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같은 필리핀 학교의 스포츠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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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욱 기자]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는 열대에서도 달의 운행에 따라 1년 일정이 그물코처럼 촘촘히 짜여 있다. 10월이 되면 벌써 대형상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 이벤트를 준비한다. 내가 세 들어 있는 레지던스 2층 휴게실에도 주인 아주머니가 아담하고 예쁘장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해 놨다. 이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있는 가톨릭 문화를 엿볼 수 있다.
10월 중하순에 접어들면 우리가 그렇듯 이곳 학교나 직장에서도 다양한 축제가 벌어진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도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스포츠 페스티벌 기간이다. 학생들은 거의 한 달 전부터 본인이 참가하는 종목을 준비하느라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늦은 시간까지 음악과 함성이 끊이질 않았다.
▲ 학과별 퍼레이드 행사 시작 전 학과별로 집결하여 퍼레이드를 준비 중에 있다. |
ⓒ 임경욱 |
축제 첫날에는 교직원과 학생들이 학과별로 유니폼을 갖춰 입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아 운동장에 집결하는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축제의 막을 올렸다. 일부러 아침 일찍부터 행사를 진행하는데도 열대의 태양은 이미 달궈져 들뜬 마음들을 운동장 잔디 위로 눌러댄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의 패기와 열정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으랴. 늘 조용하고 얌전하고 왜소하기만 한 학생들이 어디서 그런 힘이 넘치는지 3일간의 축제는 열광 그 자체였다.
개회식 직후 각 학과별 응원전을 시작으로 경기는 축구, 배구, 핸드볼, 족구, 탁구, 배드민턴 등 대부분 구기종목으로 이루어져 토너먼트로 대진표를 만들어 진행했다. 선생과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뛰고, 넘어지고, 구르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이 함께 뛰지 못하고 구경만 하는 이방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 스포츠 페스티벌 개회식 학과별로 운동장에 집결하여 개회식을 진행하고 있다. |
ⓒ 임경욱 |
그 밖에도 그림, 사진,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작품을 전시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정규과정을 거쳐 공부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틈틈이 배우고 익혀 이렇게 공식 석상에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나라 대학축제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들의 축제가 얼마나 건전하고 검소한가를 알 수 있겠다. 우리도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겠지만, 잡상인과 술판과 쓰레기만 남는 그런 축제와는 다르게 학과별로 배정된 텐트에서 학생들이 감자튀김, 볶음밥, 옥수수 등 간식을 파는 게 먹거리의 전부다.
▲ 댄스경연대회 대강당에서 다양한 음악과 춤을 선보이는 댄스 경연대회가 열려 학생들이 열광하고 있다. |
ⓒ 임경욱 |
문화는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면 그 조직은 희망적인 조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고령화로 모든 조직의 성장이 멈춰있다가 베이비부머들이 퇴직하면서 급격히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조직 문화가 갑자기 바뀌는 것이다. 이제 문화를 순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기성세대들이 만든 군사적 조직문화, 권위적 위계질서, 폐쇄적 업무수행 등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아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만이 능동적인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젊은이들이 장악해가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의 신흥국가들이 빠르게 우리를 추격해 오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가 지금은 우상이지만, 언제 이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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