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오직 빛으로…’ 박스베어드 교회
부드럽게 굴곡진 백색 천장에서 북구의 은은한 태양 빛이 스며 내려온다. 마치 밀려오는 파도의 긴 물보라 띠와 같이, 또는 수평선에 걸려있는 옅은 구름과 같이. 제단을 바라보면 흰색 타일의 그리드 벽에 반사된 빛은 은은하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이 경이로운 실내는 덴마크 코펜하겐 교외에 있는 박스베어드 교회의 예배실이다.
외관은 너무 대조적이다. 기계적으로 배열한 기둥에 규격화한 콘크리트판을 붙였고 지붕은 알루미늄판으로 덮었다. 교회라기보다 공장이나 창고 같은 인상이다. 이 루터파 교회의 건축가는 덴마크 태생의 요른 웃존, 그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설계자이다. 이 교회의 설계를 의뢰받은 1968년은 시드니 정계와 갈등으로 오페라하우스 총건축가 직에서 해임되던 무렵이다.
오페라하우스는 유니크한 외형으로 시드니의 랜드마크가 되었지만, 해임 이후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내부공간은 실상 그저 그런 공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이 교회의 외관과 구조는 단순하지만 자연광이 유동하는 내부는 드라마틱하다. 건물 외곽으로 복도를 배열하고 복도 사이에 예배실을 비롯한 부속 공간을 삽입하며 안마당도 조성했다. 이러한 평면계획은 동아시아의 사찰건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단순과 합리 속에 실용과 자연의 감동을 담아내는 북구 디자인의 절정을 보여준다.
200석 규모의 소박한 예배실이지만 벽면 가득 오르간이 떠 있고 특별히 제작된 피아노가 있다. 모두 건축가가 손수 디자인했고, 직물과 카펫 등 소품은 그의 딸 작품이다. 지역 커뮤니티교회로 각종 연주회와 모임으로 활발한 쓰임새다. 기도실 등 부속실뿐 아니라 천창을 설치한 복도도 모두 자연광의 세례를 받는다. 평온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나지막한 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교황청의 면죄부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마르틴 루터의 선언과 같이, 박스베어드 교회는 ‘오직 빛으로’ 믿음의 공간을 빚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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