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벌어야 고소득층일까… 기재부의 이상한 계산법

이의재 2023. 10.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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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경제] 체감과 다른 원칙없는 기준 논란
국민일보DB


반도체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A씨(32)는 입사 6년 차인 올해 1억원 안팎의 연봉을 받고 있다. 친지들 사이에서는 A씨가 고소득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막상 A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소득 계층은 먹고살기 빠듯한 중산층 수준이다. 얼마 전 첫아이를 가진 그는 “앞으로도 5년은 전세살이를 면치 못할 내가 고소득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1년에 2억~3억원 버는 정도는 돼야 고소득자 축에 낀다고 본다”고 말했다.

얼마를 벌어야 고소득층에 속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중산층보다 많은 소득을 올리는 이들을 고소득층으로 본다는 기본적인 원칙은 존재하지만, 막상 정부 당국마저 중산층과 고소득층을 가르는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매년 고소득자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기준마저 의문부호가 붙는다.

기재부 기준, OECD와 다른 ‘로컬 룰’

22일 기재부가 발표한 올해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총급여가 7800만원을 초과하는 근로자를 고소득자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200%를 기준으로 한 금액이다. 통계청의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에 적용하면 전체 근로자 중 상위 10.7%에 해당한다. 기재부는 이를 토대로 세법 개정에 따른 계층별 세금 경감 효과를 매년 발표한다.

하지만 기재부의 기준은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과 다르다. OECD는 소득이 중위소득의 200%를 초과하는 가구를 고소득층이라고 본다. 보건복지부가 밝힌 올해 4인 가구의 기준 중위소득은 540만964원이다. 4인 가구의 경우 1년에 약 1억3000만원을 벌어야 한국에서 고소득층에 속한다는 뜻이다.

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 보더라도 OECD와 기재부의 산출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OECD는 평균소득이 아닌 중위소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평균소득은 전체 근로자의 소득 총액을 그대로 인원수로 나눈 값이고, 중위소득은 전체 근로자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근로자의 소득이다. 소득분배 구조상 평균소득이 중위소득보다 높은 한국에서는 기재부의 방식이 고소득층 기준이 더 높은 금액으로 이어진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위 균등화 처분가능소득은 3174만원이었다. OECD식 계산으로는 1인당 연 소득 6348만원이 고소득자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요동치는 기준…인식 괴리는 중산층


이처럼 고소득자의 기준은 수천만원씩 달라지곤 한다. 그만큼 확고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소득자보다 보편적인 개념인 중산층의 기준조차도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당장 OECD조차 2010년대 중반까지는 중산층을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소득을 올리는 가구’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중위소득의 75~200%로 기준을 상향해 적용하고 있다. 이는 이론상의 중산층·고소득층과 실제 인식 간 괴리를 의식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의 2021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월 가구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응답자 중 91.1%가 자신은 중산층 이하라고 답했다. 외국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미국 블룸버그가 연 소득이 17만5000달러(약 2억3400만원) 이상인 미국인 고소득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약 25%가 ‘살기 빠듯하다’ ‘가난하다’ ‘매우 가난하다’고 답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이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분포상으로는 연 6000만~7000만원의 소득으로도 충분히 고소득자로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은 적어도 상위 10% 이내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준 너무 높다” 지적에도 상향 일로

국내에서 구체적인 고소득층의 기준을 해마다 제시하는 정부 부처는 기재부뿐이다. 하지만 기재부 역시 산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원래 기재부는 매년 세법 개정안에서 OECD의 기준을 참고해 중위소득의 150%를 고소득층 기준으로 삼는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2021년 국정감사에서 기재부가 실제로는 중위소득이 아닌 평균소득을 사용해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득이 낮은 5인 미만 사업장이 배제된 통계라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기준 금액을 높여 세수 효과가 대부분 중산층 이하에 귀착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추궁이었다. 이에 기재부는 지난해부터 기준을 바꿔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200%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만 기준을 변경한 후에도 기재부의 고소득자 기준은 그동안의 상승 추세를 벗어나지 않는 모습이다. 2011년 5200만원이었던 기준 소득은 매년 200만~300만원씩 상향을 거듭해 2021년에는 7200만원까지 올랐다. 오히려 기준을 바꾼 지난해는 7600만원, 올해는 7800만원으로 이전보다 더 증가했다. 중위소득으로 계산하는 OECD식 대신 평균임금 기반의 독자 계산식을 고집한 결과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평균소득의 200%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곳은 오로지 한국 기재부뿐”이라며 “기준이 갑자기 바뀌면서 연도별 비교 기능도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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