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 150년 팽나무의 호소 "저는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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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제주도립미술관 중앙정원에서 진행된 모의재판에서 자연과 인간의 논리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비자림로에 살고 있는 황조롱이, 팔색조, 애기뿔소똥구리, 으름난초, 팽나무, 고사리, 삼나무가 도로 확장공사를 집행한 제주도정을 상대로 비자림로 공사 무효소송을 냈고 제주도정은 공사에 찬성하는 제주도민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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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애 기자]
"쑥쑥 잘 큰다며 방풍림으로 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삼나무가 너무 쑥쑥 잘 자라니 다른 생명들이 살 수가 없다나요? 사실은 나를 자르고 길을 넓혀야 땅값이 올라가기 때문 아닙니까?"
"삼나무를 다 베는 것도 아니고 일부만 베는 건데 '삼나무가 아파요, 비자림로가 아파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던데 우리가 쓰는 종이도, 우리가 입는 옷도 다 자연물로 만든 것 아닙니까?"
지난 21일 제주도립미술관 중앙정원에서 진행된 모의재판에서 자연과 인간의 논리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비자림로에 살고 있는 황조롱이, 팔색조, 애기뿔소똥구리, 으름난초, 팽나무, 고사리, 삼나무가 도로 확장공사를 집행한 제주도정을 상대로 비자림로 공사 무효소송을 냈고 제주도정은 공사에 찬성하는 제주도민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날 모의재판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비자림로 도로구역 결정 무효 소송'에 기반하여 짜여졌다. 비자림로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원고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과는 반대로 이 재판에서는 동식물들이 원고 자격을 획득하고 당당하게 주장을 펼친다.
▲ 비자림로에서 베어진 삼나무 . |
ⓒ 김선 |
비자림로에서 2천그루 정도 베어진 삼나무가 일갈한다.
"이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연을 '자원'이라 부르면서 숲을, 강을, 바다를...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마치 물건인양 사고 팔며 부자가 되겠다고 날뛰고 있습니다!"
고사리가 애처롭게 호소한다.
▲ 흐느끼는 고사리 . |
ⓒ 김선 |
팔색조가 준엄한 목소리로 배심원들을 향해 주장한다.
"어차피 결정은 당신들이 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더 큰 힘이, 보다 작은 당신의 힘을 억압하며 모든 숲과 바다를 하나씩 정복한 후 당신에게는 과연 무엇이 남겠습니까? 우리만 살겠다고 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욕망을 무시할 힘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 팔색조의 경고 . |
ⓒ 김선 |
으름난초가 자신의 위태로운 생존에 대해 알린다.
"제가 살아가는 숲이나 얕은 계곡이 최근 얼마나 많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제주에서 사라졌는지 재판장님도 배심원 분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정말 저는 어렵게 어렵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요즘, 제 삶의 근거지인 천미천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도로를 넓히는 공사 중 하나인 다리 확장 공사로 인한 변화 입니다.
▲ 불안을 호소하는 으름난초 . |
ⓒ 최성희 |
애기뿔소똥구리가 인간들을 향해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 분노한 애기뿔소똥구리 . |
ⓒ 김선 |
날아가던 황조롱이가 하늘에서 목소리를 낸다.
▲ 홀로남게 될 팽나무 . |
ⓒ 김선 |
마지막으로 운 좋게 비자림로에서 살아남게 될 150년 수령의 팽나무가 말한다.
"왜 저희들은 당신들의 편리에 의해 터를 뺏기고 옮겨져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합니까? 당신들보다 더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제가, 당신들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했던 제가, 우리가, 우리가 살고 죽고 살면서 만들었던 숲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베어져야 합니까? 숲의 가족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도로 옆에서 저는, 저는,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요?"
원고들에게 고소당한 제주도청의 사업 담당자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비자림로는 교통량이 매년 빠르게 늘어나는 곳입니다. 2020년 하루 7843대로 나왔는데 빨리 도로를 확장하지 않으면 서비스 수준이 아주 나쁜 단계인 D수준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건설 경기도 침체되어있고 해서 2018년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조기발주 대상사업으로 넣어서 신속하게 공사하려 한 것입니다... 공사하다가 법정보호종들이 발견되는 바람에 소규모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에 따라 오랜 기간 공사가 멈췄는데 제주도는 두 번이나 생태조사를 해서 법정보호종들의 보호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 공사 반대는 환경지상주의라는 찬성도민 .. |
ⓒ 김선 |
제주도가 요청한 증인으로 나선 도민은 동식물보다 인간이 먼저 살아야 한다며 육지에서 내려온 환경지상주의자들을 향해 분을 터뜨린다.
"비자림로 도로확장공사는 오래된 주민숙원사업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길을 넓히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을 찬성하는 사람들을 마치 자연파괴 주범으로 몰아갔습니다.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고하고 정의로운 척했지요. 비자림로로 맨날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 좀 생각해봐 주십시오.
▲ 비자림로 모의재판 . |
ⓒ 이유진 |
이날 모의 재판에는 14명의 배심원이 참여해 원고와 피고, 증인의 이야기를 들은 후 공사 무효라는 원고 측 주장의 타당성을 토론했다. 배심원들은 토론이 끝난 후 10명의 배심원이 공사무효라는 원고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줬고 4명의 배심원은 원고 일부 승소 결정을 내려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반영하여 공사 계획을 변경할 것을 주문했다.
이 모이재판을 기획한 이유진 작가는 방콕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루앙삭 아누왓위몬(Ruangsak Anuwatwimon)과 협력한 신작 <우리가 _______하는 한(As long as we _______)>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며 비수도권 정체성과 공동체 형성에 대해 고민 하며 '관계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언어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 전 세계에 2,365건의 기후 위기 소송이 진행 중이며 그 중 무려 200여 건이 지난 12개월 사이에 제기되었다. 올 여름에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헌법을 근거로 한 기후소송 재판에서 청소년 원고 16명이 승소하였다.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주 정부가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화석연료 정책을 강행하여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제주도에서도 비자림로 도로 확장공사에 대한 무효화 소송이 제주도민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나 1심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번 재판을 통해 삼나무, 맹꽁이, 으름난초 등 생태학살의 당사자가 된 시민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원고 부적격이라는 법률적 무기를 공생적 상상력으로 전복시켜 보려 한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모의재판은 2018년부터 비자림로에서 공사 반대 활동을 벌여온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이 협력해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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