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63층 높이서 쏟아진다…전세계 바닷속 주름잡는 'K-케이블'

이희권 2023. 10.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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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직원이 강원도 동해공장에서 해저케이블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뒷편으로 아파트 63층 높이(172m)의 해저케이블 생산타워(VCV타워)가 보인다. 사진 LS전선


국내 최고 높이 건축물은 롯데월드타워(123층·555m)다. 그렇다면 강원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어디일까. 고급 호텔이나 주상복합아파트가 아닌 전선을 만드는 ‘공장’이다. 지난 16일 찾은 강원도 동해에 있는 LS전선 전력케이블 생산타워(VCV타워·172m) 꼭대기에선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진 케이블이 쉴 틈 없이 흘러나왔다.


아파트 63층 높이서 늘어뜨려 만든 전선


이 회사는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아파트 63층 높이, 아시아 최고 높이의 타워를 가동하고 있다. 김진석 LS전선 설비효율화팀장은 “케이블을 높은 곳에서 중력 방향으로 고르게 떨어뜨려야 고품질의 전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초고층 타워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LS전선 강원도 동해공장에 세워진 해저케이블 생산타워(VCV타워). 아파트 63층 높이(172m)로 현재 강원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케이블 생산타워로는 아시아 최고 높이다. 사진 LS전선


초고압 해저케이블은 일단 한 번 바다에 설치하면 30년 이상 사용한다. 제품 자체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수천㎞ 떨어진 대륙·국가 간 전력망을 잇기 위해 쓰이는 만큼 생산과정에서 한 번에 얼마나 길고, 일정하게 늘어뜨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진석 팀장은 “아주 작은 기포나 먼지가 들어가면 고장이 날 수 있다. 이러면 다시 (해저에서) 꺼내서 고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생산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렇게 생산된 해저케이블은 컨베이어 벨트로 700m가량을 이동해 동해항에 도착한다. 그리고 LS마린솔루션이 보유한 8150t급 ‘GL2030’ 선박에 실린다. GL2030은 국내 유일하게 선박 위치 정밀제어(DP) 시스템을 갖춘 해저케이블 포설선이다. LS전선은 지난 8월 LS마린솔루션을 인수하면서 케이블 생산→매설→유지보수 관련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국내에서 만든 케이블이 우리 배에 실려 전 세계 바닷속에 깔리는 셈이다.


일반 전선보다 3배…빅 5개 업체가 시장 호령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해저케이블은 값이 일반 전선보다 3배 이상 비싸다. 생산 업체는 전 세계에서 프리즈미안(이탈리아)·넥상스(프랑스)·NKT(덴마크)·스미토모(일본)와 한국의 LS전선뿐이다.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직원들이 해저케이블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LS전선


해상풍력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전력망을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는 2021년 23억 달러(약 2조8000억원)에서 2025년 45억 달러(약 6조8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당장 바다 위에 새로운 풍력 발전소를 지으려면 이를 지상의 전력 수요처 및 전력망과 연결해야 해 해저케이블이 필요하다.


“전 세계서 파트너 줄 서…美 공장 검토”


LS전선은 LS마린솔루션·LS전선아시아와 손잡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07년 국내 최초로 해저케이블 개발에 성공한 뒤 3000억원을 투자해 2009년 동해시에 케이블 전문 공장을 세우며 승부수를 던졌다. 그동안 수십 차례 실패 끝에 유럽·일본 업체가 독점해온 첨단 해저케이블 제조 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직원들이 해저케이블을 선적하고 있다. 사진 LS전선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는 각종 프로젝트를 싹쓸이하고 있다. 최근엔 대만 1차 해상풍력 건설 사업 8개 프로젝트에 대한 초고압 케이블 공급 계약을 모두 따냈다. 올 상반기 수주 잔고가 5조40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실적을 뛰어넘었다. 자회사인 LS전선아시아는 베트남 해저케이블 사업에 진출했다.

여기에 더해 미국‧유럽 시장에도 도전한다. 현재는 미국에 생산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김형원 LS전선 부사장은 “유럽 기업과 경쟁을 위해 거점별 현지 공장 건설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면서 “우리 기술로 함께 공장을 지어보겠다는 파트너가 전 세계에서 줄을 섰다”고 말했다.

동해=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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