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와 얄궂은 인연, 앨리슨 리의 눈물
2012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레이크 머시드 골프장에서 벌어진 US 걸스 아마추어 챔피언십. 4강에 오른 선수는 리디아 고와 이민지, 에리야 주타누깐, 앨리슨 리였다. 태국의 주타누깐을 제외하면 나머지 3명은 모두 해외에 사는 교포 선수였다. 리디아 고는 뉴질랜드, 이민지는 호주, 앨리슨 리는 재미교포다.
이들은 이후 세계 여자 골프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여자 골프의 ‘황금 세대’라는 말도 나왔다. 당시 4강에 들었던 4명은 이제까지 메이저 6승 포함,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40승을 합작했다. 리디아 고와 주타누깐은 세계랭킹 1위, 올해의 선수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앨리슨 리는 예외였다. 아직 LPGA 투어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2012년 대회에서 앨리슨 리는 리디아 고를, 이민지는 주타누깐을 각각 4강전에서 꺾고 결승에서 만났다. 36홀로 치른 결승에선 앨리슨 리가 앞서나갔다. 첫 홀부터 10m가 넘는 버디 퍼트를 떨궜고, 이후에도 계속 리드를 이어갔다. 앨리슨 리는 6개 홀을 남기고 3홀 차로 앞서 사실상 승리한 듯했다. 그러나 우승을 앞두고 갑자기 퍼터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홀에서 역전패했다.
앨리슨 리는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투어에서 6승을 거두는 등 미국 주니어 여자 골프계의 최강자였다. 격년으로 열리는 주니어 솔하임컵에도 3차례나 선발됐다. 그러나 프로에 와서는 리디아 고, 주타누깐, 이민지의 활약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앨리슨 리는 2015년 LPGA 투어에 진출했다. 공교롭게도 Q스쿨에서 이민지와 함께 공동 수석을 차지했다. 이후 두 선수의 길은 달랐다. 이민지는 2015년 초반부터 우승했다. 반면 앨리슨 리는 LPGA 투어에서 출전권을 잃었다. 우울증까지 앓으면서 골프를 포기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22일 경기도 파주 서원힐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앨리슨 리는 첫날 9언더파를 몰아친 끝에 2위에 올랐다. 엄마의 나라에서 열린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꾸준히 타수를 줄이면서 추격해온 이민지에게 역전을 혀용했다. 마지막 날 경기를 이민지에 1타 뒤진 채 시작했다.
이민지는 2개 홀을 남기고 앨리슨 리에 2타 차로 앞섰다. 두 선수 모두 짧은 파 4인 17번 홀(249야드)에서 티샷을 그린에 올렸다. 앨리슨 리는 버디를 잡았지만, 이민지는 3퍼트를 하면서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앨리슨 리는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합계 16언더파를 기록, 이민지와 함께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다시 18번 홀에서 두 선수의 연장전이 벌어졌다. 앨리슨 리로서는 2012년 이민지에 당한 역전패를 설욕할 기회였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또다시 이민지의 손을 들어줬다. 앨리슨 리는 두 번째 샷을 핀 3m 거리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이민지는 홀 1m 옆에 공을 붙였다. 결국 앨리슨 리는 마지막 퍼트를 넣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민지는 챔피언 퍼트를 성공시킨 뒤 두손을 치켜들고 기뻐했다. 이민지가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우승상금은 33만 달러(약 4억4000만원). 이민지는 이로써 메이저 2승 포함, LPGA 투어에서 10승을 거뒀다. 앨리슨 리는 이번에도 우승 목전에서 물러났다.
신지애와 이정은6이 합계 12언더파 공동 5위를 차지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마추어 박서진은 10언더파 공동 13위에 올랐다. 박성현은 마지막 날 6언더파를 쳐 합계 9언더파 공동 16위다.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슬럼프에 빠진 박성현이 LPGA 투어 대회에서 20위 안에 든 건 지난해 6월 숍라이트 클래식(공동 15위)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파주=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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