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소용없어"…한국 뜬 빈대, 유럽이 치떠는 그놈이었다
최근 인천 서구 사우나와 대구 사립대 기숙사에서도 빈대가 발견돼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나타난 빈대가 서구권에서 유행 중인 살충제 내성 빈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살충제를 이겨내는 빈대가 빠르게 번식하면서 사실상 빈대 박멸 상태였던 우리나라에도 유입됐다는 것이다.
노린재목 연구의 권위자인 이승환 서울대 교수(응용생물학)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전 세계에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빈대 계통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이미 프랑스 이전에 미국과 영국에서도 빈대의 밀도가 높아져 사람을 공격하는 문제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올해 영국 빈대 보고 지난해보다 65% 증가”
한국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빈대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안능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2000년대부터 전 세계서 빈대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사실상 박멸 상태였던 우리나라도 2006년부터 출현 보고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자생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2000년대 들어 해외여행이 증가했고 주로 외국인 학생이 머무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출현한 사례가 많았기에 그동안 우리나라에 나타난 빈대들은 자생종보다는 외국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했다. 최근 빈대가 발견된 계명대 기숙사 방도 직전에 영국 학생이 쓴 곳으로 알려졌다.
영국 언론들은 지난 8월 "빈대 대유행(Bedbug Epidemic)이 영국을 휩쓸고 있다"고 보도했다. 빈대는 전염병 매개체가 아니지만 빈대 수가 워낙 급속도로 늘자 전염병 유행에 사용하는 단어(Epidemic)를 사용한 것이다. 글로벌 최대 방역 업체 렌토킬은 올해 영국의 빈대 수가 지난해보다 65% 늘었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빈대 퇴치를 선포한 프랑스에서도 빈대 발생 건수가 지난해보다 65%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에선 빈대가 발생한 호텔 등 공중위생시설에 대한 알림 서비스가 유행하고 있다. 렌토킬은 미국 등 서구권 빈대 확산의 원인으로 코로나 체제가 종식되며 본격적인 해외여행 증가와 대학교 기숙사 재개를 꼽았다.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중고 가구 구입이 늘어난 것도 일반 가정 빈대 증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해외 유입 추정…한국 출현종도 내성 빈대”
국내 방역 업체는 한국의 빈대 출현이 입출국이 활발한 정도에 비례한다고 보고 있다. 세스코 과학연구소 관계자는 "코로나로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됐던 기간에는 실제로 빈대 방역 문의가 뚝 떨어졌다"며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올해 국내 빈대 출현은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도 안전지대는 아니지만, 국내 상황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서구권 일각에서는 폭발적인 빈대 증가가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승환 교수는 "아직 기후변화 영향보다는 전부터 있는 살충제 내성 문제가 전 세계적인 이동 증가와 함께 터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곤충학계에서는 해충의 살충제 내성이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은 사용이 금지될 만큼 독성이 강한 DDT에 내성이 있는 빈대도 보고된 바 있다"며 "살충제를 개발한 인간이 만든 결과"라고 했다.
정부는 2000년대 이후 국내서 발생한 빈대 문제에 대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빈대가 병을 옮기는 매개체는 아니라 통계를 내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빈대 대응법을 올려놓는 등 대국민 정보 제공 서비스로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빈대가 크게 확산한 프랑스에서는 '빈대 노이로제'를 호소하는 인구도 늘고 있다. 빈대에 물리면 모기에게 물린 것보다 가려움과 붓기 등 고통이 크고, 빈대 특성상 일반 가정에서 박멸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능호 연구사는 "빈대는 오로지 동물의 피만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먹이 트랩으로 잡을 수도 없고, 1년 가까이 숨은 채 굶고도 생존이 가능한 데다 일반 곤충과 달리 애벌레 기간이 짧고 성충 생존 기간이 길다"며 "낮엔 숨어있다 밤에 사람에게 접근하는 흡혈에 특화된 해충"이라고 설명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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