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전쟁의 허망함

2023. 10. 2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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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장기간에 걸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대규모 무력 충돌로 치닫고 있다. 하마스의 초기 기습 공격과 그에 대응한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이스라엘 및 가자지구에서 수천 명 사망자와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이번 전쟁에는 정치적·종교적,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간단하다. 수많은, 죄 없는 민간인과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

고대 그리스 역시 전쟁으로 물든 사회였다. 식민지 개척사업이 주가 된 군사 문화가 보편화한 사회였다. 올림픽 경기를 만들어낸 그리스가 육체적 단련을 지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까닭도 전투에 능한 군인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 같은 신화적 영웅을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죽음을 알면서도 사후의 ‘영광(kleos)’을 위해 전투를 택한 아킬레우스를 추대하는 그리스인의 심리는 불가피한 전쟁을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메리카 편지

고대 그리스의 핵심 신화가 트로이 전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기원전 5세기 전반에 일어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이후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그리고 전쟁이 불러온 비극적인 상황을 예술로 승화했다. 그리스 예술로 보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는 아킬레우스·헥토르·아이아스 등 영웅들이 용감하게 결투하는 장면이 많다. 그런데 페르시아군들에게 심하게 약탈당한 아테네에서 나오는 그리스 도기화(사진)를 보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트로이의 목마’를 이용해 침투한 그리스군이 트로이의 주민을 모조리 말살하는 끔찍한 참상이 부각된다.

틀림없는 그리스의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인 표현은 그리스 측의 행동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한다. 이는 그들의 분노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의 무익함을 깨달은 허망한 심정을 반영하는 것일까.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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