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간 의사 “환자 여유있게 봐 좋다”
지난 20일 오후 경남 산청군 보건의료원(산청의료원) 내과 진료실. 산청군 생초면에 사는 80대 박모씨가 유재등(69) 내과과장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았다. 거주지에서 산청읍에 있는 산청의료원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박씨는 최근 거주지 보건지소에서 ‘혈당이 높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혈액검사 뒤 유 과장이 “당 조절이 잘되고 있다”고 하자 박씨는 안도했다. 박씨는 “의료원에 내과 전문의 선생님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군내 11개 읍·면 곳곳의 환자들이 산청의료원 내과를 찾아온다. 주로 혈압·당뇨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이다. 오후 6시 퇴근하기 전까지 유 과장이 진료한 환자는 약 50명. 많을 때는 80명까지 본다고 한다.
유 과장은 충북 청주 도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다 지난 6월 12일부터 산청의료원에 출근하고 있다. 연봉 3억6000만원에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한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1년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유 과장은 산청의료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유 과장은 “도시에선 병원 유지를 위해 하루 100명이 넘는 많은 환자를 봐야 했다”며 “그러다 보니 좀 복잡하거나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환자는 기피했다. 여기선 좀 더 여유 있고, 여러 유형의 환자를 살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유 과장이 오기 전까지 산청의료원 내과 전문의 자리는 1년 넘게 공석이었다.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가 전역하면서다. 산청의료원은 하루 평균 200명 환자 중 60% 이상이 내과 환자다. 9월 기준 ‘의료취약지’ 산청은 인구 3만3866명 중 1만3786명(40.7%)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산청군은 다섯 차례 채용 공고 끝에 내과 전문의를 구할 수 있었다. 대도시 지역보다 문화·교육 등 생활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지원을 꺼렸다. 산청의료원에는 유 과장과 의료원장, 공중보건의 7명이 근무 중이다.
산청의료원을 찾는 군민들은 “먼 도시까지 안 가도 돼 좋다”는 반응이다. 산청읍에서 진주 경상국립대학교병원까지는 차로 40분 거리다. 잦은 기침에 폐렴이 의심돼 이날 산청의료원을 찾은 강모(50대·산청읍)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도시 병원에 가면 빨리빨리 하려고만 하는데, 여긴 상세히 여쭤봐도 조곤조곤 잘 설명해 주신다. 무리하게 이것저것 검사받으란 말도 안 해서 좋다”고 했다.
하지만 유 과장은 시골 지역 의료 한계도 경험하고 있다. X선, 초음파, 혈액·소변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는 가능하지만, 정밀 진단은 어렵다. MRI·CT 등 고가 장비나 이를 사용할 의료 인력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다. 입원실도 운영하지 않는다.
유 과장은 “급성 신우신염 환자가 몇 케이스 있었는데, 약물 치료하면 좋아지는 경우도 많아 하루 이틀 지켜보고 싶어도 (입원이 안 돼) 그럴 수 없었다”며 “심장질환은 혈관조영술도 받아야 하는데, 그런 검사를 할 수 없으니 상급병원이 있는 도시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시골에서 진료해도 생활이 될 만큼 인센티브 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의사 수 자체는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의사 중에도 개인의원 하다 망했거나 간호사 등 봉급도 주기 어려운 의원도 있다. 이런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면 당장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산청=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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