창설은 제로(0%)”라고 말했다. 김한길 위원장도 17일 국민통합위 만찬 때 “나의 거취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어디 안 간다”며 자신의 역할론을 직접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여권에서는 ‘이준석 신당설’도 커지고 있다. 이 전 대표가 16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한데 이어, 18일 여권 지지기반인 대구를 방문하는 등 뚜렷한 행보를 보이면서다. 그는 17일 MBC라디오에서 신당설에 대해 “비명횡사 당하기 전에 결행하겠다”고 말했다. 친윤 지도부가 이준석계 공천배제 등을 선택하면 이 전 대표 역시 신당 창당이나 무소속 출마 등 적극 대응할 거란 의미로 읽힌다. 이 전 대표 측은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가 신당을 차릴 경우 유승민 전 의원이 합류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 이럴 경우 여권에 주는 파괴력이 만만찮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 등 경합 지역에서 보수 지지층이 분열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수도권 위기론’을 강조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은 19일 CBS라디오에서 “이준석 신당이 만들어지면 수도권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윤계 의원은 중앙일보에 “이 전 대표가 궁지에 몰려 창당한다면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국민의힘 후보의 낙선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TK지역의 경우 민주당 후보가 약세일 수 있기 때문에 국민의힘과 이준석 신당이 맞붙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며 “다만, 이 전 대표 지지층이 주로 2030에 몰려 있고, 한때 이 전 대표를 지지한 TK보수층도 이번에는 국정안정을 위해 윤 대통령을 지지할 가능성도 있어 이준석 신당의 출범이나 성공 여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다영·김준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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